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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치우먼 Oct 01. 2022

일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

2. 일을 직업으로 대하는 태도

일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일을 대하는 태도를 분석한 것은 벨라와 그의 동료들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바탕으로 구분되었다. 그것에 100% 긍정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이 기준을 적용해 보기로 한다. 이론은 다양한 현실의 스펙트럼을 담아내기에 그릇이 작다고 느껴진다. 이게 혼재되어 있는 경우도 있거든 하고 콧방귀를 뀌면서도 이론을 부정하는 용기는 아직 없다.

일을 직업으로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일을 금전적 보상의 도구로 보는 관점

당신의 직업을 사랑하라는 말은 자본주의 획책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한 때 열정 페이 뒤에 숨은 진실이 청춘을 농락하기도 했고 고용주들은 자신이 고용한 사원들이 자신의 회사를 사랑해 주기를 요구한다. 조선소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사랑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땀 흘려 용접하고 재료를 아껴 취부를 한다면 회사의 생산은 얼마나 드높아지겠는가.

안타깝게도 당신의 직업을 사랑하라는 말을 진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특히 일을 금전적 보상의 도구로 여기는 사람, 또 그렇게 여겨야만 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또 TWA의 직업적응 이론을 빌어 말해보자면,

이 이론에서는 유연성과 인내력이 개인의 만족과 조직의 만족을 적응과 연결시킨다고 본다. 유연성은 개인의 욕구와 조직의 보상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적응을 위한 어떤 조치를 하기 이전 그 상태를 견디는 능력이다. 그러나 개인의 욕구와 조직의 보상 간의 불일치가 어느 정도 선을 넘어설 경우 적응단계로 넘어가는데 적극적인 행동은 조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회사에 더 많은 급여를 요구하는 것, 복지제도를 확대하는 것, 휴가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등 조직의 변화)이고 소극적인 행동은 개인의 변화(기술이나 애착정도를 조절하는 것, 정시퇴근, 새로운 업무 거부, 업무량의 축소 등)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TWA이론에서 보자면 개인과 조직의 욕구가 불일치할 때

유연성과 인내력을 통해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일을 통해 물질적 보상을 얻는 관점으로만 접근하며

일에서의 성장을 포기한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일을 금전적 보상으로만 대하는 태도는 그래서 일하는 사람, 고용인에게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회사와 근로자의 욕구 불일치가 장기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조직이 변하든 개인이 탈출하든 한 가지 선택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금전적 보상에 대한 의존도 때문에 우리는 <퇴사할 결심>을 하지 못 한 채 출근하는 중이다.



사무직이나 공공기관에서 보일 확률이 높다

일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일의 의미를 찾아가는 경우는 대부분 창의적인 직업(예술형)에서 흔희 볼 수 있는 태도이다. 이 태도는 직업적 특성상 자신의 철학이나 가치관이 중요한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물음, 철학적 가치, 인문학적 관점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나 일을 직업으로 대하는 태도는 관습형에 해당되는 부류가 많다.


회계사, 세무사, 사무직, 공공기관 등 특정한 일을 지속, 반복하는 경우에 일의 소명을 찾으라고 하는 건 대부분 무의미하다. 그 외에도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생계형으로 직업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남편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같은 학생운동권이었던 남편은 6년 동안 택시기사- 택시 노조를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었지만 실패하고-를 하다가 아이 셋과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어디든 돈을 벌어야 했다. 남편이 간 곳은 한참 호황기에 있던 조선소였다. 아무나 이력서를 넣어도 취업이 되는 곳이었다. 조선소 하청업체에 취직한 남편은 한 달에 한 번 쉴까 말까 하는 곳에서 죽으라 일만 했다. 경력이나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임금은 낮았고 툭하면 야근에 자면서도 끙끙 앓기 일쑤였다.


한 곳의 하청업체는 부도가 나 사장이 임금을 떼어먹고 날라버렸지만 내가 체당금 신청으로 3개월치의 임금과 퇴직금을 받아 냈다. 50여 명의 임금이었다. 두 번째 하청업체는 잔혹한 노동시간에 남편 스스로 퇴직했다. 매일 밤 9시가 되어야 퇴근하고 주말에도, 빨간 날에도 일하는 지옥 같은 노동시간에 남편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조선소 노동자인 남편의 직업은 생계형이다.

직업을 생계로 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일에서의 성취와 보람을 찾기보다 안전하게 일하며 생계를 무사히 꾸리길 바란다.

