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잘하고 황당한 D부부
사진설명 올 4월에 유난히 비가 잦고 양이 많다. 한이틀내린 비로 이웃골프장이 호수로 변해있다.
필자 주 사람 사는 사회는 거진 비슷하겠지만 캐나다는 다민족이 모여사는 곳이어서 예전부터 관심이 가는 것이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고, 어떤 곳에 관심을 더 가지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살면서 부딪혔던 사람들의 사례를 모아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이는 극히 개인적인 만남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주관적인 시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세탁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 때문에 당연히 세탁소 손님 들위 주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등장인물은 주로 백인이 되겠지만 피부 색깔에 구애받지 않고 진행해나가겠습니다.
지난주 우리 가게 처음 오는 손님이 왔다. 작은 시 외곽마을이고 세탁소가 한 곳뿐이어서 한두 번 마주쳤음직한데 전혀 안면이 없는 30대 정도의 아줌마였다. 습관적으로 첫 손님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름과 매칭 되는 특징을 잡아내기 위해 슬쩍 스캔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름은 스펠이 흔치 않은 것이면서 너무 발음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다음으로 기억에 두는 건 신체의 특징. 헐렁한 원피스 드레스에 풍채가 상당해 보였다. 살짝살짝 움직일 때마다 피부와 닿는 옷감 위에 도드라지는 볼륨감을 감안할 때 그 내용물은 짐작이 갔다. 일단 몸통이 상대적으로 컸음을 알수있었다.
그녀가 가지고 온 것은 애기옷 네 가지와 남편의 청바지. 세탁 아닌 수선을 요구했다. 애기옷은 어른 손바닥 정도의 사이즈를 감안할 때 태어난 지 채 한 달 정도쯤일까. 그런 애기한테 셔츠와 조끼 바지를 좀 더 줄이는 것이었다. 걷지도 못할 것 같은 애기한테 그런 정장을 입힌다는 것은 특별한 행사가 아닐까 짐작된다. 세례식이든가 집안의 경삿날 같은 것. 여기까진 아주 평범한 주인과 손님의 거래 한 장면이라면 그 뒤에 진행된 일은 좀 특이했다.
며칠 뒤 찾아간 뒤 곧 전화가 왔다. 남편의 청바지를 애기옷처럼 밑단을 자르지 말고 돌돌 말아 올려서 다음에 줄면 내려서 입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게 그녀의 컴플레인이었다. 이 말을 혼자 이해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 청바지는 밑단이 땅에 닿으면서 헤진 부위를 잘라내고 최소한으로 햄하는것이었기 때문에 뭔 말인지 첫 대화에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말아 올릴 게 없었는 데다가 설사 여유분이 있다 손치더라도 청바지 옷감을 말아 올려서 햄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곤 한다는 말이 너희가 내 요구를 묵살 살 했기 때문에 싹둑 잘라서 반바지를 만들어 달라고 수정 요구가 들어왔다. 그리곤 공짜로 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전화 대화 와중에 옆에서 청바지 당사자로 보이는 남자의 음성이 들렸다. 대충 정리하면 장례식에 가야 하는데 바지를 망쳐서 짜증 난다. 뭐 이런투의 잡음이 연속해서 들렸다. 청바지 입고 장례식? 앞뒤가 맞는 말을 해도 이해 할똥말똥한데 참 어처구니없는 날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손님의 요 구니깐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맨 처음 내게 했던 말을 다시 해보라고 요구했다. 그녀는 아주 침착하게, 일관되게 주장을 펼쳤다. 갑자기 부화가 치밀어 올라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욱했다. 그녀는 끝까지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너무 얄미워서 카운터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두대를 가르치면서 소리와 행동이 녹화된다.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해라 그러면 기분 좋게 너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이 질러왔음을 아는지 돌이 키질 못했다. 별거 아닌데 그녀가 덮어 씌운다는 게 너무 서글펐다. 날 어떻게 생각하길래 달을 보고해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더 말꼬리 잡아봐야 득 될 게 없다고 보고 돌려보냈다. 그러면서 거짓말 더 이상 하지 말라면서 마지막 화풀이를 했다. 이게 화근이 돼서 제2라운드가 전개됐다.
10분쯤 뒤 젊잖은 중음의 남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중하게 인사말을 교환한 뒤 생전 들 오보 지도 못한 쌍욕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90프로 욕설에 10프로 전달사항. 그녀의 남편이었다. 대꾸를 못했다. 내게 너무 먼 상대였다. 그냥 듣고 있다가 녹음해도 될까 하니 끊었다. 그리곤 곧바로 가게로 왔다. 한눈에 알아봤다. 입가에 욕 때가 아직 묻어있었다. 옆에 비슷한 놈을 한 명 끼고 왔다. 남편은 전화기에 다 하지 못한 화풀이를 시작했다. 조용히 감시카메를 가리켰다. 그의 시궁창 입도 잦아들었다. 옆에 관전하는 친구는 좀 모잘라보였다. 사람은 보통 울 때라던가 웃을 때, 슬플 때는 그 감정에 맞게 또 때에 맞게 표현이 나와야 되는데 그 친구는 그 포인트를 자꾸 놓치는 것 같았다. 그 남편이 내개 윽박지르면 자기도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약간 위협적인 행동을 해야 도움이 될 텐데 주위가 산만하고 두 사람의 대화를 완전하게 인지 하지못하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면 날피하고 손으로 세탁물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만지면서 주류에서 멀어지려는 행동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일단 그의 인해전술은 실패로 보였다.
사실 이민 초기에는 이런 쌍욕을 바가치로 들어도 감정선에 대미지가 가질 않았다. 영어가 서툰 데다가 몸과 마음이 바쁜 때여서 일일이 대꾸할 여유가 없었다. 너는 떠들어라 기차는 간다 식이었다. 이젠 먹고살만하고 영어가 귀에 들어오니 나도 모르게 불타오른다. 수양을 좀 더 해야 할지... 그는 제 청바지를 그냥 가져갔다. 이날 저녁식사는 소맥 3잔으로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