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1년 차 꼬꼬마
워킹맘이 되기 위해서 혹은 되어야만 해서
내가 선택한 첫 번째 회사는 분위기만큼은 확실한 워라밸이 보장되는 회사였다.
아이 케어를 위해서 낮은 업무강도와 워라밸을 가장 최우선으로 본 것이다.
그 당시 나의 출퇴근시간은 8-5, 남편은 10-7였는데 그렇게 정한 이유는
남편의 회사가 야근이 많고 업무강도가 힘들기로 유명했던 탓에
내가 일찍 출근하고 빨리 퇴근해서 아이를 보고
야근이 거의 일상다반사였던 남편이 자유롭게 퇴근 시간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다녔던 곳은 IT 기업 중에서도 정말 드문 분위기를 가진 곳인데
회사 자체가 야근을 강요하지도 않고 사람들도 야근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해도 워킹맘 혹은 워킹 대디로서 다니기에 최고의 회사,
다만 개인의 성장이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회사였다.
하지만 가끔 이런 회사를 다니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일이 몰릴 때는
야근을 해야 할까 싶은 날도 있었고
팀에 이슈가 생긴 날에도 나는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배려를 받으며 그나마 빠른 퇴근을 했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는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것 이외에도 더 잘 해내고 싶은 업무 혹은 더 잘할 수 있는 업무도
하원 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를 생각하면 잠시 다 눌러두게 되었다.
그러니까, 커리어적으로는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회사생활을 했다.
그래도 그 회사를 다니면서 워킹맘으로 회사 참 잘 골랐다 싶었고
다행히도 1년을 다닐 동안 단 한 번의 야근 없이 매일같이 칼퇴근을 지켰다.
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은 칼퇴근을 해야 집안이 돌아간다는 말을 너무 실감하게 되었다.
6시면 집에 도착하여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놀아주고
누군가 보기엔 더할 나위 평화로운 일상,
그런 일상을 위해 나도 남편도 치열한 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나 개인적인 커리어 측면에서 봤을 때는 아쉬움이 남는 그런 생활이었다.
그러던 중 좋은 기회가 생겨 회사를 이직하게 되었다.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기술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회사였고
출퇴근 거리도 기존과 별 차이 없었다.
기대를 한껏 품고 첫 출근을 하고 며칠 분위기를 살폈는데
워킹맘으로 다니기엔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이곳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예전처럼 8-5 같은 생활은 기대할 수 없었다.
또 한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어서 야근은 거의 필연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입사하고 맞이한 첫 주말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욕심에 이직을 선택했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높게만 느껴졌다고나 할까.
나의 가치는 늘 1순위가 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작은 욕심 때문에 이 선택이
우리 가족을 위해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를 한참을 되물으며 말이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남편이 일요일 저녁 나를 불러 담담히 말했다.
그동안 육아를 하며 가족을 위해 많이 희생한 거 알고 있다고,
그리고 이제는 본인이 뒤에서 우리 가족을 지킬 테니
야근이 필요하면 야근을 하고
공부가 필요하면 공부를 하고
하고 싶은 만큼 마음껏 다 해보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는데,
내 눈물버튼은 다름 아닌, 나의 노력과 희생을 누군가 알아주었다는 것이다.
퇴근하고 와서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일,
누군가는 간단하고 생각해버리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고맙다고 여겨주고 그동안 쭉 생각해 왔다는 것.
그리고 이제 그 짐을 좀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그 따뜻함에 눈물이 났다.
물론 야근이 없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결말이라 생각하기에
아침에 조금 더 일찍 가서 열심히 해보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애써 씩씩한 척 웃어보았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워킹맘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야근을 하게 되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