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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취방스님 Jan 12. 2022

글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시는 분들 대부분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서 올릴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도 글을 써서 올리지만 가끔은 내가 무엇인가에 이끌려서도 글을 써서도 올리고, 그냥 죽기보다 싫은데도 나도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글을 쓴다.


어떠한 행동이든 그 행동을 하는 데는 이유라는 것이 따른다. 

갑자기 오늘 무슨 화두처럼 난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돈다. 어렸을 적에는 정말 죽기보다도 더 글 쓰기를 싫어했던 것 같다. 백일장이나 글쓰기 대회에 참가해 본 적도 없으며, 그 흔한 일기도 쓰다 말기를 계속 반복했다. 


이렇게 글쓰기와는 전혀 친하지 않았던 내가 왜? 정말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첫째로 생각 드는 것이 글로 하는 정리의 힘이 아닐까 든다.

일이 발생하면 이건 뒤죽박죽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로 풀어야 할지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도록 일목 요연하게 글로 정리하고 나면 훨씬 일의 실마리가 풀릴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던 것이 몇 줄 적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동굴에서 친절하게 출구를 안내해주는 이정표가 될 때가 있다.

둘째, 고해성사의 힘

난 종교가 기독교나 가톨릭이 아닌 관계로 누군가에게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내가 가진 고통과 짐을 훌훌 벗어 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물로 조언하실 수도 있다. 종교는 항상 너의 곁에 있으며 언제든지 네가 마음만 열면 다가갈 수 있다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종교적 신념을 확고히 하는 그런 열정이 부족하다. 주말 봄날 따스한 햇살을 보며 동내를 마실 다니는 동내 개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또한 기독교나 가톨릭에 쉽게 범접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이 새서 다른 곳으로 흐르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고민을 걱정 없이 털어놓음으로써 오는 홀가분함과 자유는 아마 다른 분들도 고개를 끄덕이실 것이다. 하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까? 

아마도 내 마음을 종이에 옮겨 적어 보는 것이다. 

누구나 사람에게 힘든 일이 있고, 아무리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나만의 치부를 쉽게 상의할 수없다. 

조용히 적고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왜 내가 이런 글을 썼는지 생각하다 보면 좀 더 자신의 문제가 명료해진다. 하지만 여기 적은 것이 사실을 나를 생각하고 적은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더 화가 난다던지 아니면 글을 쓰다 자신의 분노를 이기 못하고 연필을 분지른 다든지 이렇다면, 나는 감히 그런 분들에게 조언하겠다.

종교 가져보세요. 당신이 아무리 화를 내고 고해성사를 해도 평온하게 아멘을 해주실 신부님을 찾아보심이

셋째, 시간 보내기와 공상

지금 세상은 나와 마주 볼 시간이 없다. 이 말인 즉, 공상할 시간도 없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매스미디어를 끊고, 글을 쓰는데 진심이 됐다. 일단 가만히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사이코패스 같아 보일까 봐 쓰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각은 집어치우더라도 솔직히 무료하다. 이 무료함을 타파하는 것은 쉽지 않다. 책을 읽는 것은 한계가 있다. 뭔가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티브이에 나오는 달인들을 보면 정말 존경심이 폭발하듯이 나온다.) 읽고 쓰면 훨씬 책이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공상을 해야 글을 쓸 수 있다. 그게 정말 하찮은 낙서일지라도 공상을 해야 쓴다. 멍하니 있음은 멍청이가 되는 지름길이 아니다. 뇌를 쉬게 하는 순작용을 가지고 있다. 


뭐 주저리주저리 적어봤지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대략 이렇다. 나의 흔적을 남겨보자. 혹시 후대에 내 문헌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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