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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디허니 Jan 03. 2018

음악을 들으면 그 사람이 보인다

감성(Sensitivity)과 감수성(Sensibility)

 예로부터 음주가무에 능하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며, 태어나 노래방에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 사람이 드문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즐기는 사람과 음악을 만드는 사람의 비율을 굳이 나누어 본다면, 아마도 전자의 경우가 절대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의 총인구수가 약 5140만 명이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총 회원수가 약 11만 명이니, 어림잡아 대한민국의 전체 인구수 대비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율은 대략 0.2%를 웃도는 수준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학에서 실용음악 작곡을 전공한 뒤 후자에 속하게 된 나는, 여태껏 음악을 해오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고, 또 같은 길을 걷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음악뿐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앞으로의 글을 통해 그동안 경험했던 이야기를 짧은 식견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감성(Sensitivity)과 감수성(Sensibility)


 지금도 가까이 지내며 나의 대학시절 음악적, 인간적 멘토가 되어준 한 학번 위의 선배가 있다. 군 제대 이후 본격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되어, 거의 매일같이 함께 술을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하루는 어떤 화제로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감성'과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간 적이 있었다. 사전적 의미로는 두 단어가 사실상 같은 말이며, 영어에서도 Sensitivity와 Sensibility를 혼용하지만, 당시 그 선배의 개똥철학은 이러했다. 


"너는 감수성이 뛰어난 거지, 감성이 뛰어난 게 아니야"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인의 이미지가 그렇듯이, 당시 같이 음악을 공부하던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대부분 나와는 다르게 개성이 강했고 범접하기 어려운 포스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으며, 음악적 역량 또한 훌륭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술가의 기질이 강했던 그 선배의 관점에서 보았던 당시 나의 모습은 평범하고 고지식한, 다른 의미로는 순진하고 재미없는 녀석이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순진한 게 아니라 순수한 거라며 스스로에 대한 항변을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사전적 정의와는 다르지만, 영어 단어로는 Sensi'tivity'와 Sensi'bility'의 어감 차이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타고난 기질(Sensitive)과, 감정을 느끼는 능력(Sense+Ability).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타고난 예술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든 일단 돌진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 선배와는 다르게, 나는 모든 일에 신중했고 모든 것을 꼼꼼히 따지는 습성이 있었다. 치킨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통장의 잔고가 어떻든 일단 주문을 하고 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그 선배가 보기에는 당시의 내가 만들었던 음악에서 나 자신을 투영한 모습보다는, 그렇게 보이게끔 잘 포장해놓은 모습이 더 눈에 띄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음악이 솔직하지 들리지 않아서 별로 감흥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이후에 많은 학생들을 지도하며 똑같이 느낀 감정이었는데, 비록 기교가 적고 투박하지만 음 하나하나가 와 닿게끔 곡을 쓸 수 있는 학생이 있었고, 화려한 편곡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왜인지 솔직하게 들리지 않는 곡을 쓰는 학생도 만나게 되었다. 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나는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물론 아직까지도 그러한 딜레마에서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마도 모차르트가 가진 것은 뛰어난 감성이었고, 살리에르가 가졌던 것은 모차르트의 감성을 알아챌 수 있는 풍부한 감수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이후 내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선배의 영향으로 나 또한 그런 예술가적 기질이 절정에 달했던 스물다섯 살 즈음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몇 마디 정도를 나눠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오만함이 있었다. 

 

 물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저 그 당시의 나와 비슷한 예술가적 기질을 사람이면 호감을 가지고, 신중하여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의 경우는 굳이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지 않는 단순한 판별법이었으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와 같이 솔직한 사람만 가려내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다만 많은 경험을 통해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이 된 지금에도, 처음 만난 날부터 격식 없이 소주 한잔을 나누며 서로의 솔직한 모습을 이야기할 수 있고 친밀감을 쌓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보다 선호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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