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리스트(15년 전 모 회사에 입사할 때 지연 학연 혈연 등 아는 사람 정보를 적어놓은 노트)는 늘 나와 함께였다. 그 이름들은 최근까지도 내 일의 데이터베이스가 되었고 [휴심정원]*을 시작한 3년 전부터 더 자주 들추고 있었다.
40대 중반, 초등동기 모임에서 에스더를 처음 봤을 때 그녀에겐 미국 국적인 것 외에도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깊은 신앙심에 화려한 멋을 부린, 부조화의 어울림! 그때 그녀는 남편의 외도가 자신의 지루함이 원인이었다는 생각에 주변인들의 충고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때였다고 한다. 그 옷은 모임 당일 이태원에서 막 사 입고 온 거였다).
뚜렷하게 기억나는 추억이 없음(내가 기억하지 못한 아주 많은 교제가 있었음을 그녀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에도 그녀가 늘 궁금하고 그리웠다.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떠나기 전 남편과 함께 내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는데(내가 남편이 좋아하는 양고기를 대접한 적도 있었단다) 따뜻하게 대해서 보내지 못했다. 그것이 미련이 되었을까, 책장 한편에 그녀에게 선물 받은 성경책을 볼 때마다 연락할 방법을 모색했지만 일상에 밀려 늘 흐지부지 되곤 했다.
해피리스트에 있는 그녀의 이메일이 그날은 왜 선명하게 들어왔는지.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으며 프라두와 조르지의 우정에 꽂혀있었기 때문일까?
*[휴심정원]을 기획한 건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사람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뭘 좀 안다는 나이에 만났으니 노후까지 가져가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들과 사랑, 믿음, 정의, 지혜, 연민과 나눔, 공동체..... 나아가 죽음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랐다.
처음엔 내가 요리해서 나름의 잣대로 분류한 소그룹모임으로 시작했다. 놀이 운동 감상 토론 상담 독서 글쓰기 공부 여행 탐구 등의 콘텐츠로 성향, 세대나 성별을 뛰어넘어 함께 할 수 있는 신나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코로나가 가장 큰 걸림돌이긴 했지만 그것보다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정작 내가 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방해하는 자들이었다. 인간에 대한 실망과 기대치는 바닥을 쳤고 휴심정원은 나 혼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하는 장소로 변했다.
그녀에게 보낸 메일은 이틀 만에 답장이 왔다. 당장이라도 만나고 싶었지만 그녀는 큰딸 결혼 문제로 미국에 있었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몇 주 동안은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거기다 엄격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주말만 여유가 있었다. 물리적인 거리도 걸림돌이었다. 잠깐 통화도 했지만 나와 달리 그녀는 내 기억의 모습대로 침착했다. 편히 기다리자 하고 한 달이 좀 지났을 때 우리는 마침내 1박 일정을 잡았다. 그녀는 숙소를 나는 식사를 담당하기로 했다. 무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딱딱한 것, 기름진 것, 짜고 매운 것, 개고기를 포함한 육류 빼고 다 먹는다." 담낭제거술을 받았다는 그녀의 더 깡마른 모습이 상상되었다.
서울역에서 깊은 포옹으로 시작해서 그녀와 내가 동시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오후 10시(휴대폰에 설정해 둔 알람이 동시에 울렸다)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지난 세월에 각자 스토리가 오고 갔다. 둘 다 아침 점심 끼니를 챙기지 않았지만 이른 저녁식사에도 관심이 없었다. 질병(의사들의 반응에 대처하는 방식이 나와 동일했고 이래도 저래도 위험하며 선택은 내가 한다는 것. 나는 요가링을 선물했고 사용법을 알려줬다 ), 교육(그녀는 딸 둘 아들 하나, 나는 딸 하나. 부모는 아이가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독립심을 키우는 역할자),독서(나는 최근 다시 월든을 읽고 있는데 그녀는 월든호수까지 여행했고 책장에 고이 보관되어 있는 원서를 바로 읽겠다고. 뇌과학을 독서 중이고 나는 뇌과학에 기반한 강의를 들으며 명상 공부에 빠져있다)얘기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가톨릭이고 나는 불교 쪽이지만 경계심은 없었다(내게 선물해 준 성경책을 잘 읽고 있다고 했더니 그녀는 기억하지 못했다).
하물며 필사를 할 때 쓰는 도구에 대한 생각도 일치했는데 그녀가 만년필을 쓰다니.... 볼펜도 나는 제트스트림 1밀리 볼, 그녀는 0.5밀리 볼.
그녀가 내 세면도구를 보고 양치를 하다 말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너랑 같은 치약을 쓰네?". 향이 독특해서 한국에선 사용자가 드문 치약이었다.
나는 묵은 호텔에서 나올 때 처음 들어갈 때처럼 정리 정돈하는 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녀는 침대 위 이불마저도 사용 전처럼 가지런하게 해 두었다. 그래야 두고 오는 물건이 없다는 이유가 일치했다.
다음날 식사는 2인 예약이 불가한 한정식집이었는데 한 시간 반을 일찍 도착했다. 근처 카페에서 생강차를 마시며 또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단순한 에피소드로도 서로의 삶과 생각을 추측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 최근 들어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도 전혀 피곤을 느끼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보충하는 글:
그녀를 만나고 난 다음 날, 나는 아버지 병간 때문에 부산으로 갔고 뒤늦게 그녀의 안부 메시지가 와있는 걸 확인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오늘은 내게 어떤 일이 생길까?........ 젊을 때는 未定의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었고 지금은 그저 주어진 일정들이 순조롭게, 내가 감당할 수 있게 흘러가길 욕심부리는 일. 힘에 겨울 땐 내게 지혜로운 생각이 일어나거나 포기할 용기가 생기길 바라기도 하고.... 좋은 하루는 내 의지로 만들 수 있는 건가?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만들어봐야지. 굿데이!"
"나는 순간순간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걸려내고 흘려보내는 일을 한다. 비록 내가 가지고 있는 내공보다 더 많은 것이 요구되는 일로 지쳤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기대하며 몸을 추스르고 마음을 달랜다. 어쨌든 I am having a good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