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장 생활비가 없으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고 부모님이 옆에서 거들어 주면 3년 정도는 공시생으로 힘들게 공부할 수 있다. 스펙 관리 잘하고 유명한 대학 나와 헤드헌트 비용까지 지불할 수 있으면 몇 번의 실패는 맛보더라도 대기업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취업도 주변, 특히 부모의 그늘이 얼마나 풍성한가에 따라 달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가난은 가난을 대물림하고 부는 부를 대물림한다라는 자본주의 진리는 직업세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직업상담과 관련된 이론, 홀랜드(Holland)의 이론, 직업적응 이론( TWA), 슈퍼(super)의 직업 발달 이론, 고프레드슨(Gottfredson)의 직업 발달 이론, 사회학습이론, 사회인지 진로 이론.. 진로나 직업세계를 규정하는 이론을 다 가져오더라도 <대물림의 자본주의> 진리를 뚫어 낼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
감히 말한다.
진로나 직업과 관련된 자기 계발서는 개뻥이다.
버전만 달리 한 새로운 자기 계발서가 등장하지만 속을 뒤집어 보면 결국 그 말이 그 말이다.
성공인들의 공통점, 성공한 사람들이 절대 하지 않는 습관, 부자의 성공법칙....
그렇게 주장하는 성공 법칙을 따르려면 우리는 멀티플레이어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데. 멀티가 못 되니 지금 이렇게 사는데, 멀티가 되라니, 그렇게 되라니?
또 방황해도 흔들려도 괜찮다는 말을 달콤하게 속삭인다. 자기 계발서를 읽고 난 뒤 강연을 듣고 난 뒤, 혹은 컨설팅을 받고 난 뒤 당신의 진로가 쫘르륵 펼쳐졌나? 꽃길이 눈앞에 쨍하고 나타났나.
아님 빵이 바뀌었나. 마트 식빵을 먹다가 크루아상으로 바뀌었나.
방황해도 아르바이트는 가야 하고 흔들려도 아침에 화장하고 출근은 해야 한다.
괜찮다가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생존의 파도에 출렁거릴 수밖에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방황, 흔들림... 불안, 그것들은 평생 따라다닌다. 어느 한 시절, 특정한 때만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우리는 매 순간, 흔들리고 방황한다.
나만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게 아니다.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사람은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흔들리고 계속 다니기로 한 사람은 어딘가 더 좋은 일자리가 있을까 봐 불안하다. 임원은 오너의 기분이나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위기 때문에 또 흔들린다.
인생이란 길에서 흔들리는 건, 괜찮다 괜찮지 않다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 누구나 흔들리며 사는 것이다. 당신을 상담하는 나도 흔들리고 양복 쫙 빼입은 커리어 컨설턴트도 흔들린다.
방황하고 고민하고 흔들리는 건 모든 인간의 본성이다.
삶은 철학이 디폴트가 아니라 빵이 우선한다.
비빌 언덕이 없는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빵이 넉넉해야 그나마 적게 흔들릴 수 있다. 빵은 결국 일, 우리의 노동이 유일하게 해결책을 제시할 뿐이다.
얼마 전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끝난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는 <일을 통한 휴식론>의 효과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인공 손석구의 직업은 유흥업소 중간책이었고 조직의 배신 때문에 신포로 숨어든 캐릭터였다.
손석구(구 씨)는 염미정의 아버지가 하는 일, 싱크대를 만드는 일에 진심이다. 이 때문에 염씨네 일가에게 좋은 사람이란 인상을 남긴다.
손석구가 싱크대 만드는 일에 진심인 이유는 일의 심리학적으로 너무나 적절한 조건이다.
손석구는 나이트클럽이라는 화려한 조명과 음악과 사람에 치여 있었지만 자신이 도피한 신포는 전혀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나이크 클럽에서 손석구는 조직관리 외에 아무런 육체적 노동을 하지 않지만 신포에 와서는 싱크대-눈에 직접 보이는 생산물-를 만드는 행위를 한다.
눈에 보이는 어떤 생산물-자신이 무엇인가 스스로 창조하며 생산했다는 자부심-은 뇌에서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을 생성시키며 그만큼 행복감이나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교정시설인 교도소나 청소년 보호시설에서 제과 제과제빵이나 목공예를 많이 배우는 이유가 <자신만의 창작물을 통해 일 몰입>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에 대한 경험이 없거나 희박했던 사람들은 일 몰입의 경험 자체가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몰입의 경험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처음 맡았던 프로젝트 기획에 속사포처럼 좌판을 두드리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던 일. 언제 흘렀는지도 모르게 번개처럼 스쳐 가버린 시간속도.
