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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래 Feb 11. 2020

병어를 생각하는 판체타

-다시 쓰는 사랑 이야기 07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가 출간되고 인터뷰를 많이도 했다. 그때 받은 질문 하나가 가끔 떠오른다.

"요리를 시작하고 맨 처음 아내가 맛있게 먹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내가 만들어주면 행복해하던 얼굴만 떠올랐다. 그 얼굴 앞에 무엇이 놓여 있었던가? 더듬어 보니 몇 가지가 떠오른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병어였다. 맛있고 큰 병어는 꽤 비쌌다. 이만 원쯤. 한 사람 몫이다. 아내는 내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몇 마리라도 거침없이 살 사람이었다. 자기가 먹고 싶을 때는 비싸다고 하지만.

노량진 수산시장에 다녀오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거기에 가야 큰 병어가 있다. 동네에서 사면 큰 것도 중간치이고 비싸기까지 했다. 그래도 사서 구워주었다.

병어는 정말로 집에서 할 게 아무것도 없다. 마음 내는 게 거의 전부다. 어물전에서 깨끗하게 장만해 주는 걸 물에 씻어(소금기를 빼려고 헹군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작은 오븐에 넣고 타이머를 맞추면 된다. 꺼내어서 레몬즙을 좀 뿌리는 정도면 충분하다. 며칠 지난 것이라면 좋은 간장과 고춧가루를 써서 살짝 조리면 되고.

아내에게 병어 살을 발라 숟가락에 얹어주면 맛있게 받아먹었다. 나에게도 먹어보라고 했지만 먹지 않았다. “싱거워.” 병어 살이 달다는 건 알지만 한 마리는 혼자 먹어도 모자란다. “이게 싱겁다고? 달기만 한데?” 그러면서 내가 발라준 생선살을 입에 넣고 음미했다. 먹고 싶었던 달고나를 입에 넣은 어린아이의 얼굴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주기만 했지만 나에게는 해 달라고 했다. 유일하게 거꾸로였다. 언제나. 

어물전에 들렀다가 큰 병어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생선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농담 반 진담 반 가성비가 형편없고 먹을 게 없어서 그런다. 정말로 좀 싱겁기도 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 아무래도 육류가 낫다. 병어 한 마리 값이면 가장 맛있는 삼겹살 두 근을 살 수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육류보다 생선을 더 좋아했다. 함께 식사할 때면 생선살을 발라 작은 접시에 올려주었다. 그들은 나가사끼 짬뽕보다 생물로 끓인 동태탕이나 대구탕을 더 맛있게 먹었다. 육류보다 생선 요리를 더 자주 했다. 요리는 먹자고 하기보다 먹이자고 하는 것이다. 나가사끼 짬뽕이나 차슈나 수육 같은 것은 언제 만들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다.

사온 병어는 그대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판체타를 꺼냈다. 부엌에 들어서자 까르보나라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판체타는 좋은 삼겹살을 소금에 절인 이탈리안 햄(통베이컨)이다. 아주 향기롭고 맛있다. 좀 비싼 게 흠이지만, 그래도 병어에 비하면 턱없이 싸다. ^^

병어를 생각하며 까르보나라를 만들어 먹었다. 며칠 안에 병어를 먹긴 해야 한다. 살을 발라주는 즐거움이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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