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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머리 짐승 Jun 16. 2020

친구 같은 아빠

아빠들에게 어떤 아빠이고 싶은지 물으면 열에 정확하게 열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이와 친해지려고 별의별 ‘노오력’을 다 해요. 하품해가며 스스로에겐 아무 재미도 없는 동화책을 읽어주고 바닥에 엎드려 아이를 태우고 말이 되었다가 사자로 변신하기도 하죠. 토요일 아침부터 커피 잔뜩 들이켜고 돌덩이 같은 몸을 질질 끌고 각종 공원을 섭렵해요. 집 앞 잔디밭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출발해야 하는 무슨 ‘랜드’까지 기어코 가요, 갑니다. 나들이가 무난하게 마무리될 무렵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여요. “아빠, 나 아이스크림”, 이미 그 날 내내 단맛이란 단맛은 다 선뵌 터라 “오늘 단 것 많이 먹었……” 하는데 아이는 울기 시작합니다. 대체로 그 날 마무리는 이런 독백으로 끝나요. ‘내가 이러려고 아빠 됐나, 자괴감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아빠들은 포기하지 않아요. 공부도 참 열심히 하죠. 아빠들까지 구독자로 섭렵한 터라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보이면 이렇게 대처하세요’, ‘이렇게 놀아주면 아이들이 좋아해요’, ‘딸은 이렇고요, 아들은 이러해요’ 따위 영상 채널은 그래서 사라질 가능성이 없어요. 제 아이들이 영상 속 사례의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점만 빼면 ‘나도 친구 아빠, 아니 친구 같은 아빠가 될 수 있다’ 고 잠들기 전 마음 다 잡는 데 그 영상들은 쓸 만해요.


요사이 제 아이들이 참 매력 있는 ‘사람’들이라 느끼는 순간들이 많아요. 아이들에게서 나이만 제쳐두고 생각하면 ‘아, 어찌 마음 씀씀이가 이렇게 따뜻할까?’, ‘어떻게 저렇게 발랄한 생각을 해 냈지?’, ‘어, 이 사람 보게. 눈 하나 깜짝 않고 제 할 말 다 하네’ 그런 찰나들. 학년이 올라가 반 배정받은 첫날 탐색전을 벌이듯 아이들의 매력을 살펴갑니다. 


친구 같은 아빠가 아니라 그렇게 매력 있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제가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친구가 될 때 어떻게 하는지 가만히 떠올려봤어요. 친구가 될 때, 친해지고 싶을 때 저는 저를 먼저 드러냈어요.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기쁜지,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서운한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어요. 아이들에게도 그래 볼까 봐요. 아빠이기 때문에, 어른이므로 아이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나무여야 한다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척하느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쉬이 지겨워질 것 같아요. 제가 아이의 친구라면 응당 아이도 제게 친구여야 해요. 


엄마와 보드게임을 하다 패색이 짙은 걸 깨달은 아이가 울었대요. 엄마가 게임하다 우는 건 옳지 않다 했더니 아이가 그랬대요.

“난 로봇이 아니야. 나도 감정이 있어. 나는 지금 분하니까 울 수밖에 없어”

어때요, 참 매력 있지 않아요? 이 사람과 친구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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