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뜬구름 Apr 16. 2017

고옥(古屋)의 저주

 일 년 동안 겪은 황당 해프닝들

아직까지 우리 가족에게 고난의 시간을 안겨주는 우리 집 전경. 흙만 보이는 곳엔 수령을 알 수 없는 고목이 있던 자리. 우선 전면은 많이 정리된 상태다.


작년 이맘때 밴쿠버에는 대륙발 부동산 광풍이 휘몰아쳤다. 중국의 유동자산이 밴쿠버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하루가 다르게 수직 상승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1년 6개월 살아본 타운하우스는 관리가 편한 장점은 있는데 어둡고 좁았다. 그래서 큰 맘먹고 주택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6만 불 오른 가격에 팔았다. 그전에 매매했었던 우리 주택은 40만 불이 일 년 반 만에 뛰었다. 그만큼 단독주택의 상승세가 가팔랐다.  수치에 밝은 아내에게 "살다 보면 똥 밟을 수도 있고 지갑 주울 수도 있는 거다"라고 위로했다.


사는 게 문제였다. 매물은 적은데 구매자들이 몰려다녔다. 입맛대로 고를 수 없는 것은 물론 원가격에서 경쟁이 붙으면서 천정부지로 뛰었다. 과거에 살았던 10년 미만의 새집은 쳐다볼 수도 없었고 70년대 지어진 낡은 집을 집중 공략했다. 여기저기 오퍼를 넣은 결과 운 좋게도 한집이 걸렸다. 가격은 만불 정도 더 쓰는 대신 조건을 없앴다. 은행 몰기지와 집 인스펙션. 이두가지가 거래의 골자인데 이건 우리가 양보하겠다는 의향서가 주인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았다. 당일로 거래가 완성됐다.


두 달 뒤 그 집으로 이사를 갔다. 힐껏 쳐다만 보고 인스펙션 없이 결정한 뒤끝은 잔인했다. 앞뜰은 정리 안된 장미덩굴과 마구잡이로 자란 크고 작은 수목들이 뒤엉켜 있었고 뒤뜰은 수십 년 동안 중복으로 심은 나무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로 했빛을 더 보려고 아우성이었다. 집안의 구조는 우리의 동선과 동떨어져있었다. 일층에 방두 개와 거실이 있으면서 2층에 방 3개와 부엌, 다이닝, 거실이 또 있었다. 아마 식사와 간단한 TV 시청은 이층에서 하고 그 뒤 본격적인 놀이와 음주는 일층에서 한 게 아닌가 추측됐다. 모든 게 가족 중심이니 술도 집에서 먹은 것 같은 분위기의 집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일층이 거의 쓸모없는 공간이 됐다. 그래서 4개월에 걸쳐서 부엌과 다이닝룸, 거실을 일층으로 내리고 이층은 오로지 방으로만 꾸몄다. 그리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가전제품을 삼성으로 모조리 교체했다. 그 결과 요즘 집 구조와 어느 정도 유사해졌다.


좋은 분위기도 잠시, 새로운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우선 차고 문. 수동이었다. 수동은 차고로서 쓸 수 없다는 뜻이다. 그전 주인도 창고용도로 차고를 운용했었다. 자동문으로 바꾸기로 하고 문을 오더하고 설치를 기다렸다. 한 달 만에 설치기사가 왔다. 이 친구 왈 "차고 문 앞으로 지나가는 들보가 너무 낮아서 그곳에 체인이 지나가는 홈을 파야한다" " 그럼 네가 좀 적당히 파라"" 내가 손댈 부분이 아니다 네가 해라" 열심히 팠지만 위로 쳐다보면서 들보에 홈을 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 친구는 다음 스케줄 때문에 갔다. 대신 회사에 서면으로 보고하기로 했다. 그래야 다음에 나오는 기사가 홈 파는 장비를 가져올 것 같았다. 일주일 뒤 다른 기사와 왔다. 이 친구는 쳐다만 보고 줄행랑쳐버렸다. 들보를 파면 집이 무너질 수 있다나. 슬슬 부화가 치밀었다. 원청회사에 강하게 어필했다. 세 번째는 동양인이었다. 어쨌든 마쳐야 되겠다는 생각에 무조건 밀어붙였다. 모든 걸 내가 책임질 테니 오늘 내로 마쳐라고 명령조로 말했다. 이 친구 구시렁 거리면서 일을 끝냈다. 차고 문 다는데 2개월 반이 소요됐다.


