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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Oct 20. 2019

알래스카 크루즈

미지의 자연  도시 인간을 품다

우리가 탔던 크루즈. 선객 2800명에 선원 1200명 등 총 4000명의 대식구를 태우고 7박 8일 알래스카를 돌고 왔다.

사진은 첫 번째 기항지인 싯카에서 찍은 것이다. 멀리 구명정이 보이는 6층 베란다에서 주로 놀았다.



10년 전부터 알래스카 크루즈를 꿈꿔 왔었다. 알래스카라는 낯선 곳과 크루즈라는 환상이 우리를 오랫동안 유혹했다. 한부부만 가기에는 너무 건조하고, 그래서 한국의 친구들을 꼬드겼다. 10년 전 마음먹은 당시에는 다 들먹고 살기 빠쁜 데다가 회사나 조직의 중간 관리자라서 며칠씩 몸 빼기가 쉽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친구들의 주변 환경이 변했다. 교사는 교장이 됐고 공무원은 정년을 맞았다. 기업체 다녔던 친구는 같은 계통으로 독립을 했다. 움직임이 좀 자유로워진 것이다.


출발은 밴쿠버. 한국에서 온 친구 세부부는 우리 집에 여장을 풀고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긴 여정의 몸풀기 삼아 당일치기 밴쿠버 아일랜드 관광을 시작으로 주변 시내 관광 등으로 낯선 환경을 지우는데 골몰하다가 드디어 8월 4일 대망의 출발.


여행사에서 미니버스를 내줘서 단체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중간에 한국에서 오신 중년의 부부를 태워 총 10명이 함께 장도에 올랐다.

밴쿠버항 바다 위에 건설된 캐나다 플레이스 일층에 마련된 접수창구. 배에서 쓸 수 있는 시 패스를 만들었다. 이 카드는 신분증이면서 결제도 가능했다. 몇천 명이 동시에 하긴 했지만 워낙 창구가 많아서 불과 10분여 만에 해결됐다.


카드가 만들어지자 배 승선이 가능해졌다. 오후 4시쯤 출발한다는 안내를 받긴 했는데 그동안 배안에서 뭘 할지 전혀 의논되지 않은 상태서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밥을 지금 제공하는지 아니면 배가 출발해야 주는지 알 수도 없었고 방에는 입실이 금지돼있었다. 할 수 없이 손에 든 가방을 들고 맨 꼭대기에 모였다. 배는 고파오는 데 어디서  뭘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고 안내는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그 많았던 선객들이 어디에 있는지 눈에 뵈지 않은 게 좀 불안하긴 했다. 마침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식사는 몇 시부터냐고 묻자 지금 몇 층의 어디는 할 수 있는다는 중요한 한마디에 모두 화색이 돌면서 뷔페로 모였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뷔페식당. 각국의 음식이 총망라돼 있지만 아쉽게도 한식은 없었다. 아마 한인 이용자들이 늘어나면 음식도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수시로 들락거렸다. 여기서 안주도 장만하고 외출할 때 간단한 삶은 계란과 과일 정도는 가져 나갔다. 음식은 공짜다.



늦은 점심을 배불리 먹고 맥주 한잔 걸치니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쯤 입실이 가능해졌고 각자 배정된 방에 들어갔다. 굉장히 크고 복잡한 구조여서 잘못하다가 길 잃기 십상일 것 같아 항상 부부나 친구들이같이 다녀야 할 정도였다. 가는 길과 나가는 길을 눈여겨보기 위해 주변에 걸린 그림들을 참고했다. 세부부는 좀 싼 곳에, 한방은 베란다가 있는 곳을 정했다. 안보다 1000불 더 받았다. 간혹 베란다 방에 모여 바다를 쳐다보면서 술도 한잔 하고 지나간 추억을 더듬기도 했다.


