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가 나오고 독자 후기의 대부분은 사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일단 재미있다는 것을 포함하여(하하핫), 책에 실린 서평 중 이러이러한 책은 읽기를 잘했고, 반면에 이건 거르길 잘했고, 이 책에 대한 의견은 본인 생각과 비슷하고, 이건 좀 의외이고, 기타 등등. 사이다 같았다거나, 반대로 너무 비판을 해서 피곤하다거나. 뭐 뻔하지 않은가. 쓴 내용이 있으므로.
그런데 조금 의외의 반응도 있었으니. 다름 아닌 책에서 다루는 28권 중 하나인 <라틴어 수업>에 대한 것이었다. 책을 읽고서 <라틴어 수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는 후기를 본 뒤 나는 그만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심지어 우리 아빠는 내 책을 다 읽고선 다음에 집에 올 때 <팩트풀니스>와 <라틴어 수업>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하기까지 하셨다.
그러한 반응을 볼 때마다 솔직히 말하면 매우 의아했다. 아니, <팩트풀니스>야 그렇다 치지만, <라틴어 수업>을.... 도대체 왜?? 내가 <라틴어 수업>을 그 정도로 강력추천했던가? 사실 그리 재미있게 읽진 않았는데(저자분께 죄송) 하면서. 그러면서 오랜만에 찬찬히 해당 챕터를 다시 읽어보았는데, 어떤 부분에서 독자들이 그 글을 ‘강력추천’이라거나 혹은 매우 호의적인 평가로 받아들였는지 알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음, 그러니까 <라틴어 수업>은, 아주 정말 솔직히 말해 나의 취향에 완벽히 부합하는 책은 아니었으나, 여러 차원에서 ‘공리적’ 목적에 부합한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그렇기 때문에 비록 재미있지는 않지만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으로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방향으로 서평을 쓰게 되었던 것 같다. 실제로 책이나 영화 등의 컨텐츠에서 ‘재미’와 ‘유익함’이 꼭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라틴어 수업>에 대해 내가 쓴 글을 두고 어떤 이들은 이러한 반응을 하기도 하는 듯했다. “그 책 사실, 학부생이 수업시간에 듣는 뻔한 소리 모음집이라 전 완전 별로였는데.... 그 책을 긍정적으로 평했다고요? 흠...” “라틴어 수업 전 몇 페이지 보다가 덮어버렸어요.” 기타 등등.
사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라틴어 수업>은 학부생들 대상의 강의를 정리하여 묶어낸 것이고, 주제 자체가 우리가 살면서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조근조근 달래가며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인데, 짜릿짜릿 자극적인 재미가 있거나 엄청난 통찰이 담겨 있으면 그게 더 대단한 것일 테다.
다만 내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이유도 사실은 그 때문이었다. 비록 학부생들 대상의, 다소 ‘뻔할’ 수 있는 말임에도, 나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그전까지 없었기 때문에. 학부생뿐만이 아니더라도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딱히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무척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내가 이러저러한 책을 읽으며 매우 오랜 세월에 걸쳐 터득한 ‘진리’를 다른 이들은 해당 책을 통해 더욱 빠르게 체계적으로 접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에.
실제로 나는 대학생일 때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일단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간다는 생각은 있었고, 그래서 어떻게 대학에 가긴 갔지만, 그 뒤로는 완전히 암흑이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 없었기에 ‘대학 입학’이라는 목적이 달성된 이후에는 그저 매일 같이 술을 마시거나 연애만 하면서 학부 3년을 보냈다.
그러다 이대로는 취직도 못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마지막 1년간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그렇기 때문에 취직한 이후에는 다시금 대학에 입학한 뒤와 마찬가지로 역시나 흥청망청 방탕한 시절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은 늘 그렇듯이 허무함이었고.
내가 그랬던 이유는 모두 학창 시절, 그리고 대학 시절 나에게 있어 ‘공부’란 ‘입시’와 ‘취직’이라는 단기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왜’,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공부’라는 단어는 사실 ‘독서’라는 말로도 대체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생각’이라는 말로도.
유명한 격언이던가,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정녕 진실이다. 우리는 늘 무엇이든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생각을 해야만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고, 자신의 중심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 생각을 하고 살아야만 위기 상황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사랑하는 이가 떠났을 때 너무 심하게 망가지지 않을 수 있고, 거짓된 말에 현혹되지 않고 제대로 된 시각을 견지할 수 있다.
다만 생각이란 매우 고단한 작업이고, 제 아무리 부지런하고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라도 따로 시간을 내어 진지하게 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활동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그나마 가장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다름 아닌 공부와 독서이다. 이는 우리가 끊임없이 공부와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히 어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름 아닌 스스로를 위해서.
김영민의 <공부란 무엇인가> 역시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이 ‘라틴어’라는 매개를 이용해서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에둘러 설명하는 방식이었다면, 김영민 교수의 책은 그 제목과 같이 ‘공부’란 무엇인지 보다 직접적으로 접근한다.
제목과 같이 ‘공부’란 무엇인지,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등의 내용을 다루는데, 역시나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운 동시에 <라틴어 수업>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좀 더 어린 시절에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혹은 이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들었다.
요즘처럼 ‘스펙’이 전부인, 하다못해 자존감마저도 스펙의 일종으로 간주되는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이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와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게다가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 페이지에서 빵빵 터지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아주 ‘엣지있고’ ‘샤프하고’ ‘재미있게’ 하는 책이라고 해야겠다.
다만 한 가지 아이러니한 부분은 이 책을 기꺼이 읽을만한 사람들은 아마도 이미 공부(혹은 독서, 혹은 생각)를 열심히 알아서 잘하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고, 이 책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은 아무리 긴 글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써본들 책을 읽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하지만 늘 그렇듯이, 한 사람이라도 더 공부하는(읽는, 쓰는, 또는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일 것이므로, 오늘도 열심히 읽고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