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도지다> 글 이후로 한 달 넘게 브런치를 쉬었습니다. 브런치 글을 쓰며 또 작업에 관한 글들을 정리하다보니 손목에 무리가 왔습니다. 손목, 손가락이 아프면 어깨, 목, 허리, 다리로 이어집니다.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같은 부위에 무리가 되는데, 앉아서 집중해서 글을 쓰는 일이 그림 그리는 것보다 더 힘들일인가봅니다. 저에게는요. 아파서 글 쓰는 걸 중단하고는 조금 쉬다가 결국은 또 그림을 그리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쉬지 못하는게 병입니다.
5월은 어찌 지나간 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 카톡방에 맑고 환한 5월이라고 쓰려다 보니 벌써 6월임을 깨닫고 풋 웃음이 삐져나왔습니다. 그리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 고민 중이었는데, sns에서 우연히 한 문장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꿈꾸는 예술가에게는 좋은 작품을 기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손이 쉬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하나씩 드로잉이라도 해야지 했는데, 무얼 그릴까부터 막막하기도 했고, 그러니 계속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저 문장을 만났습니다. 저 말이 거짓 예언하러 가는 발람 선지자 길을 막아선 당나귀의 호통 같았습니다. 이후 매일 하나씩 그려나갔습니다. 손이 놀지 않게 하였습니다. 꽃도 그리고, 명화도 따라 그려보고, 드로잉도 해보고. 매일 쉬지 않고 해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요즘 작가들은 그림만 그릴 수가 없습니다. 발달하는 매체를 이용해 홍보도 해야 하고, 작업에 대한 기록도 남겨야 합니다. 남에게 부탁하지 생각하며 배우기를 미루다가 결국 4월부터 notion, 챗GPT, Ai, 포토샵, 영상 편집 등을 배웠습니다. 맛보기 수준인데, 따라가기 만만치 않았습니다. 수업 중 강사의 지시대로 따라갈만하니 수업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세계에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대로 정신없는데, 미국서 공부하고 있는 딸이 다니러 왔습니다. 타지에서 혼자 밥 해 먹으며 공부하려니 조금 지쳤던가 봅니다. 장녀라고 제가 딸로 대하기보다는 남편 대신, 엄마 대신으로 의지했던 딸입니다. 자라면서 그게 딸에게 독이 되었던 거 같아요. 제가 조금 엄마로서 여유가 생겼는지, 이제는 딸의 그 마음을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이 있는 동안 완벽하게 딸 위주로 최선을 다해 섬겼습니다. 먹고 싶은 것 정성껏 만들어 먹였습니다. 연년생 세 자녀를 키우다 보니 입 벌리고 서로 달라는 제비 새끼들처럼 각자에게 흡족하게 사랑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게, 한 자녀를 흡족하게 하려면 일정 기간에는 그 자녀에게 올인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막내에게 올인하고, 둘째에게 올인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큰 아이에게 올인하였습니다. 그 사이 저도 크고, 큰 아이도 성숙해져서 2주의 짧은 노력으로 서로에게 쌓인 앙금을 털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큰 아이를 다시 돌려보내고 저는 줄줄이 이어지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단체전과 아트페어, 내년 초의 작은 개인전까지. 지금은 3개월 동안 함께 책을 읽으며 작가 연구, 작업 연구를 해온 5명의 작가들과 함께 그룹전을 하고 있습니다. 의왕시 redboots gallery에서 6월 15일 토요일까지 전시합니다. 전혀 모르던 작가들인데, 도예 작업하는 김남희 작가, 우연을 통해 작업하는 김정 작가, 이끼를 대지의 딱지로 생각하며 작업하는 이현정 작가, 바다가 주는 위로를 그리는 이은이 작가, 그리고 일상에서 우주로, 우주에서 일상으로 오가며 존재들의 삶을 사색하는 저(moonuzu) 이렇게 다섯 사람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전시장에 디스플레이하면서 작가들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함께 한 시간 때문인지 겹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조화로운 에너지에 맘이 기뻤습니다.
이렇게 보내다 보니 어느새 6월도 1/3이 지나버렸습니다. 그 사이도 꾸준히 제 글을 찾아 읽어주신 작가님들 감사드립니다. ㅠㅠ 빨리 글을 올려야지 하면서도 멈추다 다시 하려니 선뜻 시작하기 어려웠습니다. 글 쓰는 일과 그림 그리는 일 전환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좋겠는데. ㅠ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