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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Oct 25. 2024

집을 찾아서

기억 소환 2 소풍

  지글지글 타오르던 태양이 멋쩍은 미소를 짓자, 바람도 구름도 나무도 산들산들 춤을 춰. 사람들은 짧은 옷을 서둘러 벗고 장롱 속에 접어놓았던 추억을 꺼내 입어.

  아이는 버스창을 열고 기대어, 기다란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게 너무 좋았어.

가슴깊이 묻어두었던 생각의 조각들이 바람을 가르며 창밖으로 흩어져 버려.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떨어져 내려.

  '행복해.'

처음으로 생각해 봐.

 '나는 행복해도 되는 사람일까?'

살아있다는 것은 가을의 두근거리는 향기를 맡는 것,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질이는 것. 아이는 온몸으로 그것을 느껴. 마음껏 이 아닌 작은 호흡으로 행복을 조심스레 삼켜. 그런데 아이의 눈엔 자꾸 눈물이 고여.

'하늘이 너무 예뻐서야!'

'햇살이 너무 눈부시니까...'


  그날도 그랬어. 몸 약한 엄마가 외삼촌등에 업혀, 병원으로 실려간  다음날, 엄마를 보러 가는 그 하늘이 왜 그리 예쁘던지. 그 하늘 유난히 시리던 그 하늘을 다시 보지 못하고 엄마는 떠나셨지. 그 이후로 맞이한 모든 가을은 아이에게 아름다운 만큼의 슬픔이 되었어.

열여섯 푸르른 하늘 너머로 그렇게 엄마를 보내야 했던거야.


  아이는 소리 내고 우는 법을 잊어버렸어.

그날, 새하얀 천으로 꽁꽁 감싸서 쌀과 지폐를 엄마의 몸에 여기저기 끼워 넣을 때

아이는 태어날 때 이후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음을 소리로 내뱉었어. 어른들의 만류에도 슬픔을, 분노를, 고통을, 원망을 짐승처럼 온몸과  통곡으로 내뱉었어.

그리고 끝이었지. 아이는 스스로 말해.


'엄마는 이제 영원한 집으로 돌아간 거야. 이제 가난하지도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으니까 된 거야. 엄마의 인생이란 소풍이 좀 따뜻했으면 좋았겠지만, 이젠 집으로 돌아가셨으니 행복하시겠지. 그러니까 고아가 된 나의 아픔과 힘듦은 기꺼이 겪어내자.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한 마디 못한 못난 나는...  울 자격조차 없는 죄인 같아.

기꺼이 피하지 않고 겪어나가자. 그리고 이겨나가자. 엄마가 맘 아프지 않게.

그렇게 꾹 꾹 아픔을 , 때론 웃음을 살아내다가 가자. 그곳으로. 엄마가 먼저 계신 본향집으로.'


  열여섯 아이는 그런 마음으로 스스로를 날마다 다짐하며 그렇게 어른이 돼.

그리고 더 이상 버스창 유리문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지  않아.

그보다는 더 잘 웃고, 타인의  함께 울어주고, 시시껄렁한 시도 써.

어차피 나온 소풍, 하늘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콧노래도 불러보기로 해. 그리고 날마다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해. 그때, 달려가서 엄마를 안아볼 수 있을까 상상도 하면서.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아이는, 이렇게 지나가 버린 눈물도, 웃음도, 바람도 온기까지 모두 소중하다는 걸 알게 돼.

그것들을 '사랑했다.' '행복했다.'라고 부르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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