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승무원이다.
'Welcome on Board'
이민가방 두 개를 끌고 2008년 12월 싱가폴에서 첫 승선을 했어.
언니가 곧 근무하게 될 부서의 슈퍼바이저가 격하진 않았지만 'Welcome on Board' 라며 반갑게 신입들을 맞이 해줬고 서류제출, 방배정 등 군입 입소식과 비스무리한 절차를 마친 후 언니가 근무하게 될 데스크로 향했어.
언니가 근무했던 부서는 Guest Relation Office 였는데, 호텔의 프런트 데스크와 같은 업무를 담당했어.
백 오피스 업무 담당과 데스크 업무 담당 모두 포함해서 총 15명~20명가량의 멤버가 한 팀으로 구성되었고
인도, 중국, 일본, 필리핀, 루마니아, 아일랜드, 브라질, 홍콩, 미국, 캐나다, 영국, 이태리 등 최소 10개국 이상 국적의 Crew들이 있었어.
10개국 국적 이상의 크루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
다리 길이가 너무 비정상 적으로 길고 엉덩이는 정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딱 그런 애플 힙의 표본을 가진 이기적인 몸매의 브라질 언니가 룸메였고,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고 취미 삼아 5개 국어를 통달했다는 불가리아 언니는 내 기숙사 옆방에 살았지.
우리 팀은 아니지만, 건너편 데스크 '여행담당 팀' 에는 또 기가 막힌 오빠가 있었어.
미드에서 막 뛰쳐나온 듯한 몸매에, 키는 187cm, 온몸에 근육 장착을 하고 코도 오뚝하고 눈도 큰데 얼굴은 작은, 완전 부담백배로 잘생긴 내 이상형 미쿡 오빠도 있었어. 주여! 할렐루야!
이런 꼴을 보려고 하나님을 나를 25번 불합격시키고 여기에 앉히신 거라 무릎을 탁 쳤다 내가.
(이때만 해도 난 이런 남자랑 결혼할 줄…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거야… 남편아 미안해, 사랑해 ^^)
첫 입사 후 나의 멘토와 같은 Senior 역할을 담당했던 하이안이라는 언니는!!
정말이지 말로만 듣던, 잘 씻지 않는 중국인이었어.
머리 이틀째 안 감아서 떡진채로, 심지어 쌩얼로 데스크에 출근한 적도 있었어.
겨드랑이 제모도 정말 안 하더라. 물론 모든 중국인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하필이면 내가 처음 만난 중국인 동료가 딱 우리가 알고 있는 안 씻고, 안 밀고.. 그런 중국인이었지.. 그랬지.
영국인은 모두 젠틀맨일 것이라는 환상을 깨트려준 까칠하고 불평불만 많았던 영국 동료도 있었고,
이태리 남자들은 모두 눈빛과 목소리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는 환상 또한 깨트려준,
다크서클이 항상 턱까지 내려온 미성의 이태리 남자도 한 팀이었지.
영화에서만 보던, 먼 나라 이웃나라 책에서만 보던 이야기들을,
이렇게 함께 한 솥밥을 먹으면서 직접 전해 듣게 되다니!! 감히 상상조차 못 하였던 일들이 내 눈 앞에서 펼쳐진다는 생각에 첫 승선하는 날부터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고 신났었어.
외국여행, 해외인턴, 배낭여행 등 외국 경험이 전혀 없었던 언니에겐
10개국 이상의 크루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돈 주고도 쉽게 경험 못할 값진 일이었거든.
크루즈는, 나의 첫 직장이 아니라 꿈꾸던 세계 일주의 여정이나 다름없다 생각했지.
곧 닥쳐올, 눈물겨운 트레이닝이 어떤 것이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이렇게 다채로운 인종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 세계 일주 같았죠 '
같은 소리를 했다지.
이렇게 셀프 다큐를 찍으면서 벅찬 가슴을 안고 언니의 크루즈 첫 승선이 드디어 시작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