첫날은 무지하게 배만 탄 것 같다. 하염없이 위로 위로만 가는 것 같았다. 주변에 낯익은 풍경이 사라지고 망망대해가 나오다가도 또 좁은 수로에 들어서기도 했다. 바다가 잠잠하기도 했다가 어떤 때는 성난 짐승처럼 우리 배를 때리기도 했다. 결국 와이프는 멀미약을 받아먹었다. 그 약은 신경안정제였다. 희한한 건 우리와 노선을 똑같이 하는 다른 크루즈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주로 우리 곁 몇 킬로미터 떨어져 항해하다가 살짝 안보이기도 하지만 주로 서로 시야에서 멀어지진 않는 것 같았다. 크루즈 회사는 달랐다.


긴 항해 끝에 첫 기작지인 싯카에 도착했다. 인구 8000명 정도의 작은 시골마을. 과거 소련 시절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노란색칠의 창이 작은 건물이 눈에 뜨였고 당시의 행정관서 등이  관광객객들의 발길을 잡았다. 도착 전 각방으로 안내 메거진이 도착했다. 간단한 기착지 소개와 함께  야외활동 종류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엄두가 안 날정도로 비쌌고 경험자들의 조언에 따르면 배밖에도 똑같은 서비스가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인들에 의해 제공된다는 정보를 믿고 그냥 나왔다. 항구에서 시내까지는 셔틀이 운행됐다. 시내에는 이미 가판대를 설치해놓고 치열한 호객행위가 벌어졌다. 뭘 할지 의견 통일이 안돼 결국 시내 한 바퀴 걸어서 도는 걸로 만족했다. 바닷길을 따라 작은 공원을 관통하면서 연어 회귀하는 모습과 연어가 쉽게 낚시에 걸리는 장면 등을 신기한 듯 구경했다. 밴쿠버 출신인 우리 부부보다 한국서 온 친구들은 몹시 귀한 구경인 듯 시간을 보냈다. 이 트레일 끝에는 작은 시립 박물관이 있었다. 주로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조각품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 소량이었다.


싯카 박물관 앞뜰에 세워져 있는 토템폴. 동행한 친구들과 함께. 왼쪽부터 영업의 귀재로 어릴 때부터 호가 났던 현대자동차 창원의 모 대리점 대표, 필자, 부산 모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마지막은 부산 모구청 총무국장으로 정년퇴직한 친구.


싯카항에 정박돼 있는 어선들. 주산업은 관광업과 어업인 것 같았다.



이 길을 돌고 이도시의 다운타운격인 시내로나갔다. 200미터 남짓한 길 양쪽엔 제법 관광객을 위한 가게들이 즐비해 있었다. 음식점은 물론이고 옷가게, 술집 , 선물코너, 보석가게들이 손짓했다. 2800명 정도가 한순간에 풀려나 왔으니 이 길은 꼭 장날 같았다. 우린 우선 선물가게서 간단한 쇼핑을 하고 허기를 채울 겸 맥주집에 들어갔다. 8명의 동양인이 어두컴컴한 술집에 들이닥치자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됐다.  이 시선들이 부담돼서 좀 멀직이 문 앞에 터를 잡고 알래스카에서 최고로 많이 팔리는 현지 맥주를 맛보았다. 관광지 특유의 바가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 계산은 좀 명확한 것 같지가 않았다. 현금 계산하기 좋게 딱 떨어지게 말했다. 그에다가 팁을 좀 얻어주자 약간 미안해하는 눈치. 중년의 남자 주인은 그때부터 살짝 풀리면서 사진도 같이 찍고 찍어주기도 했다. 말도 걸기도 하고. 처음엔 약간 경계의 눈빛이랄까.


한이 틀 배에서 보내고 나니 배안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에서도 놀게 많았다. 먹을 것도 마찬가지. 저녁은 좀 품격 있는 레스토랑을 골랐다. 문라이트. 드레스코드를 요구하는 걸 봐서 격조가 살짝 있어 보였다. 메뉴판도 있고 이 메뉴는 매일 바뀠다. 우리는 비슷한 시간에 매일 똑같은 자리에 앉았고 같은 웨이트의 서비스를 받았다. 그는 에콰도르 사람이었다. 돌돌 굴리는 영어 발음이 이상하긴 했지만 우리가 더 알아듣기 쉬웠다.  뭘 하든 안 하든 무조건 매일 팁으로 일인당 미화 8불이 나갔지만 이 친구에게는 식사 때마다 따로 10불을 줬다. 이 10불의 위력은 대단했다.

