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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대한개츠비 Jan 30. 2018

[느낌의 공동체]-'시'와 사랑에 빠지다

   평소에 '시집' 또는 '시'를 가까이하는가? 그렇다면 '시'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정서나 사상 따위를 운율을 지닌 함축적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갈래"라고 되어 있다.  이 정의를 보고 또 봐도 '시'에 대해 와 닿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가 너무 시를 어렵게 아니면 너무 멀게만 생각한 건 아닐까? 
  여기 바로 그 난해한 '시'라는 것과 가까워지고 싶게 만들고 끝내 '시'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야 마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다.

  # 신형철의 글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이 책 '느낌의 공동체'는 그의 저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 전체와 '몰락의 에티카'를 절반 정도 읽은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다. 신형철식 표현에 조금은 익숙한 상태로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느낌의 공동체' 안에 '시'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인공을 '시'로 정해주고 싶었다. 

  #  다 읽고 난 후 '시'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란 자꾸 곱씹어 읽고 아니 보고 싶은 것 아니 감전되는 것!'. 
책 안에서 수많은 시인과 만나고 또 그들의 시를 읽으며  다른 장르의 문학과 달리 짜릿짜릿한 순간들이 더 많음을 느꼈다. 그것은 '중요한 건 체험의 부피가 아니라 전압이지'(P.205)라는 신형철의 말로 이유를 대신할까 한다.
 
  # 이 책에서든 아니면 그 어디에서든 시를 접했을 때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분들 꽤 많을 것이다. "저따위 시, 나도 쓰겠네"라고.  그런 분들에게도 신형철이 심드렁한 눈길로 할 것 같은 한마디 돌려드린다. "나도 쓰겠다 싶은 그런 시, 막상 써보면 잘 안 써진다. 화음에 정통한 자만이 소음으로도 시를 쓸 수 있는 법이다."(P.136)

# '사랑'한다는 것. '연애'를 한다는 것. '이별'이라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그 과정을  어찌 요약할 수 있겠냐만은 대략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한 사람'이 문득 '이 사람'이 되어 사랑이 시작되고, 이 사람이 떠나면서 세상이 잠깐 멈췄다가, '이 사람'이 어느덧 다시 '한 사람'이 되면 애도는 끝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의 내막이 본래 이토록 헐렁한 것인지 모른다.(p.86)
  헤어진 사람에게 '세상의 반이 이성이다'라는 표현이 무용한 이유는 그에게 또는 그녀에게 사랑했던 사람은 '한 남자, 한 여자'가 아닌 '이! 남자, 이! 여자'였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부분에서 '시'와 '시인'에 대해서 사랑에 빠지는 부분만 따로 표현하자면 "그렇게 '한 시인'이 그(신형철)에게로 오면 ' 이 시인'이 된다. "라고. 

# '한 번 읽기'와 '다시 읽기' 사이의 시간이 사유의 시간이다(p.18). 
  이번의 한 번 읽기를 통해 '시'와 사랑에 빠진 나는 며칠 아니 몇 달 아니면 몇 년 후쯤  '다시 읽기'의 시간을 가질지 모른다.  물리적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그동안의 나의 시간을 '사유의 시간'이라 해도 될까.

  신형철이 내게 '시'로 가는 대로(大路)를 열어주었듯이 나의 독후감도 읽는 사람들에게 작은 소로(小路)나마 되기를 희망하며 '느낌의 공동체'에서 눈물 찔끔 나게 했던 많은 시중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의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 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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