이를 즈음 뜻밖의 문제가 터졌다. 앞마당 단풍나무 밑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상수도 배관이 잘못된 것 같은데 어디쯤이 잘못됐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흐르는 양은 제법 졸졸 소리가 들릴정도였다. 며칠 무시했다. 그 당시만 해도 시청 허가 없이 집수리를 하고 있는 와중이어서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봐서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 앞집 아줌마가 날름 시청에 전화를 해버렸다. 직원이 나와서 요기조기 살피면서 간 떨어지는 소리를 하고 갔다. 만일 너희 집 구역에서 새면 너희가 공사비를 부담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우리의 짧은 머리로 배관 교체하는데 많으면 300불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 순간 그 직원이 일개 중대 규모의 공병단을 데리고 다시 왔다.


교통통제 차량 한 대와 통제 요원 두 명, 나무를 통째로 파올리는 장비한대, 아스팔트를 파는 굴삭기 한대, 땅 밑 작업용 토사방지 케이스 한대, 덤프트럭 두대와 공사 뒤 아스팔트를 새로 깔기 위한 대기 장비 세대 등 인천대교 공사급 장비가 동원됐다. 그리고 각 장비 기사와 시청 감독관등 깜짝 놀랄만한  인원이 왔다.  우리가 생각했던 300불은 한순간에 영이 두 개 더 붙여도 될 똥 말똥 한 상황으로 치달아 버렸다.


마침 터진 곳이 아스팔트 밑이 아니고 또 우리 구역이긴 하지만 길과 약간 물려있다면서 시청 예산으로  빨리 마무를 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긴 숨을 토해냈다. 긴 하루였다.


이렇게 건기가 지나고 9월 말부터 우기가 시작되면서 악몽은 계속됐다. 화장실 천정에서 물이 샜다. 긴급상황이라서 우선 한인 목수한테 전화를 했다. 비가 오면 지붕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그치길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급해서  현지 회사를 찾았다. 그들은 비가 와야 물 새는 곳을 찾을 수 있으니 그곳은 현재 비가 오느냐고 물었다. 그리곤 그들은 쏜살같이 두 명이 와서 순식간에 고쳤다. 그들은 캄보디아 사람처럼 보였다.

일층 거실 바닥의 마루를 들어낸 뒤 건조기로 말리고 있다. 보험사에서 해주긴 하지만 이 야전생활이 상당히 길어질 것 같아 걱정이다. 오른편 벽을 도려낸 부분에서 물이 새 들어왔다.



물새는 문제는 계속 이어졌다. 하루는 저녁식사 중인데 내 머리 위로 물이 순간적으로 푹 포수처럼 퍼부었다. 놀래서 이층에 올라가니 물받이 통이 넘치면서 그게 일층 다이닝룸으로 밀고 온 것이었다 급한 대로 큰 대야를 바쳐서 밖으로 유도하면서 비상상황을 모면했다. 다음날 지붕에 올라가서 살펴보니 물받이 길은 깨끗한데 물이 빠지는 홈이 막혀 있었다. 서양사람에게 물받이 청소시키고 확인을 안 한 결과였다.


마지막 압권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이것도 물새는 문제다. 오래된 집이니 항상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내부공사를 마친 뒤 불과 4개월쯤 지났다. 마룻바닥 이음새 부분이 약간씩 들린다는 느낌이 왔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넓어져 갔다. 시공자를 불러 확인해 본 결과  그 목수는 금방 알아차렸다. 어디선가 물이 샌다. 그리곤 순식간에 찾아냈다. 워낙 적은 양인 데다가 오랜 시간 흘러서 우리가 모르고 지나간 것이었다. 새는 부분은 상수도가 집으로 들어와서 우리 내부 배관과 이어지는 이음새였다.


보험사직원이 와서는 그 근방은 물론이고 물 냄새를 맡은 부분까지 전부 뜯어내버렸다. 그리고 물기를 접했던  물건 전부 실어가 버렸다. 황량한 벌판이 돼버렸다. 신발을 신고 집안에 들어가고 밥을 먹고 하는 게 어색하다. 건조과정이 끝나는 다음 주부터 시공자를 선정해서 일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우린 가급적 한국인이 업자로 오길 기대한다. 아무래도 빨리하기 때문이다.


이 악몽의 시리즈도 한두 달 뒤면 끝이 나고  새집으로 거듭날 것이다. 인간사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고 망각이라는 샘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망각으로 비워진 그 공간에 그늘이 좋은 우리 집 뒷마당을 넣어볼 생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리조나 기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