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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Jul 11. 2018

캐나다 이민생활 <41>

만족, 행복의 순간들 - 일터에서 얻는 기쁨

(사진설명) 60여 년 전 서유럽 이민자가 결혼할 때 썼던 모자. 우리하고 또 현재와 너무 다른 타입이라서 좀 황당했다. 게다가 저 모자를 썼던 당사자는 월요일(2018. 7. 9) 저 모자를 다시 쓰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그 얘기를 듣고 최선을 다해 세탁을 했는데 오래된 물자국은 결국 지우질 못했다. 대신 풀을 먹이고 표백을 해서 좀 새것처럼 보이게 했다.


먹고살기 위해 세탁소를 하긴 하지만 꼭 이 이유만으로 일했다면 오래 못했으리라 생각 든다. 생전 낯선 곳에서 단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일을 접했을 때 그 막막함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당시는 무조건 어떻게든 비비고 살아남아야 하기에 곁눈질할 여가는 물론이고 이 일이 내게 만족을 주고 기쁨을 주고 뭐 이따위는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세월이 되고 그 세월이 켜켜이 쌓이면서 요령도 생기고 일머리도 돌아가면서 작업 중 느끼는 만족도도 조금씩 상승된 것 같다. 이게 없었다면 일에 부쳐서 몸이 망가졌거나 쌓인 스트레스로 벌써 점빵 문을 닫았으리라 짐작된다.


세탁물의 때라는 게 천차만별이라서 확실히 지워주겠다고 약속은 못하지만 대부분 지울 수 있는 요령과 약품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층 편해졌다고 해야 하나. 주로 이들의 옷에 묻은 때는 음식물이 대부분이고 집에서 작업하다가 다치면서 흘린 피, 노인들의 옷은 소변, 그리고 작업자들은 기름이 주종이다. 음식 물때는 기름성분이면 드라이 클린 한방으로 가버리는데 다만 카레나 마스터 소스는 세탁소 주인을 시험에 들게 하는 골치 아픈 존재다.


 우리 가게는 인도인들이 거의 안오기 때문에 카레 묻은 옷은 덜 오는데 마스터 소스 묻은 옷은 수시로 들어온다. 이게 들어오면 일단 케미컬로 약간 엷게 만든 다음 비누 푼 물에 3시간 이상 담가 뒀다가 다시 스파팅을 시도하는 일을 반복해서 하면 까칠한 손님 외는 거의 통과할 정도는 된다. 이렇듯 노란색 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좀 힘든 경향이 있다. 그래서 노란색을 지우는 약품이 최근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한국제가 가장 좋은 것 같다. 이게 나오면서 좀 쉬워졌다고 할까. 몇 군데 세탁소를 전전하다가 온 손님의 옷을 한국제 케미컬을 사용해서 그걸 지워준 적도 있다.


피는 오래된 것 말고는 100프로 없어진다. 스파팅 보드에 올린 뒤 스팀 건으로 쏘면 몰려오던 적들이 허겁지겁 무리 지어 퇴각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다만 청바지에 묻은 생리혈은 좀처럼 안질 때가 더러 있다. 금방 가져오지 않고 한참 뒤에 오면 때라는 게 그곳이 자기 집인 줄 알아 버린다. 그리고 안주해버리면 살살 달래도 안 나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땐 무조건 물에 불려야 된다. 그리곤 케미컬을 묻혀서 스팀으로 처리한다. 특이한 건 이런 생리혈을 묻힌 젊은 여자들이 정확히 옷을 들춰서 내게 확인시켜준다는 점이다. 우리의 정서로는 좀 부끄러운 일인데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남녀의 옷에 묻은 화장품이나 좀 애매한 단백질 때도 위치에 따라서 어떤 행위가 선행됐음을 추리할 수 있는데도 그들은 당당히 말한다. 이들은 주로 빨리 가져온다. 그러면 거의 완벽히 처리된다. 꼭 새 옷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때가 묻었던 자국을 못 찾으면 손님들은 좋아한다. 그들이 좋아하면 내 기분도 한결 나아진다.


소변은 물에 풀리는 때이긴 하지만 물빨래가 안 되는 울 소재일 경우 약간 골치 아프다. 드라이 클린 하면 흔적이 남고 물빨래하면 옷감이 상할 수 있고... 이럴 땐 손님의 성향을 감안해서 처리한다. 거의 오늘내일하는 노인이면 옷감에 신경 쓰지 않고 물빨래하고 아직 싱싱한 노인 축에 들면 스팀으로 일차 처리한 뒤 드라이 클린을 한다. 다만 컴플레인을 할 것 같은 노인이면서 소변을 많이 묻힌경우는 최대한 액션을 죽이는 물세탁을 한 뒤 마감작업으로 원형을 되살려준다.


현장 기능공의 옷엔 그리스라는 오일을 많이 묻혀 온다. 이들의 옷은 외출복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히 처리한다. 옷 입을 때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 그래도 별 불만은 없다. 최고 말 많은 군상은 변호사들. 옷도 깨끗이 입지만  기본적 요구사항도 한층 높다. 이들의 눈높이도 맞춰줘야 하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지속적인 불만이 터져 나오면 조용히 다른 곳을 찾아보라고 권유한다. 그러면 100프로 악담을 퍼부으면서 간다.


s 모 인도 변호사 부인이 이런 케이스다. 올 때마다 불만이다. 리턴해오면서 다른 옷감을 조건부로 내건다. 이걸 다시 깨끗이 해주면 맡기겠다고. 리턴해온  옷을 살펴보면 도대체 언제 찾아갔는지 등 뒤에 가로로 주름이 깊게 파여있고 옷 앞섶에 도드라져 보이는 노란얼룻이 묻어있다. 부부 옷 둘 다 비슷한 위치. 이걸 미뤄 짐작해보면  인도식당에서 카레를 시켜 먹다가 소스가 튄자국인데 이걸 덮어 씌운게 아닐까 의심됐다. 그 정도 스폿은 세탁하면서 여러 공정을 거치는 과정에 발견되고 그러면 다시 처리해서 나가는 게 순서인데 의아했다.  또 남자 양복 뒤가 가로로 주름이 져 있다는 건 의자 등받이에 오랫동안 앉았다는 증거다. 이걸 안 순간 그녀는 퇴출됐다. 이런 순간도 짜릿하다.


이런 진상 손님들은 거의 정리가 됐고 새로 오더라도 금방 들통나기 때문에  이들로 인한 속 썩이는 일은 많지 않다. 대신 대부분 손님들의 만족한 피드백이 이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동력 중의 하나가 아닐까 오늘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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