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 신생아 육아의 날들

가장 많이 죽고 싶었던 날들에 대하여

by AskerJ


이제 막 만으로 2년을 앞두고 3년차를 맞이한 내 육아의 날들에 대해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를 꼽자면, '가장 많이 죽고 싶었던 날들'이다.

살면서 죽고 싶었던 날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일시적이었고, 어지간해서는 가볍게 지나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육아인으로서 살아온 날들에는 그 날들이 이 전의 삶에서보다 훨씬 진하게, 자주 찾아오곤 했다.


특히 지옥의 신생아 시절에는 산후 호르몬의 농간까지 더해져 거의 며칠 간격으로 집 가장 작은 방 창가에 앉아서 혼자 울고불고해대며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끝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고민의 끝은 대체로 죽음만이 그 결론같았던 기억이 있다.


뭐가 그렇게 고통스러웠냐고 묻는다면 사실 딱 하나만 꼽아서 말하기가 어렵고, 지금 와서 새삼 이야기 하자니 그것들이 과연 죽고싶을 정도였냐고 물으면 갑자기 움츠러들듯 자신이 살짝 없어지지만 그 때의 나를 붙들고 물어본다면 또 다시 울며불며 자신있게 말해댈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2,3시간마다 깨어 아이들 수유를 하느라 내가 기억하는 삶의 시간 중에서 제일 잠의 질이 낮은 시기였고(물론 현재도 대부분의 날들은 2,3시간 간격으로 깨게 되는 패턴이지만 꽤 적응되었다.)자유도가 가장 낮은 시간이었으며, 이 모든 고통을 충분히 알아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당시의 나는 홀로 육아하는게 아니라 무려 두 분의 이모님을 모셔서 도움을 받고 있었으나 어쩐지 그 고통과 혼란 속에서만큼은 나 혼자인 느낌이 들어 그 분들의 도움은 내 육아노동을 덜어주는 것에만 해당되었을뿐 내 정서적인 괴로움과는 무관했다. 오히려 초반에는 낯선 사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집에 와 있다는 사실에 적응해야하는 미션이 더해져 더 심란하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덕분에 이후로는 도움받는 것에 대한 댓가를 경험한만큼 그 도움에 대한 기대를 보다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


신생아시절의 밤에 대해서 떠올리자면 나는 아이를 안고 재우려고 애쓰면서 맞은 편 단지의 수많은 베란다를 쳐다보고 막연히 부러워하는 내 모습이 있다. 어쩐지 우리집 빼고는 모든 가정의 거실풍경은 다 평화롭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우리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매일같이 이모님이 가시고 난 시간 동안 초보 엄마 아빠가 초보 신생아 아기 두 명과 혼신의 잠씨름이 벌어지고 있었다. '매일같이'라고 적었지만 사실은 꼬박 매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심정은 정말 촘촘하게 매일이 고통인 것 같았고, 기력이 없을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내 신세를 한탄하고 후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데에도 꼬박 에너지를 쓰곤 했다.


아무래도 그 모든 상태는 이 모든 일상을 좋든 싫든 함께했던 남편에게로 많이 갔다. 그도 이 완전한 변화에 적응하는 중이었을텐데, 아무래도 그 변화의 여파는 나보다 적었을 것이다. 나는 하루 24시간이 전부 변했지만, 그는 적어도 직장에 출근하면서부터 퇴근하는 시간까지는 변하지 않는 일상이었을테니까. 그것이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너무도 억울했고, 그 상대적 박탈감에 더욱 서러워했다. 이렇게 주저 앉아버린 나를 남편이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 당시에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나를 무시하지 말라'를 넘어서 '나를 무시한다는 걸 제발 인정해달라' 였다.


남편은 한사코 부인했으나 사실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게 전부였을 것이다. 이미 무너지고 있는 와이프에게 진실을 말하는 건 더욱 잔인한 일이었을테고 무엇보다 자신이 매일을 신생아들과 사투하고 있는 와이프를 무시하는 나쁜 남편임을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테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나를 무시했던 것도 맞고 무시하지 않았던 것도 맞다. 나를 무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무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몰랐던 것이지만 몰랐다고 해서 나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것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도 답답했을 것이다. 이 전과 상황도 입장도 너무 달라져버렸기에 무언가 달라질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것이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대하면 그것을 '무시한다'고 받아들이는 와이프를 보는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닌 지금에도 나는 그가 아닌 내 편에 서서 생각해주고 싶다. 하루 아침에 내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가장 가까이에서 내 고통을 보고도 내가 원하는만큼 알아주지 않고 심지어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얼마나 사무친 외로움이고 절망인지 잘 아니까. 그것이 히스테리이고 우겨대는 걸로 표현된다 할지라도 그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자체로 나는 다독여줄 것 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버텨보자고 말해줄 것이다. 그것이 그 아찔한 자리를 조금이나마 벗어난 나로서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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