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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Dec 31. 2019

쓰는 이들의 모임, 소설에 관하여

노들섬 표류기 (4)

노들 서가에서 함께 일상 작가로 활동하는 글지마 작가님의 '하루 뚝딱 소설 쓰기' 클래스에 참여했다. 작가님은 '유럽 단편집'의 저자로 노들 서가에 흥미로운 소설을 게시한다. 작가님의 비법을 엿보기 위해 노들섬을 벗어나 이화여대 골목에 위치한 책방 생활의 지혜를 찾아갔다. 책방에는 에세이보다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모였다. 에세이를 주로 쓰는 나는 시작부터 난감했다. "에세이와 달리 소설은 배워야 쓸 수 있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작가님은 "에세이와 소설의 핵심은 다르지 않아 배우지 않아도 쓸 수 있다."라고 답변하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소설 쓰기의 맥락은 에세이와 같다고 한다. 에세이를 쓸 때 전개 방식을 미리 정하듯 시점, 장소, 인물 등 요소를 먼저 정해야 이야기를 전개하기 쉽다. 작가님의 소설 쓰기 방식을 따라 40분간 짧은 소설 쓰기를 진행했다. 나는 아침마다 노들 서가를 가기 위해 걷는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를 떠올렸다.

출처 : 땅코야 놀다 가자

‘밥은 먹었어?’ ‘잘 지내지?’ ‘바람 참 좋다’ ‘오늘 하루 어땠어?’ ‘별 일 없었어?’ ‘많이 힘들었구나’


한강 위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구절을 하나하나 읽으며 걷는데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이 추운 겨울 슬리퍼를 신고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병신' 나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죽을 용기가 없으면 내가 대신 죽여줄게.” 남자를 강 안으로 억지로 떠밀었다. ‘풍덩’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남자가 떨어졌다. 강은 금방 고요해졌다. 세상에 없던 것처럼 사람 하나가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남자가 떨어진 강물을 한참 지켜봤다. 뒤에서 누군가 내 몸통을 움켜줬다. “죽을 용기가 없으면 내가 죽여줄게.”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내 몸이 붕 떴다. ‘어라?’ 나는 다리 건너 세상 밖, 강물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첨벙’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 내 목을 조르고 있다. 내가 죽인 그 남자다. 남자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주먹으로 남자의 머리를 힘껏 쳤다. 그는 기절했다. 쓰러진 남자 뒤로 문이 하나 보였다. ‘한강 자살자들의 모임’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출처:힐링 명상 자연의 길

들어가니 세 명이 의자에 앉아 있다. 전부 하얀 글자가 적힌 까만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글자는 그들의 나이, 이름, 사망 원인을 말하고 있었다. [43세, 김복자, 생활고] [17세, 박예린, 따돌림] [24세, 고성현, 우울증] '다들 시답잖은 일로 죽었군.' 하늘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한 여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박예린씨다. “안녕하세요. 이곳은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사람들을 위한 곳이에요. 여기 안내자는 따로 없답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안내해주는 곳이래요. 일단 당신을 죽음으로 몰았던 이유가 어떤 건지 알아야 해요. 손에 들린 반팔을 입어주세요" 내려다보니 왼손에 옷이 하나 들려 있다. 티셔츠를 펼쳤다. 지켜보던 그녀는 글자를 확인하더니 뒷걸음쳤다.


[31세, 최다미, 호기심] 그렇다, 사람들은 나를 사이코 패스라고 부른다.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호기심으로 자살을 하다니. 이해가 잘 안 되네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시나 봐요? 우리는 결핍된 부분을 보완해 다시 환생합니다. 당신은 감정을 찾아 환생하고 싶나요?”


때 마침 내가 기절시킨 남자가 들어와 두리번거렸다. “네. 지금 당장요.”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해보는 게 낫다더니. 소설가는 아니지만, 아주 짧은 단편을 썼지만. 소설은 어떻게 전개되고 결말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 듯했다. 


막장 드라마가 탄생하는 이유를 알았다. 소설은 말 그대로 마음대로다. 주인공을 살인자로 만들고도, 주인공이 자살자의 모임에 들어간 후에도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은 수천, 수만 가지다. 등장인물도 마찬가지다. 누구든 나타나길 불가능한 존재는 없다. 과거 연인, 숨겨진 아들 혹은 뜬금없이 해파리가 나타날 수 있다. 설정할 수 있는 인물의 특성도 다양하다. 말문을 튼 박예린씨가 언어 장애인으로 말을 더듬을 수 있고, 따돌림을 당해 죽은 그녀는 복수의 화신으로 탄생시킬 수도 있다.


스토리를 전개하기는 쉽지만, 마무리 짓기는 노력이 배로 드는 작업이다. 잘 나가다가 이상한 결말로 끝맺는 드라마가 많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성대모사와 함께 뜨거운 인기를 얻은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결말 직전까지 성공작'이라는 평을 받는다. 딸에게 그토록 억척스럽던 예서 엄마 한서진이 자백을 하고, 우주가 석방된 후 졸업 직전에 자퇴하는 결말은 작가들의 최선이었다. 미리 소설을 쓰며 여러 매개체를 넣는다. 그 '떡밥'을 스토리에 녹여 풀어나가는 것도 소설가의 일이다.


작가님 말대로 소설 쓰기는 에세이 쓰기와 같은 맥락이었다. 탄탄한 구성으로 탄탄한 글을 만드는 것. 재료가 다를 뿐 그게 전부였다. 소설과 에세이. 장르 구분 없이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가로 시작해 에세이 '여행의 이유'를 출간했다. 글지마 작가님은 '미국 로망 깨기', '불친절한 여행 에세이' 두 권의 에세이를 낸 후, 소설 '유럽 단편집'을 엮었다. 일상과 일상을 넘어선 세계. 두 세계를 모두 가진 작가가 되도록 이끌어 준 글지마 작가님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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