이런 남편에게 당신의 직업을 사랑하세요!라고 하며 내 뒤통수를 칠 것이다.

미칬나!

이런 유형은 회사에 가기 싫어 월요병이 생기고 어쩌다 태풍이  회사가 휴업을 하면 로또가 당첨된 것처럼 기뻐한다. 주말을 의미 없이 보내면 무기력증에 빠지거나 자신의 휴식시간(저녁시간) 재미를 위해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남편들은 과자를  쟁반씩 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하러 방콕 한다.



그렇다고 삶까지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일을 직업으로만 대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20대에서 30대 후반의 내 자식이라면 나는 그 일을 그만두라고 말할 것 같다. 남편은 말리지 못했지만 자식은 말리고 싶다.

성취감이나 소명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는 일이 자신에게 뿌듯함 정도는 줄 수 있었으면 한다. 전문적인 스킬까지는 아니어도 가끔 자신의 직업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배움 정도는 필요한 직업, 이 직무의 경력과 스킬이 새로운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영역.


예를 들자면 내가 이모티콘 작가인데 이모티콘을 만드는 방법으로 유튜브를 한다든지, 강의를 한다든지. 여행사에 근무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여행 가이드로 자유로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든지.

하나의 직장에 오래 다닌 사람들이 그 직장을 그만둔 뒤로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경우도 많이 봐 왔기 때문에 30대 후반까지는 직무의 연속성이 확장될 수 있는 직업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 일을 찾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직장이라면 또 언제든 지지하고 싶다.


내 옆에 신규 발령을 받아 온 20대 초반의 공무원은 사교성도 좋고 성격도 엄청 밝았다. 전공도 미술 에니메이션이라 만화나 그림도 아주 잘 그렸다. 한 번 씩 주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남길 때 간단한 이모티콘을 그려 전달했는데 아이디어가 기발해서 메모보다 그 이모티콘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공무원 생활이 어느 정도 몸에 베이고 결혼을 하면서 신규 때 그렸던 그림을 놓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메모에 적혀오는 이모티콘도 사라졌다. 웹툰 작가가 꿈이라 했던 그 말이 사라지더니 다른 공무원들과 똑같은 얼굴로 변해갔다.


가끔 그 공무원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이모티콘 작가로도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은 잠시 공무원 생활에 온 것이라는 그의 신입사원 때 말이 잊히지 않는데...

그기를 떠나오며 내가 살짝 물었을 때, 이제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그건 포기한 지 오래되었죠, 라며

슬쩍 웃었다.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비슷비슷하게 닮아가는 굳은 얼굴이었다.


일을 직업으로만 대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표정은 그렇게 뻣뻣하고 경직돼 있다.

아무래도 하루 9시간, 한 달 209시간을 마음에 안 드는 일터에서 보내는 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자신이 타고난 기질을 숨기고 금전적 보상때문에 얽매여 사는 것을 영혼도 아는 것인지 그들의 표정은 사뭇 딱딱하다. 남편도 거의 대부분 무표정이다.



그럼, 남편의 경우는 불행한가? 그렇지는 않다. 남편은 직장 외에서 즐거움을 찾는데 몰두해 한 때는 풍물 동아리에 들어가 취미생활을 즐겼고 조선소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는 요리를 배웠다. 그때는 아이들에게 인기를 독차지했다. 가끔 아빠는 왜 요리를 하지 않는지 따져 묻는데 지금 그는 골프와 클래식이라는 신세계에 빠져 삶을 조율하고 있다.


직업을 직업으로만 대할 수밖에 없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그 밖에서 충실히 자신이 즐겨하는 취미, 흥미를 찾는 것이 방법이다. 직장에서는 일에 몰두하고 그 외 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것. 연차를 아끼지 않고 최대한 휴가로 몰빵 하는 것, 일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를 취미로 풀어내는 것. 그 또한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가장 최악의 불행은 경제적 사정 때문에 혹은 일에 지쳐 이런 취미활동을 하지 못하는 케이스.

직업은 생계 보전형인데 경제적 여유가 없어 자신의 취미에 투자하지 못한다면 <나쁜 아빠, 나쁜 엄마>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 자식의 사교육비를 줄이더라도 소득 10%는 반드시 자신을 위해 쓴다는 원칙을 세우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삶의 공허함이 우울을 가져오고 노년의 얼굴에는 후회가 꽃피울 수밖에 없다. 어떡하든 살아야 할 어떤 이유 -나는 즐거움이라 하겠다-를 찾는 것이 핵심이다.



-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과정이 어떻든 참아 낼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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