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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Dolphin May 08. 2018

나는 행복을 보류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의 존재가 당연하지 않다는 자각의 순간.

갑작스러웠다.


스무 살 여름, 나는 몸에 이상을 느꼈다. 심각한 건 아니겠지, 하고 혼자 찾아간 병원. '별 건 아니겠죠?' 묻는 내게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운을 뗐다.


"악성 종양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직 검사를 해봅시다."


그렇게 나는, 얼떨떨하게 검사실 침대에 누웠다. 마취크림을 바르고 몇 분을 누워있었을까. 검사를 마친 간호사 선생님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하셨구요, 앞으로 결과까지 2주 정도 걸릴 거예요. 그때 다시 오세요."


지옥 같은 2주가 그렇게 시작됐다.




"병원 잘 다녀왔어?"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대수롭지 않게 묻는 엄마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악성 종양일지도 몰라서 조직 검사받고 왔다고 말씀드려야 하는 걸까. 때로 지나친 솔직함은 가혹하다. 그냥 간단한 검사 몇 개 정도 하고 왔어. 2주 후에 다시 오래. 나는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방에 들어와 노트북을 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이 말한 나의 의심 증상은 생존율이 10% 미만인 병이었다.


단 10%.


스무 살 내 인생의 미래가 고작 10%의 가능성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은 없는 것처럼 미친 듯 달려온 관성이 나를 자꾸만 끌어내렸다. '의심'을 말로 내뱉는 순간 현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2주 간의 기다림은 고요하고 두려웠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런 순간이 앞으로 내 일상이 될 것만 같아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했다. 만약 2주 후 인생을 뒤흔들어버릴 단 한 마디를 듣게 된다면, 그 한 마디가 내가 그토록 꿈꿔온 미래를 앗아가 버린다면,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예상보다 너무 일찍 찾아온 죽음이라는 그림자 앞에 스무 살의 나는 무기력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바쁜 학교 수업을 마치고 과외를 다녀오는 길, 해가 진 아파트 입구에 들어설 때 알았다. 나의 일상은 검사실 침대에 누웠던 순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내가 오늘을 희생해, 미래에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그 미래의 존재가 당연하지 않다는 자각의 순간.


나는 행복을 보류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의 존재가 당연하지 않다는 자각의 순간

성공을 위한 인내심이 미덕이라고 배웠다. 당장의 행복을 외면하는 인내심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이전 글에, 나의 혹독하고 허무한 범생이 인생을 기술해놓았다.)


매 주말 저녁 가족과의 따뜻한 저녁 식사를 포기하고 자습실에 혼자 남아 문제집을 잡을 때. 날씨가 좋다며 놀러 나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책상에 앉아 명문대 사진을 만지작거릴 때. 유럽 여행을 준비한다는 친구의 문자를 받으며 과외 학생의 집을 나설 때,


나는 오늘의 행복을 보류했다.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 것도 이 2주 사이의 결심이었다. 당장 10%의 확률에 내 미래를 걸게 된다고 해도 이 일들만은 꼭 하고 눈을 감아야겠다는 독기 같은 게 서렸다.  


내게 허용된 짧은 삶이라는 전제 앞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내일이 아닌 '오늘 당장의 행복'이었다. 수영장이 딸린 넓은 집 구매하기, 빨간색 스포츠카 구매해서 드라이브 떠나기, 성공적인 커리어 쌓기, 영향력 있는 사람 되기 등의 목표는 허영이고 사치였다.


매일 가족들과 얼굴 보며 저녁 식사하기, 감사한 이들을  모두 찾아가 편지와 함께 고마움 전하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물건 나눠주기, 가족과 싸우지 않고 웃으며 여행 떠나기, 배낭 하나 매고 최대한 넓은 세상으로 떠나보기, 내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글 쓰기, 그리고 나와 같은 착각을 하지 않도록 많은 이들에게 오늘의 소중함을 알리는 편지 적기.



긴 기다림 끝에, 걱정과는 달리 이상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 이후에도, 내 소박한 버킷리스트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오늘의 불행이 모여 미래의 행복을 만들어낼 거라는 집착에 가까운 믿음을 안고 산다. 그리고 그 믿음 뒷면에 우리의 미래는 확실한 전제처럼 깔려있다. 전제가 무너지면 믿음도 무너진다.


미래가 없을 수도 있다는 자각의 순간, 우리는 무작정 오늘의 행복을 보류할 수 없다.


당장 내일이 인생의 마지막이라면, 오늘의 우리는, 오늘처럼 살지 않았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벌써, 혹은 아직 스물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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