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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Oct 09. 2020

견뎌내는 무엇에서 하고 싶은 일로,

다정한 일기 by  은결

혜진님 :)

혜진님이 제시해주신 '일'이라는 주제를 두고 며칠을 생각했어요. 정말 나에게, 내가 여태껏 해온 그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아마 다시 복귀하기 전까지 계속 고민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만요.


2005년 졸업 후 곧바로 25살의 나이에 공무원이란 직업을 가졌어요. (00학번이었으나 1년 놀고먹는 휴학을 했었거든요.) 원래 저는 대학원 진학, 결국엔 교수, 라는 거대한 꿈이(?ㅋㅋㅋ) 있었거든요.. 로봇 관련 공부를 계속해보고 싶었는데,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우둔한 아이는 엄마가 요구하는 '직업을 가지고 니 힘으로 공부를 하거라'라는 말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내 시간을 가장 많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5년 안에 나는 여길 떠나겠다, 라는 비장한 각오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래 저래 세월 속에 묻혀서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에까지 묶이니 오도 가도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답니다.


공무원 하면, 대부분 편한 직장,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 이라고 떠올리잖아요. 정년이 보장된 건 맞지만, 편한 직장은 결코 아니랍니다. 수직관계가 철저한 곳, 말도 안 되는 민원들이 활개 치는 곳, 소문이 무성한 곳, 일에 대한 능력이 아닌 사람 관계에 대한 능력을 더 쳐주는 곳.... 못 버티고 일찌감치 나가는 사람들도 많이 봤어요. 물론 공무원 세계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저 테두리를 거의 못 벗어나는 것 같아요.


원래 성격이 순응적인 저는, 별 노력 안 해도 티 안 나게 조용하게 묻혀서 잘 생활하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관계는 좁게, 그냥 내 일하며, 그렇게 지내왔어요. 공무원 세계에서 특출 난 인재는 아니었지만, 한 자리를 차지하면 다른 사람이게 피해는 주지 않는 사람으로 지내왔죠.


공직자로서의 사명감? 처음엔 생각해보지 않았아요. 일 외에 시간은 무조건 내 시간으로 만들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일을 하면서 조금씩 사명감, 이란 단어가 마음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사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버티기가 더 어려운 곳이 공무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네요.


비록 실무자지만 내 결정으로 인해 주민들이 손해를 볼 수도 이익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은(소소한 것이라 해도) 마음을 돌덩이처럼 무겁게 만들거든요. 처음 허가를 낼 때 떨리는 마음이 기억나네요. 법령 그대로 내 의견 하나도 없이 나가는 허가였는데도, 뭔가 내가 결정한 것이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허락이 되다니, 하는 생각에 결재 버튼이 잘 안 눌러지더라고요.




처음 임용장을 받자마자 현장에 투입되어 어버버 하며 민원전화를 받던 일, 과태료 처분 업무에(젤 처음 맡이 일이 자동차 검사 과태료 업무였어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이 다 듣는 듯한 나날들. 상수도 업무, 에너지 업무, 도서관 일까지. 거의 15년이 다되어가는 시간을 그렇게 '견디어내며' 보냈네요.


'견디어냈다'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 즐거운 적도 있었고, 열정을 품은 적도 있었고,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던 시간이에요. 다만, 밥벌이로써의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공무원 생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달려온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정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찾아보고, 노력해보고. 그랬는데도, 아, 원래 내가 하고 있던 일을 내가 사랑하는구나, 돌아가자, 하는 마음이 들면 되돌아 가는 걸로. 그렇게 휴직이 시작되었답니다. 지금의 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정말 복된 일이죠.(비록 아이들 때문에 아무것도 안되고 있다고 해도.)



그래도 나름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죠. 지금의 시간을.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밥벌이로 견디어내는 시간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이면 좋겠어요. 또 언제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 모르니, 회사에서의 배울 수 있는 것을 더 열심히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으로 만들 작정이고요. (<킵 고잉>이었던가, 회사를 나오기 전에 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워라, 했던 게 정말 기억에 많이 남겨든요. 공짜로 배울 수 있는 건 확실히 배워야겠다 생각했어요.)



기업은 또 조금 다르겠지요? 혜진님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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