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야, 10분 타이머 설정
갑자기 말문이 막힐 때가 있죠. 할 말이 없을 때 말고 분명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제대로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 경우 말입니다. 이럴 때 단순한 해결 방법은 평소에 말을 많이 해보는 겁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도 얻게 될 것이고요.
영업직에 종사하시는 분이라면 고객들과 소통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이 능력을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프로그래머라 말을 할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에 비해 프로그래머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 '말빨'입니다. 자신이 설계한 코드를 타인에게 논리적이고 설득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별도의 낭독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굳이 낭독을 고른 것은 언어의 범위가 곧 생각의 범위라는 작은 아이디어 때문입니다. 말을 잘하려면 어휘력이 중요한데 발음이 잘 안되는 단어는 잘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타인이 쓴 문장을 입으로 소리 내면서 뜻은 알지만 왠지 생소한 단어와 친해져 보기로 했습니다.
매일 10분씩 책을 펴고 낭독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과였는데 그 이유는 해야할 일을 하고 싶은 일보다 늦게 하면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녹음이 끝나자마자 핸드폰에 연결해 파일을 추출한 뒤 Google Drive에 업로드를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녹음된 제 목소리를 스마트폰으로 들었습니다.
매일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루 10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부담없이 다음날 20분을 하면 됩니다. 뛰다 넘어졌을 때 레이스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일어나 좀 더 빠르게 뛸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죠. 꾸준한 페이스로 달렸다는 것보다 완주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 판단했습니다. 미룰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게을리 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늘 안 하면 다음날 출근길에 들을 파일이 없다는 것이 꽤 허전하게 느껴져 녹음하게 되더라고요.
낭독 파일의 수는 26개로 제한했습니다. 26일 뒤에 프로젝트가 끝나도록 제한을 둔 이유는 알파벳 갯수가 26개라 진행 상황을 알파벳으로 변환해서 쉽게 기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2번까지 녹음됐다면 다음 파일 번호인 13에 상응하는 알파벳 M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내 방에 원숭이가 앞구르기를 하면서 들어왔다고 상상하면 다음날 녹음 파일의 이름을 적을 때 몇 번째 파일이라는 것을 바로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재미삼아 해봤는 데 나름 효과가 있더라고요.
읽을 책을 고르는 작업은 눈에 보이는 아무 책이나 집어 드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여행 서적과 프로그래밍 서적까지 말이죠.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이 다양한 어휘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이므로 이왕이면 최대한 중복 없이 골랐죠. 책을 선택하고 나면 녹음기를 켠 뒤 입으로 10초를 카운트 다운을 하면서 빠르게 책을 훑어봅니다. 그러다 읽고 싶은 문장이 눈에 들어오면 읽기 시작하죠. 만약 잘 들어오지 않아 10초가 지나면 아무 페이지나 낭독했습니다.
이렇게 26편의 녹음하고 영화 두 편 분량의 음성 파일을 갖게 됐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매일 낭독하고 매일 듣다 보니 저에게 맞는 말하기 팁을 3가지 정리할 수 있었어요.
첫째, 문장은 끝까지 정확하게.
말끝을 흐리는 것은 나쁜 버릇입니다. 그런데 이걸 몰라서 말끝을 흐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할 말이 없거나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을 때 그렇게 되어 버리는 걸요. 그렇다고 해서 말하고 싶은 문장을 일단 머릿속에 그리면서 말을 시작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건 마치 다음 문장을 눈으로 보면서 이전 문장을 소리 내 읽는 것과 같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하고 싶은 핵심 내용을 딱 하나 그려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Internet은 어떤 의미인가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Internet이 무엇이고 그것을 당신이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하다 보면 말이 두서없이 나가게 됩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밧줄을 잡으려는 것처럼 이리저리 허둥대다 말끝이 흐려지고 앞 문장이 끝나지도 않았는 데 뒷 문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보다는 'Internet은 소통이다.'라는 핵심 내용을 빠르게 찾아 닻을 내리고 여기에 맞춰 내용을 확장해야 합니다. 적응이 되면 핵심 내용을 찾는 시간도 짧아지고 Ice Break용으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앞뒤로 붙일 수 있는 여유도 생길 겁니다.
둘째, 발음은 입으로 한다.
아니, 이게 발음이 안돼? 싶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수십 년 간 읽기만 하고 한번도 발음하지 않은 글자가 있지 않을까요? 일단 발음이 안되는 단어를 만났을 때 과장해서라도 입 모양을 만들어 보니 발음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색하게 얼굴 근육을 많이 쓰게 됩니다. 그러나 몇 번 빠르게 반복하다 보면 차츰 입에 잘 맞아 입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면서 정확한 발음을 내게 됩니다. 그래도 잘 안된다면 그 문장을 따로 적어 기간을 두고 연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국어라는 이유로 발음이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그냥 넘어가게 되면 나중에 무의식적으로 그 문장을 생각해내지 않게 되고 언어(생각)의 크기가 그만큼 작아지게 됩니다.
셋째, 몸이 말을 제어한다.
긴장을 하면 나타나는 증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말이 빨라지고 몸 움직임이 커지거나, 말소리가 작아지고 몸이 굳는 것이죠. 반복 연습을 통해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준비할 수 있는 상황과 여유 시간이 있을 경우입니다. 저는 위 두 가지 경우 중 전자에 속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낭독을 하면 발음이 잘 안되고 어딘가 불편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입보다 마음에 더 앞선 느낌이었죠. 반면 의식적으로 몸과 다리에 힘을 빼고 손만 살짝 움직일 때 낭독한 파일을 들어보니 훨씬 자연스럽고 끊김 없고 유창하게 낭독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긴장감이 불필요한 몸 움직임을 유발하지만 그 반대로 몸의 산만함이 긴장감의 원인이 됐던 것이죠. 그래서 대화를 할 때 좀 더 편안한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어떤 타입인지 알고 싶다면 돌아다니면서 녹음한 것과 가만히 앉아 발음한 것을 비교해서 들어보세요. 분명 차이가 있을 겁니다.
먼저, 손이 잘 가지 않아 한번도 읽지 않은 책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10분 동안 저자의 문체와 논리를 살짝 엿볼 수 있고 예고편을 보고 나면 그 영화가 보고 싶어 지는 것처럼 끌리게 된 것이죠. 그리고 책의 내용보다는 제목과 목차를 보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예상했던 내용과 다른 책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도 놀라웠고요. 그래서 책을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한다면 아무 페이지나 1분 정도 쭉 읽어 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어요. 특히 정보 서적보다는 소설에 더 적합한 방식이겠네요. 소설은 목차도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리고, 개인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됐습니다. 녹음하지 못했다는 것은 하루 단 10분도 연속적인 자기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는 증거였습니다. 개인 시간을 가지게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이었으니까요. 왜 그랬는지,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하루를 돌이켜 보게 됐죠.
이런 방법을 다른 일에도 적용하면 어떨까요? 이번에도 Siri에게 타이머를 부탁하고 무언가 매일 해보려 한다면 뭔가 재밌는 일을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듭니다.
이번엔 낭독을 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Freetalk 해볼 계획입니다. 예를 들어 임의로 주제를 정하고 12분간 떠들어 보는 것이죠. 이건 낭독보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친구와 특정 주제로 대화를 하고 상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빠르게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녹음한 뒤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들어보면 어떨지 궁금하네요. 앞서 낭독으로 배운 3가지 포인트도 잊지 않고 있는지 잘 봐야겠죠. 아, 음성 파일을 텍스트로 변환한 다음 많이 사용하는 단어나 중복되는 단어 등을 통계를 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