나의 해방 일지 손석구는 더운 여름날 땀 흘리며 만든 싱크대를 통해 일 몰입을 경험하며 일종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셈이다.
일 몰입은 일을 통해 긍정적이고 충만한 감정을 느껴 정서적으로 동기가 부여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때 심리 자본은 몰입의 단계를 규정하는 요소가 된다. 심리 자본은 자기 효능감, 낙관주의, 성공을 위해 경로를 바꿀 줄 아는 희망, 회복탄력성이다.
이 심리 자본은 긍정적 감정과 결합해 일 몰입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누어 보여준다.
활력(일에 힘과 시간을 기꺼이 투자하려는 마음), 헌신(자신의 일에 깊이 관여해 열정, 긍지, 도전의식을 느끼는 단계) 몰입(일과 자신의 분리가 어려운 상태)의 양상으로 나타난다.(네이버 손영우, 일몰 입 )
이 이론을 따르자면 손석구는 확실히 활력이란 단계까지는 멋지게 보여준 캐릭터였다.
그리고 이 일 몰입을 통한 휴식을 통해 손석구는 까칠했던 마음에서 추앙이란 희망적인 감정을 키우게 된다.
과감히 말한다.
무슨 일이든 하시라.
직장을 퇴사는 하더라도 다른 일은 하시라. 부모님 일을 돕든 전혀 다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든, 글 쓰는 일을 하든, PC방 아르바이트를 하든. 일용노동을 하든. 여행 노동을 하든. 집콕이란 무덤에 자신을 파묻지 마시라. 지극히 당신은 정상적이고 지금 하는 일은 잠깐 쉬기 위해 <휴식을 위한 최소한의 노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일은 무기력을 막아주는 최고의 무기다
일은 고립을 막아주는 가장 매력적인 매개다
일은 생존 본능을 노크한다
일은 사유하게 한다
일은 한계를 느끼게 한다
일은 일을 마주 보게 한다
일은 화나게도 하지만 웃게도 한다
일은 일 그 자체다.
쉬어 간다는 건 아무 일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혹사한 노동의 영역을 쉬게 두는 것이다.
IT업계라 뇌를 많이 썼다면 잠시 뇌가 쉬는 일을 찾고 육체적 노동에 시달렸다면 육체를 쉬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이었다면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일을, 기계를 만졌다면 사람을 만나는 일로. 책에 파묻히는 일이라면 자연에 파묻히는 일을.
나의 해방 일지 손석구는 자신이 이전에 했던 환경과 전혀 반대되는 환경에서 일하며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는 회복탄력성을 키웠다.
고향이 남해였던 나는 어머니가 계실 때 자주 농사일을 도우러 다녔다. 휴일에 쉬지 못하고 허리를 굽히며 하루 종일 마늘 쫑을 뽑는 일, 고구마를 캐거나 고추 따는 일은 육체적으로 분명 힘든 노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녀오고 나면 힐링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육체노동이라 힘들다고 투덜댔던 남편도 농사일을 하고 나면 아휴, 내 일이 차라리 낫다면 군소리 없이 출근하곤 했다.
친구 딸은 병원에서 일하기 싫다며 뛰쳐나와 카페 알바와 편의점 알바를 하다가 얼마 전 쿠팡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보내고 와서는 다른 병원 일자리를 알아보고 새로운 병원에 취업했다.
일 때문에 그만두었다면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회복시킬 다른 일을 잠시라도 찾기를.
아예 하루도 쉬지 말고 무조건 일을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에게나 쉼은 필요하니 일정기간의 휴식은 필요하다.
일과 다른 일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았으면 한다.
혹사한 노동과 정반대 되는 일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쉼을 얻을 수 있다. 또 자신이 지금까지 해오지 않았던 일을 통해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의 무게를 잴 수 있다.
일종의 일 거울(work mirror)이 주는 경험은 <그동안 내가 했던 일>을 반추하게 하고 다시 어떤 일이 나를 살릴지 고민하게 된다.
새로운 일을 통해 자신의 고민들을 정리해 나가는 화학적 반응이 일어난다.
내적 갈등이 색다른 육체적 노동과 접촉하면서 내부적인 양질의 변화, 의식의 변화, 고민의 무게들이 다양하게 버무려지면서 어느덧 문득, 우리의 고민을 직면하는 시간이 올 것이고 어떤 대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뇌피셜이지만 경험이 만들어
낸 <일을 통한 휴식론>이다. 비로소 급히 가지 않고 본질을 향해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일자리를 찾는 당신, 일단은 곁에 있는 어떤 일이든
당신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