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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Jul 18. 2020

다툼


어제 저녁 마감하며 책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선생님!”

돌아보니, 린이였다. 린은 책방에서 진행하는 캘리 수업을 듣는 아이 중 한 명이다. 지난 수업 때 적극적으로 책도 읽고, 글씨도 열심히 썼던 기억이 났다.

“저번 수업 때 만든 거 놓고 가서 가져 가려구요. 이제 스승의 날이잖아요. 만든 거 선생님께 드리려고요.” 

나는 린에게 책방에 들어오라고 하고, 아이스 초코를 만들어주었다. 

수업시간에는 별 이야기 없더니, 둘만 있으니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냈다. 어디 사는지, 스승의 날에 찾아뵙는 선생님이 있는지, 어떻게 글씨를 잘 쓰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를 물었다. 가장 재밌는 질문은 이거였다. 

“선생님, 남자 선생님이랑 사귀는 사이죠?” 

웃으며 그렇다고 하자, 

“그럴 줄 알았어요! 저는 지난번에 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거든요. 남자 선생님이 엄청 잘해주실 것 같아요!”라고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나는 잘해준다고, 선생님이 요 몇 주 아팠는데도 배려도 많이 해주고, 지금까지 만나는 동안 참 잘해준다고 말했다. 린은 조금 생각해보더니, 

“그럼 싸우지는 않아요? 가장 최근에 싸운 적은 언제였어요?” 물었다. 

린의 재잘거리는 질문에 귀엽다고 생각하다가 이 질문에 나는 멋쩍어하며 말했다. 

“사실 어제도 싸웠는데, 그렇지만 싸웠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린이 살아온 햇수와 비슷하게 짝꿍과 나는 만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린 종종 싸운다. 다툴 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또 상처받는다. 그렇지만 그건 나와 너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걸 안다. 상처를 주고 싶어서 주는 게 아니라는 걸, 오히려 다툴 때조차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 또한 안다. 내가 이해받지 못하는 사실이,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싫고 힘들지, 서로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싸운다고 해봤자 서운한 마음을 주고받는 것뿐, 큰소리가 오가거나 모욕의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다툼은 늘 나는 이러저러해서 서운했어, 하면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이러이러해서 서운했다고 이야기한다. 시간이 지나 또다시 비슷한 이유로 다투기는 하지만, 다음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할게, 라고 꼭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만나고 다투면서 얼마나 많이 눈물을 흘리고, 좌절했는지. 내가 네가 아니라는 점에, 매번 비슷한 이유로 다투는 것에,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에. 그러나 좌절의 순간은 우리가 함께일 때와 비교하면 아주 작은 시간이다. 매일 아침 알람은 울리지만, 그 소리는 24시간 중 겨우 1분일 뿐.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고, 서로가 있음에 기뻐하고, 편안해하고, 감사해한다. 겨우 1분. 우리가 함께 쌓아온 지난 많은 날을 떠올리면, 작은 시간이다. 그리고 그 작은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툼의 시간 동안 우리는 이전보다 덜 오해하고, 덜 착각하고, 서로의 진심을 알 수 있다. 연애 초기 때 다툼이 싫어서 피했던 적이 있다. 내 마음을 숨기고, 감정을 숨기며 만났지만 결국에는 느닷없이 내 마음이 터져 나왔다. 말하지 않은 채로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사랑은 뭘까. 내가 이런 막장 드라마를 찾아볼 줄이야 정말 몰랐지만 <부부의 세계>를 챙겨 보고 있다. 욕을 하면서, 화를 내면서 한 부부가 멀어지는 이야기를, 믿음이 깨지고, 기대에 부풀었다가, 사람이, 관계가, 가정이 부서지는 이야기를 보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처참히 무너지고, 또 살기도 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정말 부부란 뭘까, 사랑이란 뭘까 생각한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순간들이 줄어들 때 관계는 서서히 멀어진다. 나는 겨우 이 정도만 안다. 그리고 사랑이란 타인의 상처나 아픔까지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종종 이적의 ‘다툼’이라는 노래를 듣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꾸 잊지 않으려고 한다. 당장 속상한 마음에 가려지는 이 사람이 내게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사람인지를. 그리고 깨닫는다. 나도, 이 사람도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고. 모두 나와 같은 모양의 사랑을 하지는 않겠지만, 린도 나중에 누군가를 만날 때 알았으면 좋겠다. 가끔 다투어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고. 싸우지 않는 게 능사만은 아니라고. 다툴 땐 내 감정을 존중하되,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사랑이란 누군가의 아픔까지도 껴안는 거라고. 그리고 그런 것들을 감당해도 좋을 만큼 그 사람이 좋은 거라고.         

  




얼마나 많은 다툼 뒤에

우린 비로소 뉘우칠 수 있을까

얼마나 거친 말들 속에

우린 상처를 숨겨야 하는 걸까     

다친 마음에 딱지가 앉아

어루만져도 아무 느낌도 들지 않을 때

둘이 서로를 마치 영원히

깨지지 않을 돌멩이처럼 대하려할 때     

나는 조용히 속으로 묻는다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우린 그렇게 만났던 것 같은데

얼마나 값진 인연인가

우린 기꺼이 나눴던 것 같은데     

다친 마음에 딱지가 앉아

어루만져도 아무 느낌도 들지 않을 때

둘이 서로를 마치 영원히

깨지지 않을 돌멩이처럼 대하려할 때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해

마음 깊은 곳 덮어두었던 말을 전할게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못이기는 척 나를 돌아볼 네게 외칠게     

팔을 벌리며 다가올 너에게

품에 안기며 울먹일 너에게


이적,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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