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뜬구름 Jun 10. 2018

캐나다 이민생활<39>

만족, 행복의 순간들- 하루의 종점 수영장

새벽에 눈뜨면 하루가 겁나게 지나간다. 아침 먹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한 뒤 소주 반 병에 저녁식사까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하루의 마침표인 수영장에서는 아주 천천히 하루를 되새김질한다. 뭘 잘못한 게 없을까, 특히 손님한테 옷을 잘못 내주진 않았을까 등등을 조용히 반추하다 보면 온몸은 서서히 따뜻한 물속에 잠긴다.


수영장에 다닌지는 불과 5,6년 정도.  오른쪽 어깨에 오십견이 오면서 그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간 게 첫 발걸음이었는데 이젠 은근히 중독인 된 것 같다. 딱 그 시간이 되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고 만일 못 가면 다음날 새벽이라도 가야 될 정도다. 하긴 싼 가격에 이만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연간 550불만 내면 언제든지 어떤 시설도 맘대로 이용할 수 있다.


이층에는 짐이 있고 수영장 내에서는 정규 레인과 두 개의 온탕과 건식 및 습식 사우나가 있고 또 워터슬라이드까지 있다. 한마디로 멀리 가지 말고 여기서 놀아라는 뜻인 것 같다. 비 오고 추운 겨울에는 이만한 놀이 시설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꼬맹이들 생일찬 치도 심심찮게 열린다. 음식 먹고  놀이도 함께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데다가 라이프가드는 물론 부모들이 지켜볼 수 있는 공간까지 준비돼 있다. 


와이프와 나는 9시에 가서 9시 50분쯤까지 머무른다. 우선 온탕에 들어간다. 온탕 두 개 중 물총이 센 곳을 선호한다. 다른한곳은 물 온도는 높은데 벽에서 나오는 물총이 약해서 기피한다. 문제는 이 구역엔 경쟁자가 무척 많다는 것. 주로 중장년의 동양계다.  이민 와서 육체노동에 몇 년간 노출된 결과 온갖 근육과 뼈마디 관련 통증에 시달리니 잠시라도 치유될 것 같은 느낌으로 온탕의 물찜질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좀 조용할 것 같은 문 닫기 한 시간 전에 가기는 하지만 그때도 그 구역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이젠 몇 년간 꾸준히 다니다 보니 안면 튼 사람이 우리가 올 때까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눈짓으로 우릴 부른 다음 슬쩍 교체해준다. 우리 또한 이런 식으로 그 배려에 역으로 답할 때도 있다. 


이 구역엔 센 물총 두 개가 있긴 한데 너무 가까이 붙어있다.  누군가가 한 곳을 차지하고 있으면 타인이 그 옆에 갈 수 없을 정도다. 약간 움직이면 몸이 닿을 것만 같다. 이 곳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옷을 입고서도 닿는 걸 싫어하는데 맨살이 부딪힌다면 아마 까무러칠 것이다. 속은 모르겠는데 겉으로는 이렇게 반응한다. 그러니 한자리를 자동적으로 낭비하는 것이다. 


최근 영어를 쓰지 않는 백인 중년의 아주머니가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은근히 우릴 압박까지 한다. 좀 일찍 오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시간 보내다가 빈자리가 생길 때 오면 그만인데 사람이 있든 없든 끼어들 기세를 보인다. 가장 가까이 앉아서 은근슬쩍 밀어붙이든가 그래도 안되면 회전되는 물길에 몸을 까뒤집은 뒤 눈을 감고 흘러 흘러 댕기다가 우리와 부딪힌다.  저게 무슨 뜻인지 알고 우리가 피할 때도 있다. 맨살이 나와 닿아도 아무렇지 않은 나이라서 그런지 더 얄밉게 보인다.


수영장에도 약간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그 변화의 바람은 탈의실부터 시작된다. 불과 몇 년 전엔 자신의 중요부위를 아무도 못 보게 돌아서서 수영복을 갈아 입고 나중에 샤워할 때도 수영복을 입은 채 몸을 씻은 뒤 제 락커에 와서 수영복을 얼른 벗고 큰 수건으로 아랫도리를 감싸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젠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맨몸을 공개해버린다. 그래서 신체구조가 남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빠른 스캔이 이뤄진다. 백인에 대해서 가진 막연한 두려움이 하루아침에 깨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8척 장신에 골고루 발달된 근육과 온몸을 휘두른, 살아 움직일 것 같은 문신이 강인한 인상을 주고도 남는데 정작 중요 부위는 손가락 한두 마디에 불과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과연 저게 평창률 200프로라고 가정을 하더라도 접촉 불량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설 때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 일을 시키면 물 불가리지 않고 잘할 것 같아 보인다. 


이젠 수영장 마무리 단계. 사우나 입실. 온탕과 수영을 번갈아 한 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땀을 빼면 일그러진 뼈마디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등을 꼿꼿이 세워 벽에 붙이고 어깨를 편 뒤 천천히 목 운동을 하면 위에서부터 서서히 어제의 나를 회복해가는 순간을 감지한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게 오늘 하루를 마감하는 나의 마지막 엔딩 멘트다.


<사진> 우리가 즐겨 가는 그 수영장. 제법 규모가 크다. 전국체전도 열릴정도의 규격을 갖췄다. 사진 뒤쪽이 50미터 레인이고 앞의 얕은 곳은 꼬맹이들 놀이터. 왼쪽 웅덩이가 주로 가는 온탕이다. 온탕 맨 오른쪽, 현재 두 사람이 앉아있는 곳이 불티나는 명당이다. 공중에 매달려있는 구조물이 워터 슬라이드다. 폐쇄 구간은 어두워서 약간 무섭다.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 이민생활 <3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