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어느 날 발목을 접질려 인대가 찢어졌고 발목뼈가 조각이 났다. 운동을 하다가 다쳤으면 어디 가서 말이라도 할 명분이 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무릎 이하는 허공에 상체는 침대에 업어져 있다가 잠시 잠이 들었었다. 갑자기 잠에서 깨면서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사단이 나 버렸다.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너 뭐 하다 다쳤어?"
"어...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남들은 축구나 농구를 하다가 다치는데 넌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다쳤어?. 그것도 뼈가 조각이 났어?. 분명 이런 말을 들을 생각에 말도 못 하고 얼버무려 버렸었다. 솔직히 침대 높이가 몇 미터가 되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로 타격이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몸무게였다. 당시 몸무게는 세 자리를 향해 질주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매일 저녁이면 물 마시듯 맥주와 안주를 달고 살았었다. 오죽하면 아내가 병을 모아 달에 한 번 팔았을까 싶다. 발목을 다친 것보다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몸무게를 버티지 못 한 현실이 너무 창피했던 것이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한 마디 하셨다..
"너 어쩌려고 매일 술을 마시고 그러니? 그리고 이 살은 언제 뺄 거야? 애를 가지려면 니 몸부터 건강하게 만들고 가져야지 어쩌려고 그래?." 한 번에 삼종 세트로 잔소리를 험하게 들었다.
보다 못한 아내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마라톤 준비해서 나가 보는 게 어때?."
"마라톤?, 1k도 뛸까 말까 하는데 어떻게 나가?"
"그러니까 연습을 해야지."
이즈음 되면 뭔가를 하긴 해야 했다. 살을 빼고 건강한 몸을 만들어서 아기도 갖아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이 살들을 어떻게 없애야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깁스를 풀고 몸을 추스른 후 어느 가을부터 그냥 달리기 시작했다. 운동장 한 바퀴부터 천천히 달렸다. 남들 두 바퀴 세 바퀴 뛸 때 한 바퀴를 뛰더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30분을 쉬지 않고 뛰자, 5분만 더 뛰자, 그렇게 숨이 차고 발목이 아파도 참고 뛰었다. 마치 뒤에서 보면 곰 한 마리가 실룩실룩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분간이 안되었을 것 같다. 마음이 앞서서 뛰려니 온몸이 아픈 건 당연하였다. 퇴근을 하면 만사가 귀찮고 그냥 쉬고 싶었지만 소파에 앉지 않고 바로 나와서 운동장으로 갔다. 조금이라도 집에 있으면 바로 쉬고 싶은 유혹이 발목을 잡을까 봐 그냥 나오고 본 것이다. '운동장에 가면 걷거나 뛰거나 뭐라도 하지 않겠어?.'라는 생각이었다.
평소 같으면 퇴근 후 집에 오면 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 이상하게 운동을 하고 나면 그 몸이 가벼워졌다. 다른 건 몰라도 뛰고 나면 뭔지 모를 후련함과 개운함에 기분도 좋았다.
이때가 20년 전이고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신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