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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가모모씨 Sep 15. 2021

스스로가 바닥을 쳤을 땐 요리를 하게 된다 | 겪은 글

某某씨 씀


요리를 하기 전까지 맛이라는 건 그냥 하나의 맛으로만 생각했다. 예를 들면 떡볶이는 떡볶이 맛, 비빔국수는 비빔국수 맛, 김치찌개는 김치찌개 맛. 짜고, 달고, 시고, 쓰고, 매운 그런 다섯 가지 맛만 있는 줄 알았다.


내 손으로 하는 요리가 엄청나지는 않기도 하고, 내가 맛에 민감한 타입이냐면 그렇지도 않지만, 그래도 요리를 하게 되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간장의 짠맛, 소금의 짠맛, 새우젓과 멸치 액젓의 짠맛.

고추의 매운맛, 고춧가루의 매운맛, 고추장의 매운맛.

설탕의 단맛, 올리고당의 단맛, 꿀의 단맛.

같은 맛이라고 불려도 그 맛이 다 다르다는 것 말이다.


같은 된장찌개라 하더라도 뭘, 얼마나,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깔끔한 된장찌개를 먹고 싶은지, 매콤하고 진한 된장찌개를 먹고 싶은지 내가 원하는 최종적인 맛을 향해 열심히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보며 요리를 한다.


그래서 타인이 해준 음식을 먹을 때는 그저 단순한 된장찌개였어도, 스스로 한 음식을 먹을 때는 오늘 내가 넣은 재료와 요리 과정을 곱씹게 된다.


오늘 내가 넣은 된장에서 넣은 짠맛은 어떻고,

새우젓을 가미한 짠맛은 어떻게 감칠맛을 내는지.

말린 표고버섯을 쓸 때와 그냥 표고버섯을 쓸 때는 어떻게 다른 맛이 나는지.

큼직하니 썰어 넣은 양파에선 어떤 단맛이 나는지. 오늘 새로 깐 감자는 어떠한지.

파를 넣는 것과 안 넣는 것이 어떻게 맛이 다른지.

또 청양고추를 넣는 것과 고춧가루를 넣는 것이 어떤 차이가 나는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느껴지는 맛에서 내가 고른 재료와 내가 한 손질들이 낸 결과물들이 맛과 향으로 다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내가 한 요리를 맛보면 함부로 재료를 막 쓸 수 없다. 한 입 입에 담을 때마다 오늘 내가 넣은 재료들, 오늘 내가 한 손질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되기 때문이다.


살기 바쁘면 요리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저 배달앱을 켜서 주린 배를 채우기가 바쁘다. 그럴 때면 다시 떡볶이는 떡볶이 맛, 비빔국수는 비빔국수 맛, 김치찌개는 김치찌개 맛이 된다. 뭐가 들어갔는지 생각할 여력도 시간도 없이, 그저 맛있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요리를 오랫동안 못하게 되면 매우 슬퍼진다. 맛을 곱씹을 시간조차 없는 생활에 이미 지쳐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바쁜 일상에 너무 우울할 때면 어김없이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 먹는다. 재료 하나하나가 떠오를 때, 내가 나를 얼마나 아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그럼 조금은 뿌듯하고 스스로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나를 버려뒀다는 생각이 들 때 그래서 나는 요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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