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문제로 휴직을 결정하고 집으로 돌아와 연분홍 꽃과 풀이 빼곡하게 그려진 푹신한 이불 위로 엎어졌다. 길었던 겨울을 지나, 이제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도 따뜻한 햇살이 침대 위로 내리쬔다.
'조금만 지나면 무더운 여름이 오겠구나' 라고 되뇌이며 아직은 뜨겁지 않고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햇살 속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휴직이니 진단서니 등의 문제들로 마음이 어지러웠지만, 그와 달리 일몰의 선선한 공기가 따뜻한 햇살과 함께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느낌은 꽤 마음에 들었다. '뭐든 먹고 살겠지'. 당시 내 심경이었다. 사실 되돌아보면 당시의 내겐 앞으로 '뭘 하고' 먹고 살아야할지를 고민할 힘조차 없었기에 고민을 미래의 나에게로 저 멀리 유보한 것이었다.
“어? 집에 있었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내 자취방 문을 열고 친언니가 들어왔다.
친언니의 두 손에는 내 자취방에 있던 연두색의 장바구니와 비닐봉지가 가득 쥐어져 있었다.
“응, 저녁 약속 가기 전에 잠깐 누워있으려고”
그러고는 언니는 내게 회사에 퇴직과 관련해 얘기를 잘했는지 물어봤다. 나는 퇴직은 못 했고 휴직해야 할 것 같다고 대답하며 저녁 약속 전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이후 저녁 약속을 갔다 돌아오니 언니가 활짝 웃으며 “내가 스무디 일주일 치 재료 손질해놨디~!”라고 말했다.
전혀 생각치도 못 했던 일이라 놀랐다. 그리고 그 순간 복잡했던 마음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친 순간들이 스쳐갔다. 그 날 근무 중 언니에게서 “집에 장바구니 어디 있어? 못 찾아서~”라고 왔던 연락, 그리고 언니의 두 손 가득 쥐어진 장바구니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내 건강이 좋지 않은 걸 알았기에 매일 아침 야채 스무디를 갈아 먹는 나를 위해서 몇 시간에 걸쳐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하루치 재료들끼리 소분해 둔 것이었다.
언니가 다시 부산으로 떠난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아직은 잠이 덜 깬 상태로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에는 언니가 사다 둔 토마토, 양배추 그리고 소분해둔 야채들이 가득했다. 선명한 빨간색에 삐죽삐죽한 짙은 초록 잎이 붙은 토마토를 하나 집어 들어 수돗물에 씻는데 당황했던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본인이 1인분이 2인분씩 소분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비죽 새어 나왔다. 이어서 ‘이 많은 토마토, 양배추, 사과, 당근까지. 집 앞 야채 가게에 가서 잔뜩 사 왔구나’, ‘엄청 무거웠을 텐데 직접 들고 온 거봐, 진짜 씩씩하네ㅋㅋㅋ’, ‘양배추랑 당근 삶는 것도 진짜 쉬운 일이 아닌데…’하는 생각들이 뒤따라 왔다.
우리 언니는 나랑 두 살 터울이다. 내가 20대 초반이고 언니가 20대 중반일 때, 언니는 나에게 있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가장 이해하고 싶었던 존재였다. 오죽하면 언니와 나는 “같은 엄마 배에서 나왔는데 어쩜 이리 다를까?”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했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학교를 다녔고 대학교도 고향인 부산을 떠나 타지에서 다녔다. 그랬기에 성인이 돼서 진득하게 대화할 순간이 없었다.
우리 언니는 “사랑해” 같은 단어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잘 하지 않는다. 반면 나는 “사랑해”라는 말에 얹어 “너밖에 없어”와 같은 말들을 하는데 스스럼이 없다. 같이 본가에서 살기 전에는 언니는 오글거리는 걸 싫어하고 시니컬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내가 약학대학을 다니며, 언니가 강사 일을 하게 되면서 우리 둘 다 본가인 부산으로 돌아와 함께 살게 되었다. 우리의 책상은 나란히 붙어있었고 나는 공부를, 수학 강사였던 언니는 수업 준비를 하며 많은 시간을 서로의 옆에서 보냈다. 너무나 다른 우리 둘은 내가 약학대학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1년은 서로의 다름에 감탄하며 지냈고, 그 뒤 3년은 거의 매일 서너 시간씩 대화하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게 되었다. 4년의 세월에는 힘들거나 방황하는 시기가 있었고, 그럴 때면 “왜 그렇게 생각해?”, “뭘 할 때 제일 행복해?” 혹은 “언니는 운동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해 보여” 등의 얘기로 서로에게 조언과 공감을 해줬다. 그 시간을 거쳐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지나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내가 알게된 언니는 여리고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랑한다는 단어로 사랑을 표현하기보다는 가을이 되면 무화과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무화과를 슬쩍 집에 사두는 사람이었다. 그런 언니에게 우리 집 가득 채워둔 토마토와 사과는 사랑한다는 말이자 마음이 복잡한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어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언니가 손질해둔 야채들 속에는, 언니가 나를 위해 야채와 과일을 하나씩 고르고 집으로 옮기고 손질해 둔 그 순간순간에 담겨 있는 고민, 수고로움이 묻어 있다. 불어오는 초여름의 따뜻한 바람 속에서 언니가 남겨둔 토마토를 물로 씻으며 사랑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