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만 있다면 뭐든 별거 아니야”
뜨겁고 습했던 이번 여름.
숨이 턱 막힐듯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걸을 때마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마자 줄줄 흐르는 땀방울에 짜증이 솟구칠때마다,
습기가 가득차 에어컨을 돌리고 자야만 겨우 빨래가 마르고, 마른 하늘에 스콜같은 비가 퍼부어 당황스러울때마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계절 이럴거면 빨리좀 지나가라’ 라고 빌었다.
그런데 막상 오늘 눈을 떠 베란다를 열자마자 얼굴에 서늘한 가을바람이 휙 하고 불어왔을때 마음 한켠에 느껴지는 알싸함과,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지나가는 것에 대한 섭섭함과 아쉬움,
눈 깜빡하면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계절인 겨울이 올거라는 두려움이 섞여서 괜히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정신과 의사에게 기질적으로 우울한 사람에겐 겨울이 가장 힘든계절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까만 계절. 나에겐 겨울이 쌔까만 계절이다.
만물이 소멸하고, 꺼지고, 사라지고, 웅크리고,
계절 자체가 함의하고 있는 무기력이 나의 세계를 지배한다.
어렸을때 부터 유독 겨울이 되면 더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제, 오늘. 마침 생일이었지만 특별한 날인 만큼 내 인생은 특별하지 않기에 마음은 점점 다운되어가고
뭐라고 잊고 싶어 읽은 웹툰 <이태원클라쓰>에서 나온 대사가 괜히 마음을 위로해 준다
한 지인이 얼마전에 꿈에 나왔다. 두번째 결혼도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현재 별거중이던 지인이었다.
꿈에서 나에게 ‘다시 잘해보기로 했다’며 한동안 보지 못했던 표정으로 웃었다. 나도 덩달아 너무 기뻐서 정말 잘됐다고 함께 축하의 자리를 가졌다.
그 지인이 갑자기 생각나 오늘 조심스레 잘 지내냐고 연락을 해봤다.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결국 상대방의 확고한 마음을 돌리지 못해서 이혼이 진행중이라며 요즘엔 그냥 혼자 여행 다니며 ‘스스로답게‘ 산다고 말했다.
이혼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주말마다 어디든 사람많은 서울을 떠나 국내 어디든 떠나곤 하는 그 마음이 뭔지 알것 같았다.
나도 이별후 주말마다 전주고 부여고 공주고.. 차로 적당히 운전해서 갈 수 있는 거리면 혼자 무작정 가서 사람없는 곳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오곤 했었기 때문이다.
한 지인은 내 생일을 맞아 연락이 왔다. 건강은 좀 괜찮아 졌냐며 조심스럽게 물어보다 카톡을 삭제해버린다.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괜히 엄한 주제를 꺼냈다 싶은 건지, 아니면 바로 그런걸 물어볼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
어쨌든 삭제하기전에 다행이도 본 나는, 약도 끊고 많이 좋아졌고, 다시 복직해서 활기차게 회사 다닌다고 오히려 더 오바스럽게 대답을 했다.
그 지인은 내가 한창 여러 정신과를 전전할때 본인이 아는 정신과를 소개해 준 지인이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 오래 다니진 않았지만)
그러자 그는, 잘됐다며- “근데 어쩌냐 이제는 내가 아파. 불안증세 우울증세 번아웃? 그런거라고 하던데 참.. 잠도 잘 안오고 불면증이 심하네..뭐 약을 먹고 있는데
금방 나아지겠지 허허“ 라며 멋쩍게 자신의 상황을 고백한다.
마음이 아파 본 이후에는 비슷한 증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때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에- 진심으로 마음 한켠을 내어주고 응원하게 된다.
‘그래. 그 아픔은 의사가 수술을 하면 낫는 병이 아니기에, 내가 홀로 ‘내 스스로’와 싸워야 하는 과정이기에 참 막막했어
내가 느끼는 감정과 증상을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결국에는 그 누구도 내가 될수 없기에 이해할 수 없어서 많이 외로웠어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은 철저히 이방인이 되고, 때로는 가해자가 되기도 해서 무섭고 서러웠어‘
다들 자신만의 우물을 껴안고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삶.
하지만, 우리 이렇게 숨쉬고 있지 않은가.
짙은 어둠이 깔릴 지라도 기다리다 보면 해가 떠오르는 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생이고, 살아있는 것은 바로 그 가능성이니,
“살아만 있다면 뭐든 별거 아니겠지”
당신의 우물에 별사탕을 띄워줄게, 부디 그 아픔과 고통이 당신의 미래의 삶에 가볍게 곱씹을 수 있는 추억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