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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풍 Nov 26. 2018

신인류의 사랑

현대인의 연애가 어려운 이유

확률 게임


인간관계는 어렵다. 그로 인한 속박과 상처 때문이다. 사회에 속한 이상 관계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평생 함께하는 부부 사이는 더욱 그렇다. 긴밀한 만큼, 실패할 경우 충격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파트너를 찾는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낮다. 살아보기 전까지 상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결혼을 이토록 불확실한 방식으로 결정할까?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 미러> 에피소드 '시스템의 연인(Hang the DJ)'은 연애의 불확실성을 인공지능이란 소재로 풀어낸다. 스스로 연인을 찾지 않는 미래, 완벽한 연인은 '시스템'이 찾는다. 여러 파트너와 수차례 동거를 반복하며, 최종 파트너를 결정한다. 물론 동거는 현실이 아니다. 가상현실 속 자신의 프로필이 대신한다.


선곡을 망친 DJ를 교수형에 처하란 원제 'Hang the DJ'는 영국 록밴드 더스미스(The Smiths)의 'Panic'이란 노래 가사다. 1986년 체르노빌 사건 직후 흥겨운 노래를 내보낸 BBC 라디오를 비판한다. 대중의 감정과 동떨어진 선곡을 완곡히 거부하는 표현처럼 '시스템'을 부정하고 상대와 '야반도주'하면 파트너가 된다. 이 역설적 선택은 수많은 '가상 결혼'을 통해 완벽히 검증된 상대를 시행착오 없이 찾아준다.


 시스템이 생기기 전 사람들은 힘들었겠어요.
힘든 연애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으니까요.
- 주인공 에이미 -


사랑은 기적 같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낮은 확률 때문이다. 요즘 '잘한 결혼'은 로또에 비유된다. 이 역시 낮은 확률을 말하지만, 경제적 손익이 강조된다. 현대 사회는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진화하며, 결혼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했다. 요즘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이유, 현대사회 속 신(新) 연애 풍속도를 살펴본다.



개인주의


과거에는 인간관계 대부분 수직적 구조를 갖었다. 여성은 남성에게, 국민은 국가에 귀속됐다.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란 독트린을 만들어 맹목적 추종을 요구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군사부일체' 같은 선전으로 무의식을 지배하며, 존재하지 않는 권위로 사람들을 순응시켰다. 이는 모든 역사에 존재한 오랜 통치 기법이다.


전통사회에서 개인은 전체를 위한 일부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시장경제는 개인에게 소비자란 지위를 부여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을 유권자로 대우한다. 정보화 시대 사람들은 차별 없이 140자 제한을 받고, '좋아요'를 누를 수 있다. 현대 사회에 나타난 특징은 권력 분산이다.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권력이 이동했다.


그렇게 권력을 얻은 개인은 전통적 권위를 거부한다. 미투(MeToo) 운동이나 촛불집회 같은 풀뿌리 운동이 확산되는 이유다. 역사  이러한 저항은 항상 존재했다. 하지만 대부분 성인(聖人)이나 혁명가 같은 특정 인물응 중심으로, 천천히 진행됐다. 개인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확산되는  지금 모습은 적이다.


사람들은 자기 행복 추구를 최우선시 여긴다. 특히 요즘은 어릴 적부터 그렇게 교육받는다. 백년전, 아동인권은 말조차 생소했다. 짐짝 취급 받던 당시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다양한 권리를 보장받는다. 아동인권협약에 근거한 모두의 합의 결과다. 집이나 학교에서 '너는 최고야', '뭐든지 할 수 있어'란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자기애를 심어주는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높아진 자기애로 인해 관계를 어렵게 느끼는 것이다.



불임 사회


초식남과 건어물녀란 표현이 있다. 이성에 무관심한 남녀를 희화한 신조어다.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경제, 사회, 정치 전반 다양한 요인이 얽혀있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을 포기하는 심리는 단순하다. 스스로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기희생적인 사랑은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오래된 결혼 시스템과 달라진 자아상이 교차하며 나타난 이탈, 그 초기 현상이다.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으니 당연히 저출산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60년대만 해도 가임 여성당 5명에 달하던 세계 출산율은 반세기 만에 절반으로 감소했다. 많은 국가들이 저출산에 따른 사회 붕괴까지 우려한다.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6명에서 1명으로 급락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내년에는 출산율 1.0대가 무너지며 세계 유일한 0점대 국가가 될 전망이라고 한다.


[그림. 세계은행 - 출산율 추이 (1960~ 2016)]


경제와 출산율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민 소득과 교육 수준이 오르면 출산율은 떨어진다. 저소득 국가들이 4~5명에 이르는 반면, 고소득 국가들은 1~2명 수준에 머문다. 특히 한국, 싱가포르, 홍콩은 나란히 수년째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자원과 땅이 부족하고, 자본주의와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유교문화권 국가가 가진 특징일까?


[그림. 세계은행 - 소득 수준 별 GDP와 출산율 (2016)]


국가 차원에서 저출산은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치명적 요인이다. 하지만 개인 입장은 다르다. 오히려 출산이 자신의 삶에 더 치명적이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란 사회적 합의를 이룬 스웨덴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는 전적으로 개인 몫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불완전한 젊은 사람들이 부담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실제 그들에게 결혼은 많은 희생을 감수하는 선택이 됐다.



자본주의


2014년 한 기사에서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역사상 가장 낮은 혼인율이 나타나는 이유'로 ① 불경기, ② 소득 양극화, ③ 사회인식 변화, ④ 피임기구 발달, 그리고 ⑤ 여성 노동 참여를 지목했다. 이중 '사회인식 변화' 요인에는 낮아진 신앙심이 포함되기도 한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 상황이 설명될까?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리퀴드 러브(2003)'에서 현대적 연애가 갖는 문제를 정확히 짚는다. 그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단단한 결속에 기반한 전통사회와 달리, 모든 것이 물처럼 유동적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쇼핑처럼 쉽게 연애를 하고, '호모 이코노미쿠스'로써 합리적 선택에 따라 결혼한다. 현대사회 속 주인공은 관계가 느슨해진 '유대 없는 인간'이라 전하며, 그 원인으로 사랑과 욕망에 대한 착각을 조명한다.


욕망은 소비를 원하고, 사랑은 소유를 원한다.
욕망은 대상을 소멸하며 충족되지만,
사랑은 대상을 소유하며 커지고,
오래 지속될수록 충족된다.
욕망이 자기 파괴적(Self-destructive)이라면,
사랑은 자기 영속적(Self-perpetuating)이다.
- 지그문트 바우만 -


요즘 사람들은 결혼에서조차 자기희생과 상대가 주는 교환가치를 비교한다. 이런 소비적 사고는 자기 권리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연인들을 다투게 만들고, 사회를 남녀 갈등에 빠뜨린다. 사람들은 '한남충'이나 '김치녀'란 공격적인 말로 서로의 타자성을 공격한다. 어쩌면 남녀관계 조차 새로운 모습으로 갑을관계를 모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0점대 출산율을 앞당기는 건 어려워진 경제가 아닌, 지나치게 경제적인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무리한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 남녀 성(性)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인식,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찾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다. 모두를 힘들게 하는 이 지나치게 소모적인 시스템을 왜 계속 유지하는 걸까. 모두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발버둥 치는 동안, 그 속에서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때이다.


2018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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