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부터였나 10월부터였나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녀의 빈정거림과 쏘아붙이기가 극에 달했다고 생각해서 내가 더이상 받아줄 수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회사에서 울음을 터트렸고,
바보같이도 한번 시작된 울음은 팀장님이 그럴때마다 뿜어져 나와서 그녀를 당황시켰다.
몇번의 면담을 하면서 내가 힘든점과 고민을 수많이 말했지만, 항상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일을 줄여주면 되냐는 식’의 말도안되는 대답이었고
벽창호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포기하는 동시에 더이상 울음 대신 마음을 닫기로 결심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무적으로 가장 차갑게 그녀를 대했고, 회사에서는 내 할일만 하고 뒤도 안돌아서며 퇴근하며, 그녀가 어떤 말을 해도 대꾸해주지 않았다.
점점 눈치가 보였던지, 그녀의 지랄은 내 라인 대리로 향했다.
지랄총량의 법칙을 정확히 지키는 듯 보이는 그녀는 나에게 못 쏟아낸 지랄을 퍼부을 다른 사람을 찾은 듯 했다.
그녀가 대리를 불러서 나에게 한 것처럼-혹은 나에게 보다 더 심하게-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으며 난리를 치는 것을 들을때면 숨이 막혀서 자리를 피하곤 했다.
솔직히 대리는 일을 잘하진 못했다.
너무 바쁜 와중에 대리가 해줘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서 나도 덩달아 힘들었다.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팀장은 또 나에게 화살을 돌려서 난리를 피우고..
내가 그 대리가 해야할 일을 하고 있으면, 팀장은 또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보고가 올라오지 않아 짜증내길 반복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다. 스트레스가 극에달했고 나도 역시 대리에게 화를 내는 일이 하루 이틀 늘어갔다.
짜증의 되물림.
대리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팀장님과 나의 짜증에 주눅이 들었는지 점점 더 성과가 낮아져갔다.
그는 전형적으로 ‘우쭈쭈’ 해줘야 성과를 잘 내는 타입이었다.
평소에는 잘 하던 일들도 대여섯개씩 틀려서 처음부터 그 대리가 해야한 일을든 처음부터 다시 봐야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전혀 다른분야를 전공한, 회사에 다닌지 1년반이 채 되지 않는 신입이었다.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수도..
나의 짜증이 하루이틀 늘어가자, 대리님이 나에게 몇번 메일을 남겼다. 너무 죄송하다고 본인이 이기적이었으며, 더 열심히 해보겠다고..
그의 진심어린 편지를 보아도 나는 내 마음에 누군가를 용서하고 들일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의 태도 또한 변하지 않았고, 그를 거의 없는사람 취급하며 회사를 다녔으며 회사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이 반복되었다.
12월의 어느날, 그 대리가 결혼을 앞두고 나에게 청첩장 겸 점심을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불편해진대로 불편해진 사이에 단둘이 점심을 먹자는 제안에 조금 놀랐지만, 못다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도 해서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먹으면서 그간 그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0월부터 그때까지 팀장이 그를 괴롭힌 이야기, 그리고 우리 라인에 대해서 회사내에서 도는 안좋은 소문들..
심지어 회사 퇴근후에는 결혼 준비 때매 이것 저것 눈코뜰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까지, 본인이 맡은 일은 -비록 그게 크지 않았을지라도- 최대한 노력해서
마무리지으려고 노력하고자 했던 본인만의 책임감.
특히 스트레스로 인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살이 5키로나 빠진 이야기, 밤에 퇴근하면 불도 안키고 멍하니 방에 앉아서 아무것도 못하며 괴로워했던 이야기, 그 역시도 우울증에 걸려서 힘겹게 몇달을 보냈었다고 했다.
그 대리의 이야기를 들으니 진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한편으로, 나 또한 그 아이에게 가해자가 된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죄책감이 함께 느껴졌다.
사실 나도 이상한 사람을 만난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내가 4년차 대리일때, 그때도 정말 이상한 팀장을 만나서 약 7~8개월간 괴로웠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내가 대리여서, 책임자에 비해 훨씬 덜했지만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때 함께 있었던 책임자 덕분이었다.
인신모욕같은 말들을 한바탕 듣고와서 사무실 밖에서 멍하니 앉아있을 때면 그 책임자가 항상 옆에 나와서 본인 이야기를 해주며, 같이 팀장욕도 하며 나를 달래주곤 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업무능력에 대해서 항상 괜찮다며, 뛰어나다며 칭찬해주곤 했다. 본인은 팀장에게 그렇게 욕을 듣고 있었던 상태였을때도 말이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힘들다는 핑계로 직장내 괴롭힘을 방관한건 아닌지,
나와 함께 일하는, 어쩌면 나를 믿고 있는 대리에게 오히려 내가 더 큰 상처를 준 것이 아닌지 마음이 무너지듯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본인이 옆에서 팀장님이 얼마나 심했는지 다 지켜봤다고, 차장님 얼마나 힘드셨을지 다 안다고
스스로도 너무 힘들어서 미칠것 같은 와중에도 가끔 옆을 보면 자기보다 더 힘든 표정의 내가 있었다며,
이제 다 끝났다고 함께 고생했고 편히 쉬고 오시라고 말해주었다.
항상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또 사람으로 치유가 가능하기에 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내 헤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메꿔주는 너가 항상 그자리에 있었구나.
한번 더 다짐했다. 누군가가 힘들때 꼭 떠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난 니편이야 라고, 눈을 들여다보면서 말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