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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Sep 24. 2022

얼음틀 안에 똑같이 얼려진다 해도

행운 속에 숨은 어떤 진실



오십 대 초입의 나이, 자녀 대부분이 취업전선에 뛰어들 나이다. 우리 딸 또한 직장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고만고만한 살림살이에 티격태격 살며 어떤 날은 행복하다고 만족하다가 또 어떤 날은 사는 게 치사하다고 넋두리한다. 어쩌다 한 번 사는 로또는 당첨도 안되냐며 투덜거리는 게 내 주변의 삶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스펙터클하고 화려하지 않다. 

솥 가마에 잘 익은 누룽지처럼 담백하고 너무 밋밋한 삶이라 딱히 내세울 게 없다.

그래도 우리는 자주 만난다. 커피가 식어 기름이 뜰 때까지  야무지게 수다를 떤다. 

이번에 산 행주가 물기를 잘 빨아먹는다며 써보라 건네기도 하고 새로 산 영양크림이 흡수가 잘 된다고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남편과 시댁, 자녀의 이야기 까지. 

30년째 수다를 떨고 있으니 내 자식도 그 집 자식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사이.

내 자식 같은 남의 자식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두 청년의 평범한 취업 성공기에 관한 탐색이다.

고급진 취업 컨설팅은 꿈도 꿰 보지 못한 두 청년의 취업, 그 안에는 우연이 아닌 진실이 숨어있다고 나는 장담한다.

살아가는 것은 진지한 일이다

비록 모양 틀 안에 똑같은 얼음으로 얼려진다 해도 그렇다

삶은 엄숙한 일이다(은희경 빈처)

삶은 진지하고 엄숙한 과정에서 행운이란 모습으로 뜻밖의 우리를 웃게 한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단단해진 박 청년

첫 번째 박 청년의 취업 스토리텔링이다.

그의 집은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부유하지도 않아서 방학 때가 되면 아르바이트로 다음 학기의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SKY 이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지잡대 출신 공대생. 사립대라 등록금이 비쌌고 박 청년은 참치공장, 선상 술집 서빙, 맥주집 등 닥치는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다.


선상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소릴 듣고 가 본 적이 있는데 우리는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대한 크루즈선 내부 2층에서 안주와 술을 쟁반에 담아 3-4층으로 나르고 있었다. 수십 번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땀과 열기로 얼굴이 익어 있었다. 기특하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은 짠하기도 하고. 그래도 여기가 팁이나 페이가 세다며 웃던 얼굴, 서둘러 서빙을 위해 이동하는 재빠른 모습이 눈에 밟혔다.


아르바이트 전선에 나섰든 박 청년은 돈을 번다는 것의 고됨과 자신의 직업, 어떤 일을 해 먹고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앞으로 내가 돈을 벌어야 할 텐데... 이렇게 힘든 일로는 돈을 벌지 않아야겠다."

박 청년은 제대 후 3학년이 되자 아르바이트를 끊고 취업에 매진했다. 고3 때 보다 더 열중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기업을 스크립터 하고 그 기업에서 요구하는 스펙(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몰두했다. 집에도 잘 오지 않았다. 자신이 가고 싶은 분야를 골라 인턴으로도 6개월 동안 일하고 졸업 마지막 학기에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어학연수나 위킹홀리데이 같은 일은 그에게 사치였지만 기죽지 않고 자신이 계획한 대로 자신의 취업준비를 하나씩 완성해 갔다.

박 청년은 졸업 6개월 만에 스카이 출신이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는 S기업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사했다.  박 청년의 스펙은 그가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카이 출신에 비하면 뛰어남이 없었다.


그가 빛을 낸 것은 면접이었다.

박 청년은 면접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어떻게 면접관의 시선을 사로잡았을까.

물론 면접을 위한 그의 부단한 노력도 있었겠지만 나는 이렇게 판단한다.

그가 거쳐간 다양한 아르바이트의 경험이 박 청년이 가진 사회성과 친화력, 임기응변 능력을 키웠다고. 박 청년은 힘들어도 웃을 수 있는 자신만의 비법, 아르바이트를 통해 성장된 내적 동기화가 절심함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키웠을 것이다.

