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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Dec 26. 2023

깍두기가 된 김에 커피를 끊어보자

카페인 없는 직장인의 삶

2년 6개월 만에 다시 직장인이 되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던 어떤 부서에 배정받던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우리 팀은 나 빼고 모두 남직원이었다.

거기다 우리 팀 분들은 모두 흡연자다.


전 직장은 거의 5:5 비율에 맞춰져 있었고 팀 내 흡연자가 1-2분 정도였던 거에 비해 분위기가 무척 달랐다.


처음 한 달은 어벙벙 팀 내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몰랐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깍두기 같았다.


전 직장에선 아침에 모두 모여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이곳에선 아침 커피는 모두 각자 사 왔고

전 직장에선 점심 먹고 다 같이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이곳에선 식사 후에 모두 흡연을 하러 간다.


팀원들과 모여 소소하게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던 나의 일상은 이제 큰 꿈이 되어버렸다.



깍두기가 된 김에 커피라도 끊어보자.


처음 한 달은 나도 그들의 패턴에 맞춰보려 했다. 출근길에 커피를 사들고 점심이면 자리에 앉아 쉬었다.


그런데 혼자 사들고 와 먹는 커피는 영 생존을 위한 수혈 이상으로는 안 느껴졌다.

그 와중에 재취업 이후 살이 찌게 되면서 달달한 커피라도 끊어볼까 하는 생각에 커피를 끊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먹지 않았던 물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달달한 커피를 마셨던 사람이라는 점 참고)


내가 세 달 동안 커피를 끊으면서 몸에 느껴진 변화는


1. 체중이 줄었다.

  달달한 커피를 좋아했던 내가 커피를 안 먹게 되니 몇 주 만에 2kg이 빠졌다.

2. 물 물 물 물이 들어간다.

  하루에 500ml도 안 먹던 못 먹던 내가 오전 일과 중에 500ml 물을 다 마신다. 심지어 출근길에 얼른 가서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3. 피부가 좋아졌다.

  물을 마셔서 인지 커피를 끊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피부가 더 맑아지고 주위에서 피부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4. 꿀잠 예약

    카페인에 예민한 편이라 새벽에 가끔 깨거나 하면 다시 잠들기 어렵고 잠들 타이밍을 놓치면 잠이 오지 않아서 수면 패턴이 일정하지 않았는데 커피를 끊은 이후로 매일 일정한 시간에 숙면이 가능해졌다.

5. 커피의 노예에서 해방

   커피를 끊고 한동안은 피곤함에 힘들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이 더 말짱해졌다. 팀장님이 우리 팀에서 표정이 젤 좋은 사람이 나라고 말할 정도로 커피를 먹지 않아도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히려 깍두기가 된 게 좋아


커피를 끊고 나서 생긴 몸에 변화가 무척 맘에 들었다. 오히려 깍두기가 되었기 때문에 내 의지로만 행동할 수 있어서 생긴 좋은 변화였다.


늘 누군가의 취향에 기분에 나를 맞추던 사회생활만 있을 줄 알았는데 비자발적 깍두기는 내게 새로운 반전은 보여준 것 같다.


하지만 늘 좋은 면만은 있을 수 없듯이

깍두기로 지내는 건 어느 정도의 외로움이 늘 따라다닌다. 내가 이 외로움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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