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그 저자가 궁금해지고, 그 저자를 검색하다 보면 그들의 모든 작품을 읽고 싶어 지는 충동에 빠질 때가 있다. 일종의 사랑에 빠지는 감정과 유사하다랄까. 이 책의 저자 신형철이 그러하다.
물론 저자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 방대하여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고 싶어 지는 경우도 많다. 다행히도 신형철은 전체를 집필한 작품이 '몰락의 에티카'를 포함 세 권 정도이기에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느낌의 공동체'->'몰락의 에티카'. 내가 읽어간 순서이다. 사전에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 권을 모두 읽고 난 지금 아주 현명한 '우연적 선택'이었다는 생각에 흐뭇하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영화에 대한 그의 평론을 읽으며 느낀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을 '느낌의 공동체'에서 시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되고, 궁극적으로 모든 문학들이 집약된 '몰락의 에티카'에서 그 절정을 만끽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도 신형철만의 '정확한' 표현은 여전하다. 평소에 자주 구사하는 표현들은 아니지만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한 번쯤 곱씹게 되는 언어 자체의 그 맛.
평론이 작품이 있기에 가능한 장르라고는 하지만 그의 평론을 읽다 보면 평론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한 그의 평론 속에 거론된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이 마구마구 솟아오른다는 점에서는 각 작품의 홍보대사라는 타이틀을 부여해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조금 부정적인 평론의 대상이 되는 작품들까지도!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문학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의 평론 속에는 늘 따스한 사랑의 기운이 감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문학을 조금이라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질투의 대상이 되고야 만다. 사랑하는 대상을 탐구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점. 그 대상을 그토록 정확하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까지.
책의 초반부에 표현된 그의 바람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인용해 본다. "... 가능하다면 그 둘 모두를 내 글이 감당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후자의 위치에 설 때 더 행복했다. 나에게는 보편성과 객관성에 대한 야망이 많지 않다. 나는 차라리 압도적인 특수성 혹은 매혹적인 주관성이고 싶다." 앞의... 은 앞으로 읽을 분들의 영역으로 남겨두려 한다. 최소한의 호기심 자극이랄까.
문학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에 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그의 글이 있어 오늘도 문학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