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ㅣ 육아가 싫댔지, 아이가 싫다곤 안 했습니다.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코로나 확진으로 하루하루 지쳐가는 가정보육 생활을 하고 있던 날들 중,
남편이 코로나 증상으로 아이들이 콧물이 나는데 이것 때문에 코로나 격리 후에도 어린이집 못 가면 어떻게 하냐고 묻기에 나는 '그럼 최악이지.'라고 답했다.
남편은 이 최악이라는 표현에 꽂혀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둥 아이들이 아프지 않은 게 우선이 아니냐는 둥 그렇게 육아가 싫으면 그만두라는 둥 거의 내가 엄마로서 해서는 안될 말을 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기분이 상해 애들이 격리 후에도 아프면 나 혼자 독박으로 아이들을 보는 건데 힘들다고 말할 수 있지 않냐고, 아이들이 최악이라는 게 아니라 상황이 최악이라고 한 건데 힘들다는 표현을 못 받아주냐고 되물었다.
남편 말로는 내 표현이 오해가 생기게 했다고 했지만, 내가 애들이 어린이집 안 가면 힘들다고 했어도 흔쾌히 받아주었을지는 의문이 든다.
그날 밤, 나는 남편에게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육아가 힘들다고 말했다. 기껏 차려놓은 밥을 잘 먹지 않고 장난만 칠 때도 힘들고, 나도 코로나 증상으로 몸이 피곤하고 힘든데 계속 뭔가를 해달라고 보채거나 울 때도 힘들고, 밤에 쭉 자지 못하고 2,3번은 깨서 애들 방과 우리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자는 것도 힘들고, 깨 있을 때는 집안일 아니면 육아만 해야 되는 것도 힘들다고. 내가 표현 하나 세게 했다고 가장 가까이에서 내 일상을 보고 있는 사람이 이걸 몰라주는 게 참 씁쓸하다고.
남편이 내가 보낸 카톡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치만 나는 어떻게 생각을 하든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 힘든 걸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자유를 위해서.
육아는 힘들다. 힘드니까 당연히 하기가 싫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육아도 좋아해야 된다는 건 돈을 사랑하니까 직장 일도 좋아해야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말이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육아를 좋아하는 건 별개가 될 수 있다. 육아가 적성에 맞을 수는 있다. 아이의 기질이 순하거나 체력이 남달라 남들만큼 힘들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육아가 적성에 맞지도 않고, 아이가 둘이며 체력이 남다르게 좋지도 않은 평범한 여자 사람인 데다가 살림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육아를 시작하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게 참 회의가 들고 싫었다. 아이를 사랑하면 기꺼이, 좋은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과는 달리 육아에 지치고 자꾸만 자유를 갈망하는 내 모습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힘든데 그 힘든 걸 용납해주지 않아서 더 고통스러웠다. 지금은 안다. 아이를 사랑해도 내가 힘든 걸 다 상쇄시킬 순 없다는 것을.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보면 아이를 사랑하니까 나를 뒷전으로 해야 하는 힘든 육아를 감당해내고 있는 것 아닐까?
이왕 하는 거 가급적이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쁘게 했으면 좋겠다는 남편의 기대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건 남편의 기대, 남편의 몫이니 나와는 무관하다. 정말 그걸 원한다면 내 육아생활이 힘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같이 모색해주거나 그게 어렵다면 잘하고 있다, 고생한다고 인정과 격려를 해주는 게 훨씬 빠른 길일 것이다. 다행히 남편은 내 카톡을 보고 가타부타 말은 없었지만 아이들과 나를 분리시켜 쉬게 해 주었고, 그걸 나는 '몰라줘서 미안하다, 고생이다.'라는 말로 알아서 해석하기로 했다. 역시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자유를 행동으로 옮기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