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일기 by 혜진
은결님, 벌써 9월이 사흘밖에 남지 않았네요. 은결님은 새로운 공부, 공기처럼 깔린 육아와 일상을 분주하면서도 차분하게 이어가는 것 같아요. 제가 '가을,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드린 것이 약간 죄송했을 정도로 글에선 안정감이 느껴졌어요.
저는 힘들었던 9월을 보냈어요. 9월이 지나가버려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도 있고요.
주로 회사일 때문에 그랬지만, 힘든 마음을 터놓고 나눌 곳이 없어 외로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회사 다닌 지 15년 차. 마음이 단단해지고 맷집도 강해졌다 생각하는데 한 번씩 이렇게 걸려 넘어지네요. 남의 돈 받기가 쉽지 않단 거 한 두해 겪은 일도 아니건만, 한 번씩 모욕감을 견디느라 힘들고요. 어느 날엔간 퇴근하고 너무 피곤해서 씻지도 않고 쓰러져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침대 대각선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핸드폰만 보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와요. 갑자기 눈물이 벌컥. 왜 이러고 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를 붙들고 갑자기 대성통곡하니, 깜짝 놀란 아이도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따라서 울기 시작. 한참 부둥켜안고 울다가 서로 멋 젓게 웃는 걸로 마무리했는데, 이상하죠. 울고 나니깐 기분이 훨씬 낫더라고요.
일이란 것이 누군가에겐 끊을 수 없는 괴로움인데, 누군가에겐 체력, 여력, 환경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아픈 상처일 수도 있더라고요. 큰 의미 없이 개인 블로그에 적은 일에 대한 열정, 고민이 의도하지 않은 폭력이 될 수도 있기에 회사일은 자주 언급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데 참 외롭더라고요. 외로운데, 외롭고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15년의 회사 생활을 하며 몸으로 배운 지혜라면, 그 시간도 결국 지나가더라는 것. 아무리 힘든 일도, 좋은 일도 결국엔 지나가더라는 것. 그런 마음으로 9월을 버티며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마무리가 되어가는 것 같고요.
힘든 마음과는 별개로 기계적으로 새벽에 일어나 치르는 루틴들이 그 시간을 이겨내게 도와준 것도 같고요.
또 하나, 경중의 차는 있을지언정 남들도 다변적이고 힘든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아는 걸 아는 것. 새삼 그런 생각을 하면 묘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인생 쉽게 사는 사람이 누가 있나 싶은 마음에.
그래서 저는 10월이 좀 설렙니다. 9월을 훌훌 털어버리고 조금 더 가볍게 시작할 수 있어서. 올해 남은 3개월, 마지막 4분기의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보렵니다.
은결님은 방통대 일본어 공부가 잘 되고 있나요? 우리 다음 주제는 일본어로 해볼까요? 仕事とは全く関係ない日本語を何故勉強しているのか、聞かせてください! 무슨 뜻인지 다 아셨지요? :) 다음 편지,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