세미 정장으로 드레스코드 한 채 웨이터를 기다리면서 한컷.


문라이트 내부. 일이 층으로 한꺼번에 몇백 명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규모였다. 우리 일행 전체의 모습.


배 안의 시설 대부분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많은걸 경험해보기로 했다. 아침에는 짐에서 자전거도 타고 저녁에는 실내 수영장에서 심신을 녹였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극장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쇼를 봤다. 쇼의 경우 코미디는 좀 난해했고 노래는 그나마 나았는데 우리가 아는 가수나 노래는 안 나왔다. 이런 시설의 언저리에는 음료수를 제공해주고 간단한 술은 사 먹을 수 있게 작은 바들이 붙어있었다. 별로 힘든 일이 없으니 술과 함께 일들을 진행해 나갔다.


경험자들의 충고에 따라 팩소주를 40개쯤 들고 갔다. 다들 술을 즐기고 또 객지에서 술 빼면 심심할 것 같기도 해서 가져갔는데 잘한 일인 것 같았다. 맥주를 사서 소주를 타 먹으니 한결 빨리 취하고 술을 마신 것 같았다. 웨이트들도 우리의 소주를 잘 모른는지 알고도 그냥 둔 건지 아무 말이 없었고 시도 때도 없이 소맥을 즐겼다. 가져 간소 주는 한 사 나흘 만에 동이 나고 배 안의 면세점에서 소주보다 더 독한 보드카를 사서 마셨다.


엘레베이트 부근의 간이무대.


배안에는 이것 말고도 도서관이나 작은 클리닉, 갤러리, 네일숍, 슬롯머신 등 웬만한 건 다 갖춰져 있었다. 맨 꼭대기층에는 천연잔디로 골프 퍼팅장과 간단한 구기종목 운동을 할 수 있게 시설이 돼 있었다. 이걸 다이용 하려면 일주일이 짧은 느낌.


실내수영장. 따뜻해서 낮잠 자기 그만이었다.




짐 내부. 외국인들은 놀러 와서도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또 엄청나게 마시고 먹고.


배 맨 꼭대기. 천연잔디가 이채로웠다.



삼일째는 배안에서 빙하를 관광하는 스케줄이었다. 허바드 글래셔. 가기전 배안 대형홀에서 선객들을 모아 놓고 빙하에 대한 설명을 했다. 강사는 텍사스 주립대학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일 년에 얼마씩 하류로 내려오고 지구온난화로 어느 시기가 지나면 소멸될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도 밝혔다.  크루즈가 최대한 가까이 가서 멈춘 상태에서 360도로 천천히 돌았다. 실내의 명당자리는 이미 만석이었고 우리 일행은 옥상 야외 바에서 담요를 덮어쓰고 감상했다.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협곡 사이로 꽉 낀 것 같은 광경. 그리고 천천히 흘러내리는듯한 자국이 선명해 보였다. 바다 쪽으로 오면서 꺾인 흔적이 또렷했다. 이것도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인 만큼 열심히 보면서 사진 촬영에 임했다.


허바드 빙하. 억겁의 세월을 쌓아온 오늘이 경이로웠다.


빙하를 본 흥분을 6층 베란다 방에 모여 음주로 차갑게 식혔다. 안주는 뷔페에서 조금 가져왔다. 음식을 방으로 가져가도 되는지 몰라서 첫날은 눈치만 봤는데 다들 자연스럽게 그런 행위를 하는 걸 보고 나선 우리도 따라 했다. 이날 식을 줄 모르는 음주 욕구가 술 재고를 바닥내고 말았다. 우린 중고등학교 동기들이어서 과거사 한마디가 튀어나오면  이야기가 꼬리를 무는 병폐가 있었다. 이날 술자리는 좀 길었다.


두 번째 기항지는 알래스카 주도인 주노. 이날 처음 알았다. 앵크리지가 아닌 주노가 주도라는 걸. 그리고 주노는 앵크리 지보다 캐나다에 가까웠다. 캐나다 비씨주 북쪽보다 좀 아래 있었다. 아마 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인구는 3만여 명. 제법 도시형태를 갖춰있었다. 큰 빌딩도 있고 연방건물에다가 주도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관공서들이 시 골격을 이뤄 3만의 도시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좁은 해변을 따라 조성된탓에시역은 넓지 않았다.


