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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Dec 15. 2019

장애라는 이유로 우리가 참아온 세 가지

"실례합니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

우리는 장애라는 이유로 피해받으며 참는다. 소란스러움으로 버스에서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다리를 보는 시선에 수치심이 들 때도 ‘장애인이니까’ 용인한다. 무조건적인 용인은 슬픈 차별이다. 용인은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 짜증을 참고 수치심을 참다 보면 장애인은 견디기 버거운 존재가 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우리. 어떻게 해야 서로 찡그리지 않을까?

짜증


발달 장애인이 마트에 누워 소리를 지르거나, 주변을 혼란스럽게 돌아다니는 경험이 있는가. 일단 피해되지 않는 선에서 그들의 말,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는 없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피해를 받는다면 말하는 것이 좋다.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 이해를 위해 두 가지 상황을 설정했다.


상황 1. 간단한 이유는 들어줄 .

서울의 한 카페. 갑자기 소란이 벌어졌다. 자폐성 장애인이 한 사람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장애인이 가리킨 손님은 무서워 도망간다. 직원은 침착하게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었다. 지퍼를 끝까지 올려야 하는데 반만 올렸다는 것이었다. 무서워 도망갈 이유인가? 도망간 사람이 바보 같지 않은가? 카페 직원처럼 ‘이유’를 묻고 들어줄 수 있는 간단한 요구는 들어줘라.


상황 2. "실례합니다." 요구는 확실히  .

버스 옆자리 발달 장애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쉴 새 없이 중얼거린다. 그의 앞사람도, 뒷사람도 말소리로 신경이 쓰이는 듯한데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옆자리에 앉은 나는 음악을 듣고 싶은데 집중이 되지 않는다. 한 마디가 튀어나온다. "저기요." 그가 나를 바라본다.


발달 장애인에게 이야기할 때 손짓과 함께 쉬운 단어, 짧은 문장을 쓰는 게 좋다. 먼저 그의 '문제 행동'을 밝혀라. "아까부터 계속 말하시잖아요." 그다음 본인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는 음악을 듣고 싶어요. 그런데 그쪽 말소리 때문에 힘들어요." 불편함을 내비친 후 방향을 제시한다.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불편함


지하철에서 종종 마주하는 불편한 상황이다. 문 앞에 지체 장애인이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 그 옆으로 장애인을 피해 간다. 바짝 댄 차 문을 열고 좁은 공간을 꾸역꾸역 나야 하는 것처럼 지나간다. 그렇게 장애인은 장애물이 된다.


휠체어에 아이가 타있으면 직접 옮기려는 어르신도 있다. 자동으로 전환되어 있는 전동 휠체어는 움직여지지 않을뿐더러, 지체 장애인은 갑자기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여지는 것을 무례하게 느낀다. 조금만 옆으로 가달라고 '말'하기를 바란다. 버튼 하나로 전원을 켜 손가락으로 조종해 움직이면 되니 결코 어려운 부탁이 아니다.

수치심


A 씨는 어릴 적 다운증후군 친구가 머리카락을 계속 만지는데 피하고 싶었다고 한다. 장애인에게 싫다고 해도 되는지 고민이 들어 가만히 참고만 있었다. 어릴 적 일이 여전히 생각나는 이유는 수치심 때문일 것이다. B 씨는 다리를 계속 보는 사람이 장애인인 것 같아서 그냥 넘겼다고 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남았다고 한다. 그 후로 장애인에게 거리감을 둔다. 장애인의 말과 행동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낄 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대하라. 싫다, 보지 말라고 전하는 용감한 의사 표시는 장애인 성범죄 예방으로도 연결된다.


물론 장애인이 피해자인 성범죄가 월등히 많지만 장애인이 가해자인 경우도 끊이질 않는다. 필자는 성범죄자를 극도록 혐오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손목에 수갑을 차는 발달 장애인을 보면 안타깝다. 장애인 성범죄는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 본인이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상대가 불쾌하다고 표현하면 반복 학습으로 고쳐진다.


발달 장애인의 지능이 5-6세여도 성적 욕구는 비장애인과 비슷하다. 장애인 성범죄 가해자의 동기는 단순한 '호기심'이다.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기면 가슴이나 허벅지를 만진다. 결과적으로는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성희롱이 되고, 성범죄가 된다. 하지만 이들은 본인의 행동이 범죄인지 모른다. 그동안 성적인 표현을 싫다고, 하지 말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상대가 싫어한다는 걸 모르는 것이다. 교육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의 정서적 교류가 더 중요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찡그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방법은 ‘소통’이다. 참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장애인에게 이래도 되나 싶겠지만 필자는 감정을 표현하라고 명확히 전한다. 장애인으로 겪고 있는 불편함, 수치심을 전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의사를 전해야 장애인도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간다. 비장애인 역시 합의점을 찾고 편안해진다. 우리는 그렇게 가까워진다. 장애인의 실례를 참아내며 멀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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