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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주기자 Sep 06. 2020

1-4. 꿈은 갖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꿈에 대한 신화화가 평범하고 행복한 삶의 가치를 폄훼한다.

지금까지 퇴사와 이직 이야기를 이어온 것은 이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꿈은 갖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꿈이란 말은 신화화돼 있다. 누구나 자라면서 꿈은 소중한 것이라 배우고 그걸 이루는 것은 숭고한 일로 평가받곤 한다.(여기서 말하는 꿈은 장래희망 정도로 한정하려 한다.) 나는 학생 때부터 기자를 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돌아온 반응은 "넌 꿈이 있어서 좋겠다. 난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같은 부러움이었다. 누가 이 친구들에게 자격지심을 심어준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직업에 대한 정보가 모자라고 자신에 대한 판단도 미흡한 고등학생 수준에서 꿈을 정하고 그걸 밀고 나가는 건 부러운 일이 아니라 만용에 가까운 어리석은 일이다. 그 시기에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을 넘어 권장돼야 할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나도 꿈을 이루는 것이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고, 눈 양옆에 가리개를 달고 달려왔다.


나는 갈매기가 아니다. 더 높이 더 빨리 날기보다 더 오래 더 편하게 누워있고 싶다.


하지만 그게 행복해지는 길이었을까. 이제 나는 꿈에 대한 신화화가 평범하고 행복한 삶의 가치를 폄훼한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면 낮은 급여, 불합리한 근무 조건, 수직적인 위계질서 등 직장으로서 나쁜 조건은 다 갖추고 있음에도 기자는 나의 '꿈'이었기 때문에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직업으로서의 단점이 많음에도 수많은 기자 지망생들이 몰려들고, 수년간 언론고시에 매달리는 것도 것도 그들의 꿈 때문이다. 직업시장에서 공급은 구직자가 제공하는 처우와 근무 조건에 따라 탄력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꿈은 구직자의 민감도를 크게 낮추는 요인이다. 누군가에겐 더 나은 급여와 근무 조건보다 꿈을 이룬 것이 더 큰 보상일 수 있지만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꿈은 사람의 유연성을 떨어뜨린다. 꿈을 정하고 좇는 동안 주변 환경은 변한다. 하지만 꿈은 관성처럼 작용해, 목표를 바꾸는데 어려움을 일으킨다. 변화한 주변 환경을 못 본채 하거나, 합리화하게 되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분야만 파는 노력은 다른 분야의 직업을 고려하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같이 기자일을 하던 동료들이 "이게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라고 이직을 포기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지금까지 꿈꿔온 것을 막상 해보니 나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준비해온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분야로 옮기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산업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평생직장의 개념이 희박해지는 시대에 유연성의 부족은 뼈아픈 단점이 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직장에 취업하기 위한 스펙, 경험 등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꿈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회사에서의 인턴 경험, 소위 '무슨 일을 하든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을 준비해 왔다. 직업 시장에서 범용적으로 먹히는 스펙을 가진 사람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꿈을 접고 나니 직업 시장에서 나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가 보였고, 나에게 맞는 처우와 근무조건을 제공받으며 일하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새 직장을 얻는데 도움이 된 경험들도 꿈을 좇는 중에 한 눈을 팔거나 어쩔 수 없이 딴 길로 새다가 얻어진 것이 많다. 신방과를 가고 싶었지만 탈락하고 경영학과에서 공부한 것, 언론 관련 유학을 갈 수 없어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것, 이런 '딴 길로 샌' 경험 없이 꿈만 성실히 좇아왔다면 나도 '하기 싫지만 이게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 중 하나가 됐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딴짓을 하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을 이루는 건 위대한 일을 하려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남겨두고 나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좇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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