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혜진
가을,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기억에서 꺼내 올 낭만적인 추억이 없을지 고민했어요.
매년 단지 내에 아름답게 지는 단풍과 은행나무가 떠올랐다가,
상의는 긴팔, 맨다리에 치마만 걸칠 수 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갑자기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갔던 기억이 나는 거예요.
뒷산으로 소풍을 갔었던 기억.
초등학교 소풍이 으레 그렇듯 비슷한 행사들을 치르고, 대미라고 할 수 있는 보물 찾기를 했던 추억도요.
어린아이였는데도, 어른들이 숨길만한 곳이 왜 그렇게 눈에 잘 띄는지.
좀 특이하게 생긴 바위 밑을 둘러보면 어김없이 흰 종이가 숨겨져 있고, 제 손이 닿을만한 나뭇가지 위를 유심히 보면 역시나 흰 종이가 있더라고요.
그 날 찾았던 보물찾기 종이만 네 장.
선물을 네 개나 받을 수 있단 생각에 잔뜩 신이 나 있던 저에게 담임 선생님의 찬물 끼얹는 말.
넌 욕심쟁이구나. 세 장은 다른 친구 나눠줘.
어렵게 찾은 보물찾기 종이 세 장을 다른 친구들에게 결국 나눠주고, 시무룩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른 친구들은 김밥 먹고 놀 때, 나는 열심히 종이를 찾으러 다녔는데'
'종이를 찾느라, 손에 흙이 묻었는데'
'나뭇가지에 걸린 종이를 꺼내느라 손이 살짝 핥퀴었는데'
그런데, 왜 내가 찾은 종이를 친구들에게 나눠주어야 하지?
아마 선생님은 '형평성'이란 걸 따져서 말씀하신 게 아닐는지.
한 아이가 몰빵 해서 선물을 다 가져가기보다, '소풍의 취지에 맞게' 참여한 모든 어린이들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요.
형평성 : 동등한 자를 동등하게 동등하지 않은 자를 동등하지 않게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생님 입장에서 보면 형평성에 어긋난 일을 제가 저지른 거지만, 제 입장에선 권리가 제한된 셈이죠.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격상되면서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문을 다 닫았잖아요.
테이크 아웃만 된다는데, 사실 카페라는 공간을 빌려 쓰기 위해 오는 이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매출에 큰 영향을 입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이상한 건, 아무리 큰 카페라도 개인이 운영하는 점포면 셧다운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모양이에요.
정부에서 '프랜차이즈는 안돼'라고 콕 찝어 지정한 까닭에 이 범주에 걸리지 않는 업소들은 큰 문제없이 영업을 하는 거죠. 여기서도 형평성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고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 '면적이 넓은 장소'에 사람이 모이지 않도록 한 의도는 이해해요.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게 세워 단속을 쉽게 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랜차이즈'에 한정한 점은 좀 이해하기 힘들지만요.
거대 자본을 가진 프랜차이즈 점포는 괜찮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 사업장은 피해를 최소한으로 해야지-라는 의도였다면 역시나 형평성에 어긋나고요. (사실 스타벅스를 제외한 나머지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이름만 빌렸을 뿐 전부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 규모가 많으니까요)
만약 선생님이 보물찾기 종이를 '몸이 불편한 친구들에게 좀 나눠줘'라고 했더라면 별로 속상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몸이 불편한 친구라면 같은 조건에서 보물 찾기를 하는 게 아니니까요. 배려해주는 게 맞다고 봐요.
'넌 가진 게 많으니깐 좀 나눠줘'
'넌 맏이니까 좀 양보해'
기준 없이 '다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는 거죠.
가을-이라는 주제를 떠올리고는 좀 낭만적인 글을 쓰고 싶었는데,
왜 형평성으로 마치게 되었는지 조금 침울한 마음이 드네요. 역시나 코로나 영향일까요.
저희 아이는 개학 후에도 학교를 못 가고 있어요. 학교 열 번도 못가보고 곧 2학년이 되지 싶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길요.
요즘 블로그에서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어를 쓰는 블로거들 많더라고요.
특히나 수강생들 끌어모아 강의를 업으로 삼는 분들이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쓰면 굉장히 의아한 생각이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