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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Jun 29. 2018

캐나다 이민생활<40>

만족, 행복의 순간들 - 어진 두 사람과의 만남

세탁소를 오랫동안 하면서 많은 서양사람들과 접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어진 사람을 찾기는 쉽지가 않다. 대부분 착하지만 뭔가 1프로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다. 어진 사람은 그 1프로마저 채우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착하다는 뜻은 남에 대한 배려를 베이스로 깔고 사회규범이나 규칙을 제대로 이행하는 사람이라 말한다면, 만일 상대가 약간 어긋난 행동을 할 경우 그걸 묵인하는 것까지 포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 착하다 하더라도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에 상대가 발을 들여놓았을 경우 굉장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착한 모습만 보다가 갑자기 돌변하면 어떤 게 진짜 모습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민 계급장을 감안해서 보면 후자가 본모습이 아닐까 본다.


예를 들어 줄 서 있는 서양사람들을 몰래 cctv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몸이 살살 뒤틀리고 얼굴 표정이 일그러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때 누군가가 말을 걸면 금방 밝은 표정이 된다.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가면 쓴 착한 인간으로 한순간에 돌아오는 셈이다. 어진 사람은 항상 같은 얼굴이다.


두 명의 손님은 절대로 실망감을 주지 않을 것 같은 언행을 하면서 아직 그런 적도 없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그들의 인상은 부드럽다. 눈가에는 굵은 세 가닥의 주름이 잡혀있고 누군가의 도움에 항상 답할 준비가 돼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이런 모습이다.  그들은 더 영과 리처드다. 둘 다 남자다.


더 영의 이름은 모른다. 처음부터 성으로만 불러서 이름을 물어볼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다.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도 노인이었는데 아직도 그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은 노인으로 남아있다. 다만 변화가 있다면 17년 전엔 백수건달로 자신의 고국 네덜란드와 캐나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소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젠 번듯한 사업을 한다. 


그는  미국 국경과 맞닿은 넓은 초지에 와이너리를 하면서 웨딩샵을 한다. 요즘은 결혼 성수기라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예식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건 우리 가게에 결혼식장 용품을 가져오는 빈도를 보면 알 수가 있다. 뒤늦게 뛰어든 사업이 비교적 순탄하게 잘 진행되는 것같이 보인다. 냅킨이 보통 150장 이상이면 한건당 대충 견적이 나온다. 


희한한 건 그는 나랑 유사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업을 한다는 점이다. 사실 나와 영어로 말을 주고받았을 때 말이 잘 통하면 그의 영어는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몇몇 단어의 돌려 막기 식 영어가 먹힌다면 그도 역시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세탁소는 세탁물을 사이에 두고 손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영어가 좀 부족해도 금방 서로 이해가 되는데 웨딩샵은 고객의 요구도 많을 뿐만 아니라 차원이 다를 텐데 그걸 다 수용해서 만족시킨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손님의 요구사항을 빠르게 수용하고 이해시키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관심 있게 볼 대목은 그의 두 딸과 와이프는 본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똑 같이 착하고 어진데 그의 두사 위도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 사람 눈에는 그런 사람이 눈에 잘 뜨이는 것 같다. 늘 하는 말대로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이 현실세계에서 잘 통하는 증거가 아닐까.   


리처드.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처럼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사는 편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알기만 해도 세 번째 부인이다. 40대에 벌써 세 번째라면 곡절이 많은 무엇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첫 두 명의 부인은 정식 결혼을 하지 않아서인지 항상 이름을 부르고 현재 부인을 내 앞에서 지칭할 땐 와이프라고 한다. 그리고 가정경제도 통합시스템으로 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리처드의 세탁비를 그의 부인이 낼 때가 많다. 엄격히 구분하는 다른 부부들에 비해 좀 이색적이다. 이제야 안정을 찾은 건지는 좀 시간이 지나 봐야 알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여기선 큰 허물도 아니고 더러 발생하기 때문에 모두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특히 성인 남녀의 의사결정은 존중받기 때문에 어떤 쌍방향의 의사소통도 받아들여지는 풍토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성장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한다. 그의 단점은 나의 영어가 약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나와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다. 온갖 얘기를 다하는데 못 알아듣는 게 더 많다. 좀 쉬운 단어나 천천히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 텐데 그런 눈치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건 내가 그의 얘기를들어면서 맞짱구를 쳐주니깐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깐 맞장구 요령만 늘었다. 가령 누군가 호주 여행 갔다 온 얘기를 장황하게 하면 그의 말 중에 가장 포인트가 되는 단어를 한 번씩 뱉어주면 그는 동력을 받아버린다. 그래서 신이 나서 더 깊이 진행해나가고 나는 더 절망에 빠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는 현재 엘리베이터 설치기사다. 엘리베이터 설치 방법은 세탁소 주인인 내한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이야깃거리지만 그는 잘도 얘기한다. 또 섬에 있는 그의 노모에 대한 얘기도 잘 꺼낸다. 형제간의 우애도 남다른지 노환이 덮친 노모에 대해서 형제들의 돌봄 로테이션도 불필요한 내게도 알려준다. 그는 아직 애기가 없는지 단 한 번도 같이 오지 않았고 말속에 자식 얘기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이번엔 좀 젊은 부인이어서 어쩌면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러면 대화의 주제는 자연히 자식으로 향할 거고 자식농사 선배인 내가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텐데...


두 사람은 건강해 보인다. 본인의 일을 하고 주변과 교류하면서 행복한 가정이 있으니 영생불멸은 아니더라도 남보다 더 오래 살지 않을까. 이번 주에 오면 어떤 주제로 어린양 인  날 당황시킬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미지> 여기 사는 사람들은 제각각 그림자를 하나씩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어떤 때는 그림자를 특 던지면서 본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마 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구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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