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답이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
‘핸드폰 열고 3번째 열에 앱 목록 열어 첫 번째 앱 클릭’
내 핸드폰에 인스타그램 앱 위치이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면 늘 인스타그램 앱을 먼저 켠다.
패션에 많은 관심이 없는 나인데도 가을이 오니 브라운 계열의 가방이 하나 갖고 싶어졌다. 올봄부터 잘 가지고 다니던 밝은 노란빛의 가방이 이 계절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탓인지.
가방을 사려고 인스타그램을 켰다.
알고 있는 몇몇 인플루언서의 가방을 확인해 본다. 그중에 맘에 드는 게 없어 해쉬태그로 검색해서 가방을 살펴본다.
‘#ootd’
난 그렇게 출근길 내내 한참을 가방을 검색했다. 가격, 색상, 디자인 모든 게 중요하긴 하지만 내겐 이 가방이 ‘검증된’ 가방인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내 눈에 예쁘고 내가 메기에 실용적인 것 이전에 이 가방이 인기가 많은 가방인지, 혹여나 유행이 끝나버린 가방은 아닐지가 더 궁금했다.
며칠을 그렇게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며 가방을 찾아보다 어느 날은 새벽 내내 인스타그램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날 발견했다.
물건이라는 게 내 맘에 들면 그만인데 나는 왜 그렇게 ‘검증된’ 가방을 찾고 다녔던 것일까.
옷을 잘 입고 패션을 잘 아는 검증된 인플루언서들이 메는 검증된 가방을 들고 다니면 나도 어떤 기준선을 넘은, 검증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시험엔 늘 정답과 오답이 존재한다.
새벽 내내 인스타 속에 셀럽이 어떤 가방을 메고 있는지가 중요했던 내가 깨달은 건
내가 메고 싶은 가방엔 정답과 오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인스타그램 앱을 지웠다.
나는 인스타그램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이런 것들은 점점 잊게되고
남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게 인기 많은지 를 무의식적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요즘 누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가방이 트렌드 인지 아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로 내 일상을 채우는 것.
그게 어쩌면 내가 늘 갈망했던 것 아니었을까?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의 취향, 나의 무드.
언젠가 옷장 가득 채워질 나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