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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Nov 07. 2024

삼각 빛

빛을 잡으려는 아기의 자그마한 손을 잊지 않을 것이다


올해 11월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주말엔 22도까지 올라가 따뜻하더니 오늘은 4도까지 내려가고, 며칠 뒤면 0도까지 내려간다. 며칠 사이에 기온은 오르락내리락한다. 곧 코끝이 시리고, 귀가 얼얼해지는 겨울이 올 것이다. 겨울이 오면 4도도 아주 따듯하다고 느껴지는 때가 오겠지. 역시나 적응할 때가 가장 쉽지 않은 것 같다. 수림이와 함께 지내면서 더 자주 느낀다. 요 며칠 수림이는 밤새 자다 깨고 울고 다시 잠들고를 반복했다. 아마도 이가 아파서인데, 그때마다 할 수 있는 건 달래주고, 안아주는 것일 뿐. 결국 수림이가 고스란히 견뎌내야 하는 아픔이다. 어젯밤은 다행히 한 번만 울고 그쳤다. 수림이도 이가 나는 아픔에 적응한 것일까.      


나도 아주 아주 힘든 고비는 넘긴 것 같다. 엄마가 되어 나의 모든 시간과 체력과 에너지와 마음을 한 아기에게 쏟아부으면서 무척 고달프기도 했는데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된 것 같다. 밤새 잠을 못 잤으면, 조금이라도 더 잔 사람이 아침에 수림이를 봐주고, 1, 2시간 잠을 청한다. 그럼에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커피를 마시고, 힘내자는 말을 스스로 하며 몸을 움직인다. 그럼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아도 어떻게든 아기 밥을 챙기고,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고, 밥을 또 먹이고, 낮잠을 재우고, 종종 실내 놀이터에 갔다 오고, 이유식을 만들고, 목욕을 시켜주고, 밤잠을 재우고, 설거지와 빨래와 정리정돈과 청소를 하며 하루를 버틴다. 내 몸과 마음이 이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조금 벅차지만 해낼 수 있다고 씩씩하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수림이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수림이와 구석구석 공원에 가고, 카페에 가고, 의암호를 보여주고, 몇몇 축제 행사에 다녀왔다. 동시에 수림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소개해주기도 했는데, 다행히 크게 낯을 가리지 않아 곤란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수림이는 밖을 나오는 게 꼭 좋지만은 않을 텐데, 새로운 환경에서 안도하는 것을 스스로 찾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사람들, 나뭇잎의 알록달록한 색, 카페의 냅킨과 종이컵 등.      


아기가 있는 삶은 평생 꿈꾸지 않았다. 그건 생에 관한 나의 비스듬한 시선 때문이었다. 생이 과연 빛나는 것인지, 누릴만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살아간다는 건 여러 아픔과 눈물을 경험해야 하고, 때로는 외면하기도 하는데 과연 그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그뿐 아니라 어지러운 세상사를 가만 바라보면 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삶이 빛이 아닌 그늘로 느껴졌었고, 그림자 속에서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출처 없는 원망을 하기도 했다. 불행과 두려움과 슬픔은 어찌나 쉽게 상상이 가고, 예측되는지. 수림이를 만나고 예측한 그대로의 힘듦도 있지만,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 기쁨과 행복도 있음에 놀랐다. 나는 새로운 생명에게 빛과 행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삶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살아 있다는 자체가 부서지는 햇살 같은 것. 각자가 하루를 사느라 애쓰면서도 서로를 바라보면 까르르 웃음이 나는 것. 가만 안으면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고 그것만으로 다른 힘듦은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      


아직 다가오지 않은 수많은 내일을 절로 기대한다. 첫눈이 내리는 날 하얀 눈을 만져보기.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감탄하기. 함께 핫초코 먹기. 아기가 배 속에 있었을 때 갔던 여행지를 함께 가기. 그곳에서 본 3000년 된 나무도 같이 보기. 아장아장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셀 수도 없이 많은 순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기는 크느라 아프고, 울고, 떼를 쓰고, 물건을 던질 것이다. 나는 옆에서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자책도 하고, 같이 아프고, 몸살도 나고, 엉엉 울고 싶을 때도 있겠지. 오르락내리락하는 날씨처럼.      


어느 날 아기는 혼자 낮잠에서 깨서 침대에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매트리스에 떨어진 빛을 손으로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암막 커튼 사이로 들어온 자그마한 빛. 주변이 어두컴컴한데도 아주 작은 삼각형의 빛에 빠져 있었다. 빛을 잡으려는 아기의 자그마한 손을 잊지 않을 것이다. 변화무쌍한 삶에서 무엇을 보고, 결정하고, 마음에 놓을지는 언제나 나에게 있음을 잊지 않고 싶다. 삶이란 결국 반짝 빛나고 어둠에 묻히지만, 생이란 그렇기에 아름다운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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