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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syeah Nov 28. 2023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린 사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

사람마다 같은 힘든 일을 겪어도, 받아 들이는 부분이 다르다. 누구에게나 특히 취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렸을 때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으면, 반복되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타인들에 비해 더 많은 스트레스와 감정의 동요가 있을 것이다.


나같은 경우에 약한 부분은 ’나에 대한 인정과 수용‘ 이었다. 나는 그 부분이 정말 약하다.

자존감이 낮은 영향인지 정신연령이 어린 탓인지,

나는 누군가의 인정이 너무나도 필요한 사람이다.

그게 없으면 물고기가 물밖에 나와 헐떡거리듯 어느 장소에서든 마치 죽을 것처럼 허덕거린다.


예전에 심리상담사가 나에게 왜 그렇게 인정과 이해에 집착을 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부모님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고, 남자친구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친구들도 모르고

난 도대체 누구에게 인정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냐고 꺼이꺼이 운 직후였다.

나도 모르겠다. 난 태어나서 한번도 내 욕구나 존재에 인정을 받은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주면 그 사람에게 미친듯 홀리고, 그 반대면 매몰차게 손절하기를 반복해왔던 것 같다.


대학교 전공 발표때, 그닥 잘하지 못한 내 발표를 듣고

‘I know you are the one who saved your group at PT session’이라고 피드백을 써준 교수님의 쪽지는 아직까지도 내 삶의 보물처럼 서랍장안에 보관하고 있고,

몇 년전 팀장님이 고과평가를 할때

‘대학원 수업과 업무를 병행해야하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본인 역량에 걸맞지 않은 주목받지 못하는 일들을 맡아 묵묵히 수행해주는 모습에 신뢰와 더불어 고마움을 전합니다’라고 써주신 피드백은 아직까지도 내 눈물버튼이다.


죽어도 인정을 해주지 않는 대상은 부모님이었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 문과1 등을 거의 놓친적이 없다.

하지만 그 성적은 우리 부모님에게 당연했다. 내가 받은 성적으로 칭찬과 인정을 받아본 기억이 나에겐 하나도 없다.

오히려 성적이 조금 떨어져서 1등을 놓치거나 할때, 혹은 작은 지방도시에서는 1등이지만, 전국석차는 본인들의 기대에 미쳐 못미쳤을때, 수학 점수가 잘 안나왔을때 핀잔을 들었던 기억뿐이다.

사실 그 핀잔도 그렇게 큰 핀잔이 아니었던게, 부모님이 공부를 잘하는 것 자체를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거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모님은 공부는 못하지만 성격이 좋은 두 동생들을 항상 더 칭찬하고, 항상 더 애틋해 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하면 당연했지만, 두 동생이 작은 무언가를 성취하면 그때는 집안의 경사날이었다.

너무 기특하고 대견한 두 아들들이 작은 무언가를 해낸 날엔 엄마아빠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날이었다.


몇년전 엄마가 검정고시 출신인 동생이 갑자기 서울에서 사립 대학교 직업과정 같은 것을 다니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내 동생을 너무 잘알기 때문에, 그 과정이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몇년이 흐른 지금, 그렇게 돈을 많이 부은 그 과정은 당연히 졸업도 못했을 뿐더러, 아무 쓸모도 없게 된지 오래다.

나는 그 당시에 엄마에게 ‘아니 무슨 대학교에 그렇게 쓸데없이 돈을 많이 써’ 라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 내가 동생에 대해 한마디만 하면 항상 똑같은 반응이라 새롭지도 않지만- 도끼눈을 뜨며

‘니는? 니는 대학교때 돈 그렇게 안썼어?’ 라고 나를 나무랐다.


그 때 울분이 터져서 엄마에게 울면서 소리 질렀던 기억이 난다.

나 열심히 공부해서 돈안들이고 혼자 공부해서 장학금 4년 받고 대학교 다닌거 기억 안나냐고..

내가 뭘 하면 항상 엄마한텐 그게 그렇게 보잘것없고 쓸모없어 보이냐고,

뭘 열심히 하고 뭘 열심히 이루면 이룰수록 나를 무시하고 끌어내리려고 안달이냐고.


엄마는 나에게 맨날 애가 고모를 닮아서 아빠를 닮아서 저지경이라고 말했다. 성격도 더럽고 사치스럽고 못되먹었다고. 그리고 정작 아빠는 내가 본인을 닮았는지 누이를 닮았는지조차 관심이 없었다.


내가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때면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가 된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어 안달난 어린애처럼 상처받고 투정부리고 마음을 닫고야 만다.


그런데 이 팀장님은 자꾸 내 그런부분을 건드렸다. 그래서인지 나의 하루하루를 점점 더 나락에 빠뜨렸다

뭘 해가도 다 그녀의 마음엔 안찼다. 그런데 동시에 옆라인 책임자A는 뭘 해가도 우쭈주 해주고 본인이 대신 해결해주었다.


내가 하는 행동은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고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하는 업무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해 매번 화를 냈다.


그녀는 통제적인 성격이었다. 뭐든 자기가 다 알아야 하고 모든 메일과 답변 등은 자신의 허락과 수정을 거쳐서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우러러봐주고, ‘우와 팀장님 정말 너무 똑똑하셔서 팀장님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라는 말을 들어야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내가 잘해서 인정받고 상대방이 고마워하는 것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만큼 그녀도 나를 대하기가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내 상급자고 직속 상사이자 내 고과평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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