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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Feb 24. 2018

시와 아픔과 삶

180222 pm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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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시간까지 손님이 안 왔으면 좋겠다. 이 글의 끝맺음을 잘 맺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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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쯤 내게 영어를 가르쳐주었던 그녀가 오늘 오후에 책방에 왔다. 이번에는 딸과 남편도 함께 왔다.(딸의 이름도, 그녀의 남편 이름도 아는데 그녀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책방의 책들을 살펴보다가 시를 참 좋아한다고 말한다. 시가 좋아서 하루에 한 번, 늦어도 이틀에 한 번은 본인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에 시를 올린다고. 회원은 70여 명이고, 매번 공감을 눌러주는 이들은 단 두 명뿐인데도.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봐주지는 않지만, 자신이 올린 시를 보고 사람들이 잠시나마 삶의 괴로움을 잊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올린다고 했다.
그녀는 자주 아파서, 집중을 오래 하지 못해 긴 글 대신 짧은 시를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삶의 노고와 아픔과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는다고 한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사는 거 아니냐면서, 모두들 아프고, 힘들고, 외로운 거 아니냐면서. 그럼에도 살아야 하고, 그럼에도 사는 거 아니냐면서.
나는 마냥 고개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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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음이 기뻤다가 나빴다가 했다. 모든 책임이 내게 있다 생각이 되고, 가장 가까운 이에게 책망을 들어 괴로웠다. 나만 아는 눈물을 뚝 뚝 뚝 흘렸다. 손님이 없어 다행이었다. 얼른 집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안고 펑펑 울고 싶었다. 그러나 마감시간까지 약속한 시간은 남았으니 뚝 뚝 눈물 흘린 흔적을 얼른 지우고, 심호흡을 하고, 책방에 있는 화분들에 물을 주었다. 물을 주면서 얼마 전 본 책 ‘랩 걸’이 생각났다. 식물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한다. 저자이자 과학자인 호프 자런의 인생도 스쳐 지나갔다. 누군들 쉬운 인생이 어디 있을까. 모두들 각자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있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나니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이 추운 겨울도, 건조한 환경도 모두 버텨낸 식물들이다. 아무도 없는 책방에서 페퍼민트 티 한 잔과 오늘 막 도착한 보고 싶었던 책을 펼쳐 읽으니 기분이 훨씬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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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대로 책은 괴로움을 잠깐이나마 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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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그녀 생각이 나 책을 덮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예전부터 몸이 자주 아팠는데, 그래서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이렇게 카페에 오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몸이 자주 아프기도 했고, 엄마이기도 하고, 근래에 들어 운전도 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여행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카페에 가는 것인데도 한 달에 한 번 꼴이라니. 괜스레 마음이 많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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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나는 아직 중학생이었고, 그녀를 아마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만 보았을 것이다. 그때에도 지금도 여전히 그녀는 건강이 좋지 않다. 그때에도 지금도 여전히 나도 마음의 상처를 앓고 있다. 내색하지 않을 뿐.
우리는 여전하기만 한 걸까. 그리하여 다행인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 시와 책에서 아픔을 피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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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살만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한 번씩 마음이 지독하게 아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몇 개 없으니 일단 눈가까지 가득 올라온 눈물부터 털어낼 것이다. 지칠 때까지 울다가 긴 긴 잠을 자고, 일어나서 또다시 일상을 마주하고, 책 속으로 도망도 가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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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몸이 아픈 그녀와 자주 마음이 아픈 내가 만나 밤새도록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과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녀가 보호소에서 데려온 개와 고양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그 마음에 대해, 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것들과 혼자 웅크리고 그저 지나가길 기다렸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주 긴 긴 밤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아픈 사람이 둘이나 있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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