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주간 일기를 검색해 보았다. 분명 비구름 예보가 없었는데 오늘은 비가 내린다. 더위를 한숨 식혀준다. 어제는 하지. 낮이 가장 긴 날인데, 하지가 무슨 복날이라도 되는 양 태양은 작열했고, 자동차의 에어컨에라도 의지하려는 듯, 도로는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 대신 차산차해였다.
이틀 전, 이 폭염에 어찌 지내시는지 시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집안에서 더위 피하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이 더 들었다. 지난주 먹었던 갈비도 맛있었고, 수박도 여간 달지 않았다. 갈비를 재고, 수박을 사서 남편과 함께 이른 아침 홍성 시댁으로 출발했다. 해가 뜨겁기 전에 출발하려 했는데, 다들 같은 마음이었는지 고속도로에 차가 한가득이다. 그래도 모처럼 며느리 노릇하겠구나 들뜬 마음으로 달렸다.
집에 도착하니 화장실이고, 주방이고 손을 대기가 무서웠다. 어머니 몸배바지로 갈아입고 앞치마 두르고 고무장갑 키고 청소를 시작했다. 음식 해 먹고 씻지 않고 방치해 둔 냄비며 프라이팬, 반찬통이 계속 나왔다. 버리고 씻고 버리고 씻고 계속하다 보니 조금씩 정리가 되었다. 남편은 바닥이며, 부엌장 손잡이 끈적거리는 것들 닦아내었다. 가스레인지며 싱크대 묵은 때도 깨끗이 닦아내었더니 빛이 나기 시작한다.
다음은 화장실. 역시나 손을 댈 수가 없다. 다 들어내고 구석구석 닦아내고 물건들도 하나씩 닦아내고 청소했다. 여기저기 널려 있던 빨래거리도 모두 수거해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집이 지저분하게 해 놓고 사신다고 뭐라 할 수가 없다. 그저 두 분 식사해드시고, 건강히 지내주시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니.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배가 고프다. 밥을 안치고, 밭에서 딴 고추랑, 감자, 양파를 넣고 짭조름하고 걸쭉한 된장찌개를 끓였다. 친정 엄마가 여름엔 이런 된장을 자주 끓여주셨다. 여기에 열무김치랑 밥 비벼 먹던 기억이 나서였다. 그리고 갈비를 구워 아버님 어머님 남편이랑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그리고 집에서 미리 시원하게 준비해 간 수박을 썰어 드렸다. 올여름 처음 수박을 드셨는지 아주 맛나게 드셨다. 설거지하고 나니 온몸이 노곤하였다. 아버님 비운 사이 거실에 누워 낮잠을 잤다. 시부모님 앞에서 '저 좀 누울게요.'하고 누워있으면 좋아하신다. 중간에 아버님이 들어오셨는데, 모른 척하고 누워있었더니 조용히 다시 나가셨다.
퇴근 시간 막히지 않게 일찍 출발했는데, 무슨 피난길인양 사방에서 들어오는 차량들이 더해져,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달릴 구간이 하나도 없었다. 더위에 얼굴은 익을 대로 익었는데, 마음은 수박처럼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