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미 Dec 08. 2019

시각 장애인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같이 산책할래요?

기숙사 앞에서 만나 팔을 잡는 내 친구는 시각 장애인이다. 우리는 걷기 좋은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달빛이 비친 그곳은 강아지와 걷는 사람, 달리기 연습을 하는 육상부, 철봉으로 운동하는 아저씨가 있다. 한 바퀴, 두 바퀴. 빨간 레일을 따라 걷는다. "너희 과 교수님 악명 높더라", "학교 헬스장 요금이 올라갔더라.", "다음 학기에 경상대 공사한다더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언니, 이번 학기는 대외 활동하느라 바빴잖아요. 다음 학기는 뭐해요?"

좋은 소식이 있어. 나 구월에 해외 인턴십 가!


부러워요. 어디로 가요? 저 가족들이랑 캐나다 갔을 때 진짜 좋았는데. 무엇보다 날씨가 좋았어요. 바람도 선선한 게 딱 가을 날씨 같았어요. 저 거기서 햄버거 맨날 먹었어요. 아, 언니 좋겠다. 저는 언니처럼 해외여행 가고, 인턴십도 해보고 그런 거 전 못해요. 가족들이랑 해외여행은 갈 수 있어도 사는 건 안돼요.


학교 생활하면서도 급식실에서 아주머니들이 도와주잖아요. 편의점에서 초코바 하나 사는 것도 아저씨가 집어주고. 뭐 엠티나 과 행사 가는 것도 고민하는데 해외 생활은 생각도 못해봤어요. 음.. 저는 제가 누릴 수 있는 데 까지 누릴래요. 이번 생에 해외 가는 건 언니한테 넘길게요. 그러니까 언니가 제 몫까지 두 배로 다녀요. 그러고 돌아올 때마다 많이 얘기해줘요.


그런데 언니 남자 친구랑은 얼마나 됐어요?

남자 친구? 한두 달 정도 됐지


부러워요. 저도 남자 친구 사귀고 싶어요. 스무 살 때부터요. 왜 안 사귀냐고요? 제가 연애하기 힘든 거 알잖아요 언니. 사실 연애하기 어려운 이유는 장애 때문이 아니에요. 따로 있어요. 저는 비장애인 만나고 싶어요. 하하. 나도 장애인인데 민망하네.


재미있는 거 알려줄까요? 장애인들은 비장애인 만나고 싶어 해요. 한 마디로 장애인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는 거죠. 장애인이 본인의 성 정체성을 지운 거예요. 그러면서 본인이 남성으로서, 여성으로서 성 정체성을 잃었다는 느낌은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장애인이 장애인을 이성으로 보지 않으면서, 정작 장애인인 본인은 이성으로 봐달라? 어렵죠. 사람들은 장애인을 만나보는 것도 생각해보라고 권유해요. 그럴 때마다 비장애인을 바라는 제 마음은 취향인 건지, 잘못된 생각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 언니 글 쓰잖아요. 그러면 책도 많이 읽겠네요?

응, 나 요즘 책 읽는 게 제일 좋아


부러워요. 저도 책 좋아하는데. 책을 어떻게 읽냐고요? 저는 소리로 들어요. 음성 파일을 다운로드해요. 요즘 음성 녹음한 책이 많아졌는데 전보다 많아진 거지 많은 건 아니에요. 책이 세상에 나오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나 봐요. 읽고 싶은 책 찾아보면 음성 파일은 잘 없어요. 신간은 더 그래요. 거의 없죠. 다른 방법도 있어요. 텍스트 파일을 읽어주는 기계가 있어요. 근데 책 구입해서 한손에(시각 장애인 시각 자료 제작 업체)로 택배 보내고 파일 받으려면 몇 주 걸려요. 아, 사운드 크레마요? 그거 음성 지원되는 전자책이죠? 좋을 것 같네요. 한 번 써볼게요.


음성 지원이라 하니 생각나는 게 있네요. 요즘 재미있는 거 있어요. 시각 장애인 도서관에 유명한 책 녹음하는 목소리 봉사자가 생겼대요. 전에는 음성 지원 책이 딱딱한 시스템 소리라서 재미도 없고 듣다 말았어요. 거기서 받은 녹음책은 재미있어요. 목소리 봉사자가 읽다가 버벅거리는 것도, 신나게 읽는 것도 다 느껴져요. 언니도 관심 있으면 해 봐요. 제가 들어줄게요. 하하.


언니 이제 들어가요 우리. 춥죠.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했나봐요. 오랜만에 밤 산책하니까 좋았어요. 같이 걷고 싶을 때 또 연락해도 되죠?


한 바퀴, 두 바퀴. 나의 빨간 레일은 반복되었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녀가 나의 취미와 일상이 궁금하듯 나 역시 그녀가 사는 방식이 흥미롭다. 연애에 대한 새로운 고민, 다르게 책을 읽는 방식을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가 좋다. 다음 산책이 기다려진다.


*시각 장애인 도서관에 책을 녹음하는 목소리 봉사자가 있다. 글자를 인식해 읽는 기존의 딱딱한 시스템 소리는 책의 흥미를 떨어뜨려 사람이 책을 읽어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복지관에 가 본인의 스케줄에 맞는 시간을 정해 일주일에 한 번 헤드셋을 끼고 녹음을 하면 된다. 가까운 시각 장애인 도서관에 문의하면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쓰는 이들의 모임, 쓰기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