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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Aug 14. 2023

J 아내와 P 남편의 한 명만 고통받는 에버랜드 도전기

그 중간이 되고 싶다

어느 날이던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던 4월이었다.

주변의 아기친구 엄마들이 하나둘씩 에버랜드 인증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두 돌 때쯤 됐으니 에버랜드가도 재밌게 놀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우리도 에버랜드 갈까 하고 제안했다.


남편은 5월 1일이 어떻냐고 했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이번에 5월 1일은 월요일이니 혹시 눈치게임에서 성공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좋아!’


나는 그때부터 네이버에 검색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두 돌 아기 에버랜드' 검색


얼마나 혼잡한지 검색해 보니 (평일이 아니고서야) 오픈시간 한 시간 전에 미리 가야 입구 가까운 곳에 주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인기 있는 어트랙션 웨이팅 꿀팁, 두 돌 아기가 탈만한 놀이기구, 최적의 동선, 점심 식사 메뉴 등등 수많은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참고해서 계획을 짰다.


어딜 여행 가도 회사에서 업무를 맡아도 계획부터 짜는 나는 '계획형'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런 내게 에버랜드는 또 하나의 과업(?)처럼 느껴졌고 꼭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남편에게 에버랜드 계획을 보냈다. 그리고 아침에 늦잠 자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에버랜드 발레파킹을 알아두고 남편에게 예약하라고 알려줬다.






5월 1일 아침, 먼저 일어난 나는 아이를 챙기며 남편이 씻는 시간에 맞춰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내가 일어나라는 소리를 5번 정도 더 하고 나서야 겨우 침대에 걸터앉았다.


'얼른 일어나. 오빠 지금 씻어야 우리 일찍 갈 수 있어'

'응 알겠어~ 조금 늦게 가면 다른 데 가지 뭐. 이런 거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


9시에 출발하기로 했던 우리는 예상시간보다 30분 늦게 출발하게 되었고 이미 입구 가까운 주차장은 만차였다.

만차보다 더 심각한 건 차에서 아직 내리지도 못하고 주차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렸고 차에서 한참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때까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우린 어떻게든 에버랜드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다려서라도 에버랜드에 갈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야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아침까지 태평하던 남편은 결단을 내린 듯 말을 꺼냈다.

'그냥 돌아가자. 어차피 들어가도 고생할 것 같아.'

'여기까지 기다렸는데 그냥 돌아가자고? 너무 아깝잖아'

'에버랜드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어. 저기 좀 봐봐'


남편이 가리킨 곳에는 셔틀버스에 타서 입구로 가는 엄청난 사람들이 있었다. 순간 아이를 안고 유모차를 틀고 저 버스에 탈 생각하니 아찔했다.


'알겠어...'


평소에 차를 오래 타면 짜증을 내던 아이는 마음 아프게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어젯밤 내가 내일 아주 재밌는 곳에 갈 거라고 너무 떠벌려 놓은 탓일까.

벌써 시계는 1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며칠 전 남편에게 공유해 줬던 발레파킹 예약을 했냐고 물었더니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몰랐어. 발레파킹 없이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

‘응… 그래’






기대하는 눈빛의 아이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보다 오늘을 위해 내가 준비한 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이것저것 알아보며 오늘 꼭 재밌게 놀거라 생각했는데 아침 출발이 늦어지면서 모든 게 다 엉망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우리 서울대공원이라도 갈까?'

나는 남편에게 갑자기 서울대공원을 가자고 했다.


남편은 한번 가보자고 했고 에버랜드만큼 서울대공원도 엄청난 사람들이 이미 있었다.

여기서도 한 시간가량 주차장을 들어가기 위한 사투를 벌이다가 남편이 다시 말했다.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아. 그냥 돌아가자.'


이번에 나는 더 기다려보자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원한대로 흘러가지 못한 하루에 화가 났다.

모든 게 다 망쳐진 것 만 같았다.


오늘 아침에 미리 일찍 나올 수 있었다면

남편이 발레파킹을 미리 예약해 줬다면

우린 지금쯤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에 반해 태평한 남편이 미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하루에 나 스스로는 의미부여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내겐 아이와의 약속이 있었다.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

그리고 나와의 약속도 있었다.

나는 꼭 이 인파를 뚫고 먼저 도착해서 에버랜드 성공기를 만들 거라는 나와의 약속이었다.






집으로 향하던 차는 집 근처 키즈카페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이는 정말 뛸 듯이 기뻐했고 3시간이 다되도록 놀고 나서도 집에 가지 않겠다고 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 부부는 서먹서먹한 며칠을 보냈다.

그 뒤 우리는 서로가 느낀 그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남편은 내게 말했다.

'에버랜드는 그날이 아니어도 갈 수 있는 곳이잖아. 그렇게 길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아까웠어'

'그렇긴 하지만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어. 다들 가는데 우리만 중간에 포기한 느낌이잖아'

'다음엔 꼭 가자. 이번에 이렇게 고생해 봤으니 그땐 더 잘할 수 있겠지'


우리는 2주 뒤 주말로 에버랜드 일정을 잡았고

남편은 발레파킹을 예약하고 나와 약속한 아침 시간에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전날 저녁부터 쏟아진 비에 아침까지 비 예보가 있었지만 우리는 비 맞아도 놀자! 라며 출발했고

그날 비는 오지 않았다.


잘못된 날씨 예보로 에버랜드에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이걸 운이라고 해야 하는지 하늘이 날 놀리려고 그러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신혼부부일 때는 한 명이 계획형이고 한 명은 유연하고 즉흥적인 우리가 딱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키지 않아도 척척 계획을 짜오고 남편은 그런 나의 계획을 군말 없이 따라줬다.


만약 어떤 상황 때문에 계획이 틀어지면 나는 패닉이 오지만

남편은 그런 나를 진정시켜 주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려주곤 했다.


그런데 아기가 생기니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나는 아기의 의지까지 투영하여 이뤄줘야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우리 아기의 특별한 하루, 그날 내가 이뤄내고 싶었던 건 그거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 계획형이 낫다 즉흥형이 낫다 하며 서로를 부러워한다.

우리 아이는 어떻게 커야 할까. 그 안에 답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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