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냉매(얼음주머니)가 필요한 선풍기를 "냉풍기"란 이름으로 부모님 집에 사드렸다가 시끄럽고 귀찮고 냉풍까진 아니라도 선풍기로서 제 기능조차 못한다고 타박을 받았다. 버리기는 아까워서 가져왔지만 나 역시 집 한쪽 구석에다 밀어놓고 있었다.
살인적인 더위로 밤낮없이 에어컨에 의지하다가 선풍기로 대체가능한 날씨로 바뀌자 구석에 있던 냉풍기를 내어보았다. 물통에 물을 받고 냉매주머니를 넣고 전원을 돌렸더니 정말 요란하다. 가까이에서도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거실에서 돌아가던 선풍기는 제 역할을 다했노라 터걱터걱 소리를 냈고 분리해서 고쳐보려다 폐기하는 걸로 마음을 굳힌 터라 남은 여름을 대체할 바람이 필요했다.
구매하기 전에도 그랬지만 이 제품에 대한 정보를 다시 찾아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극찬은 아니었지만 써볼 만하다고...
당장 절실했기 때문에 그냥 두고 보았다. 점차 소리가 잦아들었고 제법 시원한 바람을 뿜어댔다. 조금 멀찍이 떨어뜨려놓았더니 오히려 방 전체에 냉기가 돌았다. 아래 물통에서 위로 끌어당겨 필터를 거치는 동안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자연에서 유유자적하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