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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가모모씨 Jun 12. 2024

나의 사랑스러운 여덟 글자

to. 여전히 앞날이 궁금한 우리에게

내 사주엔 불이 없다.

그래서 내가 광고를 한다고 하면 철학관이든 점집이든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다.

회사에 마지막으로 사표를 던졌을 때 내 생의 여덟 글자가 떠올랐던 건 그 때문이었을까.


광고업계는 미신에 의존하는 사람이 꽤 많다.

남의 눈에 드느냐 마느냐로 성패가 결정되다 보니 열심히 한다거나 잘한다는 것이 항상 성공으로 돌아오진 않는다.

잘 나가다가도 생각지도 않은 일로 뒤집어지고, 또 거지 같았던 상황이 득이 되어 돌아올 때도 많다.

그래서 선배들은 종종 실력만큼이나 운의 흐름도 중요하다고들 했다.


회사를 다닐 때 월요일 첫 루틴은 팀원들의 ‘금주의 운세’를 읽고 다가올 살들을 예측하며 내 마음을 달래는 거였다.

동료들의 데스크엔 액운을 막아준다는 토테미즘 아이템이 하나씩은 놓여있었다.

제삼자의 눈에서 보면 별 짓 다한다 싶지만, 승리의 기쁨과 함께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싶은 그 간절함은

미신이라는 이름 하에 재미있는 문화나 농담거리로 승화된다.  


그래서 한 때는 참 많이도 내 삶을 예측하러 다녔다.

회사를 그만둘 때는 내가 주어진 대로 살지 않아 이렇게 괴로운가 했다.

그놈의 운세, 이제 좀 덜 보려나 싶지만 여전히 앞날이 궁금해 지금도 가끔 내 사주를 들여다본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 사주를 보고 어떤 사람은 나쁘다고 했고 어떤 이는 좋다고 했다.

지금 와서 막 눈으로 여덟 글자를 들여다보면 이 사람 말도 맞고 저 사람 말도 맞는 것 같다.

한 때는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좋은 점도 많은 사주다.

같은 글자인데도 느낌이 이리 다르다. 그러니 내가 가진 글자만큼이나 중요한 건 풀이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나와 생년월일이 같은 유명인의 사주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러면 흐름은 비슷할지언정 삶의 모양새는 참 많이 다르다. 겉모습도, 직업도, 성격도 영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내 팔자가 어떤 흐름이라 한들, 지금 어디를 흘러 가는지, 얼마나 큰 너울을 만들어 내는지가 앞으로의 모양새를 결정짓는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생각하면 과거에 예측한 내 삶의 흐름이 크게 맞아 들었다고 해도 그 흐름이 나에게 기쁨과 슬픔이 되지는 않았다.

큰 불행이나 기쁨 없이 무던한 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에게 기쁨과 슬픔을 주었던 건 흐름보다는 순간이다.

그러니 내 흐름을 기쁨으로 채울지 슬픔으로 채울지 결정하는 건 결국 순간순간의 마음이나 행동이다.


내 팔자를 보다 보면 어떤 면에서는 안쓰럽고 어떤 면에서는 복되다.

그러니 복된 면에 집중하고 안된 면에는 위로를 던져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타고난 여덟 글자는 그냥 애정 어린 한 생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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