주노 시내 전경. 작은만을 사이에 두고 해변가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주노에서의 야외 액티비티도 나와서 결정하기로 했다. 훨씬 다양하고 쌌다. 배 출구에는 이미 임시 부스가 10여 개 마련돼 치열한 호객행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가판에 적혀있는 가격은 모두 동일한데 실제 가격은 천차만별.  예를 들어 고래 보기 같은 경우 200불이 협정 가격이면 일단 아무 말없으면 이대로 받고 조금 딜을 요구하면 입맛대로 깎아주고 고래배가 출발이 임박하면 완전 바겐세일 덤핑으로 판매했다. 우리는 다시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가는 게 부담된다는 다수의견에 따라 시내관광과 빙하 계곡을 선택했다. 이것도 우리 8명은 정가를 주고 티켓을 끊었는데 만석이 안 된다는 이유로 출발시간을 어기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완전 반값에 팔아치우는 현장을 똑똑히 봤다.


도시 이미지를 대변하는 고래 조형물.


주노 시내는 한 10분 정도 천천히 버스로 돌면 끝이었다. 운전기사가 차를 몰면서 뭔가 설명을 하는데 정확한의 미를 파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빙하 계곡은 허바드와 또 다른 색깔로 다가왔다. 여긴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고 원하면 배를 타고 더 접근할 수 있게 개방돼 있었다. 우린 위험하다는 주위의 권고대로 배를타지 않고 최대한 가까이서 감상했다. 그리고 빙하가 녹은 물에 다 같이 손을 담가 보기도 했다. 오는 길에 연어부화장과 알래스카의 상징인 큰 고래가 하늘로 치솟는 조형물 앞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시내를 천천히 걸어서 한 바퀴 돌았다. 역시 이곳도 다이아몬드 가게가 즐비했다. 싼 가격이 한번 더 보게는 했지만 우리 일행 아무도 구매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 일정이 소화되고 마지막 날을 향해 해는 기울어져 갔다.


크루즈 7일 차. 주노에서 한참 남쪽으로 내려왔다. 케치칸. 대륙으로 흘러내린 열도의 마지막쯤 되는 곳이었다. 이곳도 역시 조용하고 작은 어촌 느낌. 과거 골드러시 때는 흥청망청 했겠지만 현재는 관광산업 외는 별로 눈에 띄는 게 없었다. 8000여 명의 도시는 그곳의 사정으로는 제법 큰 도시이기 때문에 주변 원주민 마을이나 몇십 명 단위의 부락에 행정 교육 의료 경찰 복지 등을 제공하는 허브도시로서는 윤곽을 갖춘 것 같았다.


해안선에 자리잡은 케치칸 전경.


마지막 기항지에서는 좀 멋진 추억을 만들기로 했지만 좀 뻔했다. 결국 고심 끝에 바다표범 고래 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세트 관광을 하기로 했다.중간에 원주민 박물관을 거쳤다.여긴 현재 토템폴 작업이진행중이었다.




 바다표범과 고래는 사실 뒷전이고 곰 서식지 관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작은 수로의 양쪽에 몰려서 열심히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우리도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곰이 연어를 잡고 그것을 먹어 치우는 장면을 보면서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그 곰은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해 있었는지 자기 식당 주변에 객군이 몰려 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달리 보면 흡사 알래스카 관광청 직원 같은 느낌이랄까. 월 일정액의 보수를 받으면서. 그만큼 그 곰은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적절히 풀어줬단 뜻이다. 이 장면은 흔치 않은지 우리 기사도 말도 없이 열심히 동영상을 촬영했다. 이 장면이 이번 여행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긴 여정은 막을 내렸다.


알래스카 관광산업을 위해 열일하는 곰.연어를 잡기위해 다시 물가로 가고있다.


해단식은 아들 내외가 주선한 밴쿠버 한 일식당에서 거행됐다.


해단식현장. 맨뒤 서있는 여자애가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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