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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미 Dec 05. 2019

쓰는 이들의 모임, 쓰기에 관하여

노들섬 표류기(3)

어떻게 지내시나요?

읽고, 쓰고, 읽히고 있다. 어느 하나 쉽지 않지만 마음 깊이 간직한 꿈을 조금씩 이루고 있다. 노들 서가에서 일상 작가로 활동하는 덕택이다. 주황 등 아래 앉아 글을 적기도 하고, 프로그램에 참석한다. 독서모임, 강연, 글쓰기 클래스, 노들 서가 일상 작가 네트워킹 파티 등 다양하다. 특히 '쓰기'에 관한 프로그램은 할 일이 쌓여도 참석했다. 서로의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눈다. 값진 시간이었다. 글 쓰며 어려운 점을 서로 이야기하고 내 글은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쓰는 이들의 모임은 이래서 좋다.

고유 글방, 오늘만 쓰기

고수리 작가님의 '오늘만 쓰기' 클래스에 참석했다. 노들 서가에서 시민 개방형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참석한 인원은 대부분 브런치 작가였다. 수리 작가님은 나에게 어떤 이유로 참석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연재하고 있는 장애에 관한 글이 무거워지고 축축 처질 때 고민이 된다고 답했다. 수리 작가님은 주제가 좋다며 어떤 고민인 지 알겠다고 했다. 수리 작가님의 오늘만 쓰기 주제는 '이름'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30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교환학생을 가던 날 나는 내 이름을 포기해야 했다. 탑승 수속을 하는데 수제 맥주집 첫 출근 날이 떠올랐다. 나는 그 날 눈동자가 파란 크리스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What's your name?"이라 물었다. "I'm Dami."라 답하자 입고리를 씰룩 거리며 "God~ Damn it!"이라 놀렸다.

새 사람이 되러 떠나는데 만나면 이름부터 묻는 미국에서 젠장, 된장으로 소개하고 싶지 않았다. 비행기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네이버를 열어 '영어 이름'을 검색했다. 라일라, 베씨, 엘리스 등 나를 공주로 만들어줄 이름은 많았지만 그중 디즈니에 사는 데이지를 골랐다. 그렇게 나는 사 개월간 데이지로 살았다.

한국에 돌아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미국은 어땠냐는 질문에 풋풋하고 귀여운 영어 이름을 썼다고 묻자 친구들이 물었다. "뭐하러 바꿔? 그래서 바꾼 이름이 뭔데?" "Daisy." 옆에 있던 유경이가 풉, 하고 웃으며 말했다. "돼이지, 피자나 먹어 돼이지야." 그 후로 나는 데이지를 쓰지 않는다.


글을 읽고 서로 피드백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글을 읽는 동안 사람들이 여러 번 웃었다. 재미있었다, 문장이 짧아 읽기 좋다, 디즈니에 사는 데이지를 고른 대목에서 성향이 보였다, 비행기 탑승장과 공간 전환이 좋았다, 나도 이런 가벼운 글을 쓰고 싶다는 의견을 받았다. 수리 작가님은 "재미있게 잘 쓰시는데 뭐가 고민이에요. 다미 작가님의 글이 공적인 글쓰기, 가볍고 유쾌한 글쓰기의 표본이에요."라 덧붙였다. 클래스가 끝나고 브런치 작가님들이 나를 구독하겠다며 작가명을 물었다. 알려주며 머쓱하게 말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쓰지는 않아요. 하하."

노들 서가 일상 작가 네트워킹 파티

언제나 즐거운 노들 서가 일상 작가 네트워킹 시간이다. 지난달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는데 이번 달은 서로의 글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같은 주제로 여덟 명의 작가가 글을 쓴다. 주제는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다. 작가님들은 각자의 문체로 이야기를 담았다. 다들 프로다.. 나는 두 가지 짧은 글을 적었다.


첫 번째 글
패션의 완성은 돈, 얼굴이라던데 내 패션에 중요하고 소중한 건 따로 있다. 하얀 문이 달린 언니 옷장. 키 160cm, 몸무게 55kg, 발 사이즈 225. 비슷한 키, 비슷한 체형으로 사이즈도 딱이다. 검정 슬랙스를 입으면 언니의 청자켓이 필요하고, 하늘색 블라우스에는 레이어드 할 언니의 원피스가 필요하다. 작년 겨울, 돈 없는 나를 위해는... 아니지만 언니가 노스페이스 롱 패딩을 사 왔다. 내일은 언니가 2박 3일로 대전에 간다. 언니가 싸들고 가고 남은 옷 마구 입어야지.

두 번째 글
인기가 더 많았는데 올리기 부끄럽네요. 용기가 생길 때 브런치 글로 업그레이드해 올리겠습니다.

쓰는 동안 나도 재미있었고 읽는 작가님들도 재미있었다고 했다. 작가님들은 나의 글쓰기 어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나의 글을 전부터 봐온 고마운 작가이자 독자의 피드백이다. 브런치 글마다 '좋아요'를 눌러주시는 나의 열렬한 구독자 진영 작가님은 "아까와 같은 느낌으로 새로 연재해봐요." 했다. 집에 가는 4호선에서 생각했다. 나에게는 가벼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유쾌한 글을 간간히 모아봐야겠다. 즐겁게 적다 보면 장애라는 주제도 유쾌하게 전할 수 있겠지.

자소서 클리닉

자소서 클래스 덕분에 처음 입사 지원서를 처음 썼다. 추상적 단어는 덜고 보여주기로 적다 보니 자소서가 자소설이 되어 있었다. 자소설을 제출했다는 말에 호사 작가님도 동의를 했다. 자소서는 에세이와 다른 글쓰기였다. 자소서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 강조해야 할 부분을 배웠다. 호사 작가님은 자소서이론을 알려주고, 잘못된 자소서의 예시를 보여주었다. 글을 글로 배우니 감이 더 빨리 왔다. 벌써 입사를 한 것만 같다. 프로그램을 끝내며 호사 작가님이 나에게 특별히 평생 자소서를 봐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뇌리에 팍 꽂혔다. 작가님 큰일 났다.


장애에 대해 죽어라 고민하고 열심히 글을 쓴다. 하루에 하나의 글을 쓴다. 어떤 날은 만족해 웃음이 나고 어떤 날은 엉망이 된 채 발행을 누른다. 호사 작가님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작가님. 저 요즘 하루 하나 쓰기 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요." 잘하고 있다며 확신에 가득 찬 호사 작가님의 말에 '나 잘하고 있나 보다.'생각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꾸준하게 써야겠다. 읽고, 쓰고, 읽히는 행복한 노들섬 표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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