자신의 진로에 대한 방향성, 직업에 대한 고민, 사람들과의 친화력, 사회성, 상대방의 니즈를 파악하는 능력, 임기응변에 대처하는 스킬... 그것들이 하나로 모아져 박 청년의 면접에서 시너지 효과를 낸 게 아니었을까.


단언하건대 만약 박 청년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매년 취업 스펙만 쌓기 위해 공부에만 머리를 박고 있었다면  이런 결과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될 놈 된다가 아니라 취업에 무조건 청춘을 올인하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면의 성숙, 많은 인간적 경험(다양한 분류의 사람들과의 교류), 육체적 노동이 주는 깨달음. 혹은 간접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조직의 시스템.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내적 동기를 강화시키고 성장하며 그로 인해 취업이라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다.


직선만이 옳은 길은 아니다. 지금 마음이 바쁘다고 늘 직선으로만 내달리지 말기를. 

지금 편의점 바닥을 닦고 있더라도 절망하기 말기를...

삶은 하찮은 모습이어도 진지하고 엄숙한 일이다.



인간관계가 곧 취업

언젠가 취업통계 자료에서 이런 대목을 발견한 적이 있다.

당신은 어떻게 취업을 했나요? 여기에 30% 이상이 아는 사람을 통해서라고 대답했다. 물론 우리 직업상담사들이 소중히 여기는 <교차로>로도 몇 번째로 들어가 있기는 했지만.


K청년은 대학을 중퇴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선택한 과였지만 등록금이 너무 비쌌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졸업장을 가지더라도 딱히 취업이 잘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집과 떨어진 대학을 다니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스스로 대학을 포기했다.


K청년은 헬스장에서 PT 알바를 하며 독립을 했다.

K청년은 인상이 좋고 싹싹했다. 그러나 개인 PT로 생활을 하기에는 빠듯했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요원해 보였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쿠팡 물류센터를 다니기도 했지만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활을 꾸렸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괜찮은 회사에 취직되었다. 그에게 PT를 받았던 회사 임원이 그의 싹싹한 성격과 성실함을 보고 K청년을 스카우트한 것이었다. K청년이 대학을 졸업했더라도 그만한 회사에 취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중소기업이었지만 미래 전망이 밝고 연봉도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 


K청년이 그 회사에 취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이 취직된 것처럼 기뻤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지라 더더욱 그 소식이 고맙게 느껴졌다.

K는 잘 웃는다. 사람에게 친절한 스타일이다. 자신의 미래가 불안함에도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

PT에 최선을 다한 결과로 그에게 스카우트이라는 행운이 도달한 셈이다. 만약 K청년이 자신의 불안한 미래에 떠밀려 PT 일을 소홀히 하거나 혹은 고객을 그저 그런 지나가는 사람으로 대했다면 이런 행운이 도달했을까.


K는 대학을 포기하는 과감한 선택과 부모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의젓한 행동으로 삶의 터닝 포인트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이 어른답지 못하다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일상에 최선을 다한 것이 이런 행운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벌써 이렇게 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김구



성공한 삶이 무얼까?

돈이 많으면 성공한 삶일까?

유명해지면 성공한 삶일까?

모르겠다. 솔직히 나는 돈도 많았으면 좋겠고 성공도 했으면 좋겠는데

내 주변에 이런 누룽지 같은 사람들이 내일도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신세타령도 하고 어떤 냄비가 좋은지 추천도 하고 드라마도 이야기도 하고

시댁 흉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사람.

취업한 아들 결혼 준비를 옆에서 보며 할머니가 될 걱정을 하는 그런 평범하지만

진지하고 엄숙한 일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같이 늙어가는 걸 느낄 수 있는 사람.


남편에게 못할 이야기를 터 놓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성공은 못해도 다행이다 싶다.

그런 소박한 위로를 마음에 담으며 내 자식 같은 남의 자식에게 쭉 행운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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