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뜬구름 Jun 16. 2019

캐나다의 이웃들 <51>

17년이 지난 뒤 돌아본 vip고객의 현주소

  지난 2002년 2월 16일 세탁소를 인수했다. 인수인계까지 근 두 달에 걸쳐 전주인과 함께 일하면서 하나씩 일도 배우고 이 세탁소에만 해당되는 노하우도 전수받았다. 이 기간 동안에 거의 모든 걸 접수하고 전주인은 아낌없이 주고 떠나게 된다. 왜냐하면 계약서상 전주인은 동일업종으로 주변에서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노하우는 쓸모가 없게 된다.


이날 마지막으로 받게 된 인계 사항은 vip명단. 20여 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손바닥만 한 종이 한 장. 얼핏 읽어보니 그동안 안면을 튼 사람도 있고 전혀 생소한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한번 봐서 이름과 그 사람을 매치시킬 수 있는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지속적으로 대면하면서 빠르게 숙지해갔다. vip라는 무게감도 한몫 했을터.


vip와 일반 손님을 어떻게 구분했는지 전주인이 떠난 뒤 한 명 한 명 뜯어보니 일단 주 1회 이상 방문하고 1회 세탁물이 남달랐다. 그 외 가격에 대한 불만이 없었고 세탁물 컴플레인도 적으면서 무턱 대고 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만 있으면 장사하기 편하겠다고 생각이 드는 정도의 손님이랄까.


이들은  특별하지 않았다. 직업별로 보면 보험 대리점업, 부동산 리얼터, 스몰 비즈니스맨, 항공사 직원 등 보통의 직장인들이었다.  또 전주인과 같은 종교를 믿는 인도인들도 섞여 있었다. 좀 특별하다면 컨츄리 가수와 아이스하키 중계방송 해설자 정도. 이젠 세월이 흘러 단 한 명만 남았다. 그는 전주인 이전부터 우리 가게를 이용했으니 무려 30여 년 가까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일부 10프로 정도는 주인이 바뀌면서 우리 가게를 떠났다. 아무래도 전주인에 비해 서비스가 부족하고 세탁기술 또한 모자랐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다시 돌아오기도 했지만 영영 남이 된 경우도 있다. 이런 케이스를 막기 위해 전주인이 vip고객에게 날 소개할 때 한국에서 세탁업을 10년 했다고 말했다. 손님들은 긴가민가 했다.


컨츄리 가수의 경우 공연 한번 하고 나면 엄청난 양의 세탁물을 가져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끊어버렸다. 이손님을 지속적으로 잡기 위해 전주인이 날 사촌이라고까지 말했는데 전혀 씨가 먹히지 않았고 화려한 무대의상을 세탁하기엔 조금 부족한점이 없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아주 오래된 큰 차를 리빌딩해서 타고 다니면서 주변의 관심을 모았고 세탁물이 큰 차에 넘칠 정도로 싣고 왔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 그 뒤 딜리버리 서비스를 제안했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방송 해설자는 인수 뒤 오랫동안 우리 서비스를 이용했지만 멀리 이사를 가버렸고 보험대리점을 하던, 40대의 비교적 젊은 아저씨는 어느 날 갑자기 중풍이 와서 사업을 접고 휴양하기 좋은 동쪽 오카나간 쪽으로 이사를 갔다. 항공사 직원들은 에어캐나다가 힘들어졌을 때 다수 옷을 벗으면서 우리 곁은 떠났다. 리얼터나 비즈니스맨들도 리타이어 하면서 더 이상 세탁이 필요 없는 이웃이 돼버렸다. 인도인들은 무조건 싸게 해 달라는 요청을 무시하면서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또 이때는 인도인들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서로 궁합이 맞자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유일하게 남은 한 명은 아직 현직에 있다. 직책은 올랐다. 처음엔 자동차 영업사원이었는데 이젠 제너럴 매니저다.  별로 빛나는 직업은 아닐 것인데 오랫동안 한우물을 파니 최고 직책까지 올라가는 그 의지가 돋보인다. 아울러 몇십 년을 한 세탁소를 이용하는 그의 고집도 알만하다. 그는 몇 년 전에 이미 우리 동네에서 멀리 이사를 갔는데도 출근길, 혹은 점심시간에 잠깐 들러 옷을 맡기거니 찾아간다. 웬만하면 가까운 곳을 찾을만한데 이런 불편을 감수할만한 메리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게를 이용하는 건 그의 성격이 아닐까.


그는 좀 말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얼굴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혈압이 높은 건지, 내부에 쌓이는 울화를 배출하지 못한 결과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굴곡 많은 가정사로 인한 건지 알 수는 없다.


첫째 아들이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됐다가 폭발물이 터지면서 동료들과 함께 전사했다. 그 당시 전국이 추모 열기로 후끈했는데 그에게는 어떤 변화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 뒤 부인과 이혼했다. 둘째 남자애는 우리 큰애와 고교 동기생인데 약간 부족해 보인다. 소식이 궁금하긴 하지만 물어볼 수가 없다. 그와 나사이에 이런 유의 질문과 대답을 하기에는 간극이 좀 있다. 그 뒤 여자 친구라면서 어떤 중년 여인을 동반해서 가게에 한번 들렀었고 그녀의 세탁물도 심심찮게 가져왔는데 최근에는 좀 뜸한 편이다. 이런 것도 궁금하긴 한데 그의 입은 무거워 보인다.


지금은 vip와 일반 손님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손님이 나에겐 vip로 생각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개중엔 얄미운 손님도 있지만 앞에서는 절대 표 내지 않는다. 사실 vip라고 해서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 건 없었던 것 같다. 인간적인 교감이 조금 앞선다고나 할까. 그 외 빨랫감에 대한 차이를 내려야 낼 수도 없는 현실이다. 모든 세탁물에 대해 내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의 이웃들 <5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